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unday farmers

일욕심부리다 골병든다

by 눈항아리

더워도 너무 덥다. 38도라니! 느지막이 일어난 일요일 아침 밭일은 엄두를 못 냈다. 나만. 남편 농부는 애타는 마음에 또 생강밭에 쪼그리 의자를 놓고 앉았다. 홀로 진도도 안 나가는 생강밭의 바랭이 풀을 마저 맸다. 앉은뱅이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인고의 노력으로 풀을 뜯었다. 밭에 앉아 있을 때는 괜찮았으나 일어서서 걸어 나오는데 어질어질하더란다. 한 여름 태양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욕심 중에도 일욕심은 대단하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서, 기한이 있는 일이라서, 조금만 더 하면 끝이 보일 것 같아서, 열매 수확의 기쁨을 아니까. 무슨 이유에서든 이 한 몸 혹사해서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을 일욕심이라 부르면 되겠다. 멈출 수 없는 그 야릇한 경계. 더위를 불사하고 흙먼지 일어나는 불타는 생강밭에서 남편은 새벽 6시부터 12시가 될 때까지 아침밥시간을 제외하고 땡볕에서 일을 했다.


대체 왜 그러시오 여보!

그러던 나였는데.


일요일에 몰아서 해야 하는 농사일을 종일 못했다. 대신 한낮에는 마트에 가서 장보고 밥 해 먹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해질 무렵 붉은 노을이 하늘색과 흰색 구름과 섞여 오묘한 빛깔로 하늘을 물들일 때 느릿느릿 눈곱을 떼고 밭으로 갔다. 덥다. 더워. 해가 져도 덥다. 바람도 없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생강을 마저 심는 날이다. 지난번 먼저 심은 생강은 새순이 나오는 족족 다 타들어갔다. 정신없이 풀 매고 이것저것 하느라 차양막을 못 쳤다. 이번에 심는 생강은 잘 살려보겠다며 바로 차양막을 쳤다. 남편 님은 고랑 3개 차양막을 종일 친다. 일을 얼마나 꼼꼼하게 하는지 모른다. 세월이 다 흘러간다. 차양막 치느라 생강 심는 아낙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대충 심으란다. 심고 나서 또 뭐라 잔소리를 하려고?


한 뼘씩 자란 모종을 내다 심으며 지난해에는 자로 간격을 재서 주더니, 봄에는 길이를 잰 쇠막대를 이용하더니, 남편도 농사 실무에 대해 뭔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정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지, 호미 자루만큼 띄우고 심으란다. 이런 멋진 남편이 다 있나. 남편이 생강 모종 키만큼 자란 것 같다. 한 뼘. 남편이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어림의 이치를 깨달아 간다. 나는 생강 순만 안 부러지게 대충 심는다. 앞뒤옆의 간격은 대충 호미로 맞췄다.(새벽에 내가 심어놓은 것을 보고선 왜 흙이 평평하지 않으냐, 왜 있어야 할 곳에 생강이 없느냐며 얼마나 구시렁거리던지...)


그러나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은 역시나 꼼꼼히 마무리한다. 지난해에는 다 날아가 펄럭거리던 까만 그물 차양막, 올해는 더욱 꽁꽁 묶어본다. 물 호스도 열심히 설치한다. 이번 생강밭에 새로 선보이는 분사식 호스다. 시간이 꽤 걸린다. 처음이라서 그렇겠지 그저 입을 꾹 다문다. 물 분사 반경이 좁다. 고랑 끝까지 강력한 물줄기가 안 나온다. 쫄쫄쫄 부스스 약한 물이 떨어진다. 이번에는 무언가의 용량이 모자란단다. 더욱 강력한 무언가를 사야 한단다. 나는 알고 싶지 않다. 모터인지 무엇인지. 농자재에 가려면 아침 출근길에 또 변수가 생긴다. 날 보고 고등학생까지 다 싣고 가라고 하겠지? 택배로 시키라니 농자재가 가장 싸단다. 결국 분사식 호스는 한 고랑만 설치했다.


차양막 치느라 물이 늦어져 흙먼지 푸석거리는 메마른 땅에 생기 없는 생강을 심었다. 생강 순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워지고 나서야 뒤늦게 호스를 끌고 와 물을 뿌렸다. 남편은 모기가 자꾸 문다며 들어가자고 했다. 그만 심자고 했다. 나는 조금 남은 모종을 마저 심어야 했다. 남편은 너무 깜깜하니 또 들어가자고 했다. 날은 서서히 저물다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새강 순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나는 깜깜한 줄도 몰랐다. 나는 사온 들깨 모종까지 심고 싶은 욕심에 손에 불이 나도록 생강을 정신없이 심고 있는데 남편은 자꾸 김 빠진 소리를 해댔다. 뒷정리를 하려면 30분은 잡아야 한다며 급기야 나를 밭 밖으로 끌어냈다. 밭일을 마치고 정리를 마치고 집에 들어간 시간은 밤 9시였다.



못 다 심은 들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심는다던 아내의 다짐에 남편은 잠을 설쳤다 한다.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아내를 감시했지만 아내는 일어나지 않았다. 6시가 넘어 어슬렁거리며 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들깨 두 줄을 끝으로 밭에 심을 것을 모두 모두 심었다!


월요일 출근자인 우리 부부, 남편은 연신 하품을 해댔고 나는 온종일 팔다리에 힘이 없었다.


그 남편에 그 부인. 남편 보다 한 술 더 뜨는 농부 아낙이었다. 일욕심은 부리면 안 된다. 골병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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