어머니
오늘은 중학교에 갑니다.
흰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단정하게 갑니다.
어머니가 화장술을 전수해 주지 않아 제 얼굴이 너무 밋밋합니다. 핑크빛 입술이라도 그리고 가야 하나? 학교 교문으로 들어서려니 갑지가 립스틱 생각이 납니다.
미술 공개수업 시간에 꽃 그리기를 하는데 선생님이 “같은 빨강은 없다. “고 말합니다. 왜 하필이면 립스틱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는 걸까요. 같은 빨강은 없으니 ‘나는 입술과 닮은 빨강을 칠했다.’고 마음속으로 우겨봤습니다.
흰머리는 아이에게 괜찮으냐 물어보고 미리 동의를 구했습니다. 부모님들이 많이 오셔서 묻혀 있다 오면 될 것 같아요. 어머니는 흰머리가 아니었는데... 하긴 그때 나이가 젊으셨지요. 저보다 한참 젊으셨으니. 어려서 좋겠습니다. 어머니는 굽실굽실한 굵은 파마머리였는데 말이에요. 사진 속에만 머리를 풀고 평소에 질끈 묶고 다니셨잖아요. 저는 일년 365일 질끈 묶고 다닙니다. 머리도 엄마 탓을 해봅니다.
깜장 머리 남편은 젊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남편과 저를 두고 한참 연하 남편과 결혼한 줄 압니다. 저를 사장님으로 남편을 알바 총각으로 아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모자를 벗으면 제 얼굴이 young 하다는 소리도 듣습니다. 얼마전 젊다거나 늙었다거나 나이가 들었다는 말보다 young이라는 단어가 주는 새로움을 맛보았지요. 끊임없이 주위에서 제 흰머리로 말이 많습니다. 다 어머니가 관리 비법을 전수해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신발은 매일 신는 편한 고무신발 말고 단정한 운동화로 신었습니다. 어머니는 저 어릴 적 구두를 많이 꺼내놓고 신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구두굽이 땅에 닿는 소리가 좋아 그렇게 기억하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다른 신발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구두소리가 얼마나 좋았던지요. 뾰족한 뒷굽이 땅을 박차는 규칙적이고도 경쾌한 또각거림. 마루 아래 벗어둔 어머니의 커다란 구두를 신고 또각 소리를 한 번 내 보겠다며 질질 끌고 다니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편한 신발만 신다 보니 이제는 발이 아파 고무신발만 찾게 됩니다. 어머니가 구두를 안 사주셔서 그렇습니다.
요즘은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얼굴에 허옇게 찍어 바르고 입술에도 뭘 바른답니다. 여자 친구들 어머님들과 이야기 속에서 청소년 어린이들 꾸미기 비법을 귀동냥해 봅니다. 막내 딸아이는 언제부터 화장을 한다고 할지 참 궁금합니다.
어머니께 꾸미기 비법을 전수받아 꾸준한 훈련을 받았어야 하는데 참 아쉽습니다.
어머니 왜 비법을 전수해 주지 않으셨나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제 저는 단정함, 단아함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