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평 텃밭?을 소개합니다.
고난 뒤에는 달콤한 행복이 따라오는 법이다.
일요일의 농부는 바쁘다. 그래서 남편은 아침마다 농부로 변신한다. 한 시간 더 짬을 내 가꾼 보람이 밭 이곳저곳에서 녹색 물결이 되어 굽이친다. 초록빛 향연이다. 보는 것만도 좋은데 그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생강 밭 바랭이 풀을 맬 적에는 죽을 맛이지만 그걸 끝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는 힘들게 일한 뒤 결실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수확을 해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키워서 먹는 맛은 정말 꿀 맛이다. 맛은 보여줄 수 없으니 녹빛의 향연을 펼쳐 본다.
나는 생강밭 쪼그리 의자에 앉았다. 작업복을 해 입고 검정 고무장화를 신었다. 창 넓은 군청색 모자를 썼다. 호미 들었던 팔에 힘을 빼고 허리를 쭉 편다. 하늘 한 번 바라보고 산과 들을 훑어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잎의 향연을 감상한다. 참 안 어울리는 조합니다. 그러나 시골 농부 아낙은 자연의 감성에 푹 빠졌다. “콩 밭 매는 아낙네야~” 가슴속에서 칠갑산 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앞쪽은 수박밭이다. 수박은 바닥에 긴 줄을 늘어뜨렸다. 암꽃이 줄기마다 노랗게 달렸는데 수꽃이 없다며 볼멘소리를 하던 남편. 수꽃이 피어나자 안 벌어진 수꽃의 꽃잎을 벌려 암꽃에게 강제로! 비벼 주었다. 성공적으로 아기 주먹보다 큰 열매를 하나씩 달았다. 한꺼번에 수정이 되면 한꺼번에 수박이 나올 텐데 그것 또한 걱정이다. 그래서 새로운 마디에 꽃이 피면 아래 달린 열매는 몇 개 따 준다고 했다.
풀을 매는 생강밭 왼편에는 터널이 있다. 청오이, 백오이가 터널을 따라 올라가며 줄기를 뻗어가고 있다. 오이 철이다. 하루 열 개씩도 수확을 한다. 오이 좋아하는 어머님도 가져다 드리고 언니도 가져다주고 우리는 매일 잘라서 생으로 먹는다. 우리 집은 둘째 복이 빼고는 모두 오이를 잘 먹는다. 나도 안 좋아했었는데 올해 오이는 유난히 달다. 물을 잘 줘서 그런가? 오이를 수확할 때 물을 안 주면 쓴맛이 난다고 한다. 나는 그 쓴맛이 정말 싫다.
복수박이 노란 꽃을 피웠다. 노란 꽃 아래로 엄지손톱만 한 열매를 달았다. 부디 떨어지지 말고 잘 자라기를 바란다.
참외는 아직 바닥에 있다. 줄을 못 매 줘서 그렇다. 참외는 마구 자라는데 빨리 매 줘야 한다. 엄청 달리니 처치가 곤란할 수도 있다. 나는 한 마디, 두 마디 줄기를 따라 세는 것도 힘들고 아들순 손자순 가리는 것도 어렵다. 남편은 천재가 분명하다.
방울토마토는 잎이 부실해 보이는데 열매가 많이도 달렸다. 토마토스파게티를 해 먹겠다며 야심 차게 토마토를 심었는데 과연 토마토소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호박이 폭풍 성장을 하며 잎과 줄기를 키워간다. 아기 주먹만 한 호박이 몇 개 보인다. 빨리 커져서 둥근 호박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장국을 끓여 먹으면 좋겠다. 마트에 하나 900원에 파는데 보이면 얼른 장바구니에 두 개씩 넣는다. 애호박과 다르게 된장 국물에 푹 퍼지는 호박 맛이 일품이다.
초록으로 덮이고 있는 터널 안 가지만이 거뭇하다. 짙은 보랏빛 열매를 하나 달았다. 가지 맛을 알아버린 나는 구워도 먹고 무쳐도 먹고, 볶아도 먹을 생각이다. 남편은 하나만 키우자고 했는데 우겨서 5개나 심었다. 어째. 엄청 달린다고 했는데 언제 볼 수 있는 건지. 가지 농사는 처음이다. 터널에 심었는데 고추처럼 ‘Y'자로 줄을 매 줘야 한다고 한다.
생강밭 오른쪽은 옥수수, 고추, 감자를 심었다. 옥수수의 키가 금세 고추를 넘어섰다. 구불구불한 바다 마을 미역이 밭으로 기어 올라와 옥수수 잎이 된 건 아닐까. 굽이치는 기다란 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힘차고 건강해 보인다. 옥수수 대는 또 어떤가. 저 옥수수 대를 굵직하게 키워 옥수수는 다 따먹고 낫으로 힘껏 내리칠 때는 고수 칼잡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옥수수 따는 건 남편 몫이고 옥수수 대 자르는 건 내 일이다. 나는 보기보다 터프한 아낙이다. 하하.
고추는 허약한 기색이 없이 여름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감자는 빨리 파고 싶은데 여전히 푸르르다. 잎이 생기 없이 축 쳐지고 노란 잎이 감돌며 시들면 감자를 캐야 한다.
감자 너머에는 파 두 줄이 있다. 월동 파는 꽃을 떨구고 씨앗을 만들고 있다. 봄에 심은 대파는 날이 가물어 날씬하다. 월동 대파를 뽑아 먹고 남은 밭에 모종판에서 웃자란 옥수수를 심었다. 연하디 연한 연두색 늘씬한 옥수수는 ‘녹의 향연’의 정점을 찍어주는 듯하다. 너무 이쁘다. 나는 역시나 가녀린 것에 끌리는 것 같다.
파밭 옆 빈 밭은 생강 모종을 심을 밭이다. 생강은 세 줄 정도 더 심을 수 있을 것 같다. 모종이 아직 실내에서 무럭무럭 키를 키우고 있다. 괜히 일부 모종을 밭에 먼저 심어서... 풀 관리도 힘들고... 내년엔 무조건 7월에 심기로 했다. 맨땅에 심으려면 무조건 키가 커야 한다.
맨땅을 지나 검정비닐 멀칭을 해놓은 이랑 두 개가 있다. 6월 29일, 참깨 모종을 심었다. 모종판에 모여있을 때는 건강해 보이던 참깨가 혼자 서 있을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될 정도로 비실비실해 보였다. 모종판이 너무 커 작물에 맞는 모종판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뿌리가 다 끊겨서 나오는 건 버려야 했다. 옥수수도 너무 넓은 데 심어서 그러더니 처음 하는 일은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괜찮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다. 비는 곳, 모자란 모종은 육묘장에서 파는 외대 참깨를 사 오기로 했다. 우리가 키워 심은 참깨는 다분지 참깨다.
참깨밭 옆으로는 사과나무 두 그루가 있다. 평지보다 날이 추워 사과가 열릴까 하였는데 하나는 열리고 다른 하나는 사과가 하나도 안 달렸다.
사과나무 옆은 옥수수밭이다. 씨앗으로 심고 싹이 안 올라온 곳은 모종으로 심었다. 제일 마지막 줄, 옆집 밭과 경계에 있는 옥수수는 제초제 피해를 봤다. 옆집은 마구 농약을 친다. 수시로 친다. 우리 옥수수에는 대체 왜 쳤을까. 일부러 친 건 아니겠지만 누렇게 변해 안 자라는 옥수수를 보면 열불이 올라온다. 옥수수 알갱이 하나하나 내가 놓았는데, 흙을 덮어주고 플라스틱 컵 미니 온실에서 키운 건데.
우리 부부는 집 앞 300평 밭을 관리하고 있다. 평소 일요일에 몰아서 일하고 아침에 조금씩 한다. 일요일 농사로 짓기에는 너무 넓고 종류도 너무 많다.
여름에는 풀도 잘 자라지만 작물도 잘 자란다. 그저 보는 산과들도 좋으나 내가 키우는 작물의 초록 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뿌듯한 기쁨이 마구 솟는다. 일할 때의 힘듦은 어디로 간 건지.
* 참고 : 밭은 나라 소유다. 하천부지로 덤프가 여러 대 와서 흙을 부어 밭을 만들었다. 골라도 골라도 돌이 계속 나온다. 년 30만 원 정도의 임대료를 내고 있다. 농사를 짓고 싶은데 땅이 필요하다면 농지은행에 올라온 땅들을 임대할 수도 있다.
-2025년 6월 29일-
sunday farm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