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상대할 땐 작은 풀을 골라라. 큰 풀을 상대해야 한다면 호미를 들어라. 장비가 중요하다. 맨손으로 풀을 상대하지 말라. 손가락 마디마디 관절의 고통을 동반할 수 있다. 그날은 멀쩡하나 다음날부터 일주일을 고생한다.
태양을 이기는 방법. 손바닥이 파란 고무로 뒤덮여 있는 장갑을 끼고 밭으로 갔다. 손이 뜨끈뜨끈해졌다. 곧 손바닥이 녹아내린다는 신호가 전해졌다. 발에는 까맣고 긴 고무장화를 신었다. 발에서 화르륵 불이 나려고 했다. 태양이 강열할 때는 피하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지난주 날림으로 심은 들깨모종은 강렬한 태양에 녹아내렸다. 고무장화를 녹일 수 있을 것만 같은 더위를 버티지 못하고 말라죽었다. 나는 태양이 뜨거워서, 물을 잘 못 먹어서 들깨가 죽었다고 했다. 남편은 들깨를 너무 얕게 심어서 그렇다고 했다. 잎이 까만 비닐에 닿으면 죽는다나? 흥! 괜찮다. 죽은 식물을 되살리는 방법은 없으나 다시 심으면 된다. 남편은 보식을 하라고 하는데 보식은 무슨, 모두 새로 심었다. 옆에 심어둔 참깨는 폭풍 성장을 하고 있는데 들깨는 많이 작기는 하다. 남은 들깨 모종을 가지고 나왔다. 매일 밤 정성으로 물을 준 들깨 모종이다. 하루라도 신경을 안 썼으면 이 더위에 말라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주에 심고 남은 들깨 모종은 생생했다. 남편 최고! 그러나 들깨 모종의 키가 너무 많이 자랐다. 아주 아주 깊게 심어야 했다. 땅 파기는 힘들고 키 큰 모종은 자꾸 쓰러지고 조심해서 심어도 부러지고 더운데 짜증까지 더해 남편을 계속 불러댔다. “아빠야!” 내 아빠가 아니지만 “아빠야!”를 외친다. 밭에서 큰 목소리로 외치면 속 풀이에 좋다. 가끔 거대 벌레가 나타나면 “아악! 꺅!”하고 소리를 쳐도 좋다. 온몸의 스트레스가 골바람을 타고 온 동네와 온 숲으로 퍼진다.
오늘은 대벌레 한 마리 때문에 목을 좀 심하게 풀었다. 고춧대를 들고 외발 수레를 두드려대며 꺅꺅거렸다. 밭에 일하러 나와 초반에 그랬더니 온몸에 기운이 쪽 빠져 버렸다. 하하. 일 하기 싫을 때는 벌레 핑계를 대면 된다. 벌레는 밭일에서 도망갈 수 있는 최적의 핑곗거리가 된다. 소리를 지르며 뜨거운 열기를 너무 들이마셔 목 이상이 왔다. 집으로 들어가 시원한 거실 바닥에서 뒹굴며 낮잠을 잤다는 농부 아낙.
그러나 매일 도망만 다닐 수는 없는 법. 벌레를 이기는 법을 알려주겠다. 날아다니는 벌레를 이기는 방법. 벌레가 나타나면 빙 둘러서 간다. 붕 날아서 따라오는 것 같다면 더 빙 둘러서 간다. 절대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개도 눈을 맞추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나도 벌레를 보면 눈을 내리깔고 못 본 척하고 피한다.
옷이나 머리에 달라붙는다고 절대 쫄지 말 것. 완전 무장을 했으니 걱정 없다. 미리 준비 태세가 중요하다. 목을 보호하고 싶다면 수건 하나를 두른다. 모자를 쓰고 뒷부분과 옆부분을 보호하는 망사를 내린다. 모자 앞쪽으로 똑딱이 단추를 채운다. 저물어 해가 진다고 해도 절대 벗으면 안 된다. 장화와 장갑은 필수. 여름철 덥다면 긴 팔 옷 대신 쿨 토시를 착용하라. 그러나 너무 짧아 손목이 드러난다면 긴 것으로 바꿔야 한다. 손목까지 잡아당겨 내리고 장갑을 토시 위로 올려 끼면 팔 무장이 완성된다.
모기를 이기는 방법. 모기 잘 물리는 남편과 밭일을 함께한다. 바지는 2중으로 입는다. 나는 반바지 위에 청바지를 입는다. 모기가 뚫다가 코가 납작해질 것 같아 더워도 기분이 좋아진다. 팔에는 쿨 토시 말고 긴 잠바를 입는다. 2중 땀복을 입으면 모기 물림에 완벽히 대비할 수 있다. 낮에는 여름 잠바를 입었는데 빨래 바구니에 넣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저물녘에는 두툼한 땀복을 입고 나간 것이다. 모기 대비에 아주 효과가 좋았다. 하하.
그러나 단점 또한 명확하다. 땀복을 벗는데 나에게 남편의 향기가 났다. 익숙한 이 향은 흙내음과 땀내가 버무려진 교묘한 쉰내다. 밭에서 땀을 빼고 돌아오는 남편에게서 그윽하게 풍기던 그 향기. 그래도 벌레에게 안 물린 것이 어딘가. 나는 한 방도 안 물렸다. 남편은 온몸에 모기 찜질을 하고 들어왔다. 울긋불긋 벌건 모기 꽃이 피었다. 남편은 한 겹짜리 아주 얇은 여름 긴팔을 입었다. 저물면 모자는 안 쓰는 그. 호호. 그러니까 대비를 하시라.
“여보 그 작업복은 안 되겠어요. 검정은 모기를 더 부른다고 하던데? 모기 기피제라도 뿌리고 밭에 들어가요.”
안 그래도 남편은 모기 물림 방지를 위해 농사용 망사 옷을 두 벌 샀다고 한다. 하하. 역시 장비발! 장비 좋아하는 내 님은 뭐든 준비성이 투철하다. 모기장 옷 한 번 입어보고 싶다.
자연을 이기기 위한 꼼수 요약정리.
더위는 피한다.
태양은 피한다.
벌레도 피한다.
풀은... 다음 주에 또 만나자. 적으로 대하면 나만 힘들다.
자연과 아직 어울리지 못하는 시골 아낙, 자연을 이기기 위한 꼼수를 부려봐도 역시나. 쯧.
sunday farm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