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나에게 묻는다. 불합리한 부분은 무엇인가. 왜 불합리한가. 억울한 것은 무엇인가. 왜 억울한가. 답답한 것은 무엇인가. 한숨짓게 하는 건 무언가. 왜 힘든가. 힘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 답답한 것, 한숨 나오는 그 상황, 힘든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고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글이 나에게 말한다. 그저 그 자리에서 넋 놓고 있지 말라고 한다. 뭔가를 하라고 등을 떠민다. 멈춰 선 나에게 움직이라고 한다. 글이 무슨 그런 힘이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무언가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옳은 방향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그저 가만히 있을 때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바랄 뿐이다.
글은 나를 이끌어가고 안내한다. 곱씹어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면 새로운 생각들이 흘러나온다.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들도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지?’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글 속에서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고 알아간다. 삶은 늘 나에게 어려움만을 주는 게 아니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고통을 무작위로 내어 준다. 글은 나에게 복불복 인생살이의 묘한 맛을 가르쳐준다.
삶은 살기만 하고 돌아보지 않으면 그저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글을 쓴다.
일과 육아와 살림, 그리고 사람. 일상이라는 그물에서 허덕이며 울분에 차 있던 내가 글쓰기로 변하고 있다. 일상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그것이 한 번에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변화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찾아온다. 느리게 내 안의 화가 잦아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화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뜬금없이 어느 날 문득 확 터져 나오기도 한다. 나는 그걸 글의 무게로 다스리며 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힘든 것투성이, 불만투성이로 보이던 내 삭막한 일상에서 작은 웃음꽃을 하나 둘 발견해가고 있다. 양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 어둠은 빛이 있어 존재한다. 그리고 삶 속에는 빛과 어둠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일상 속에는 다양한 색깔들이 존재한다.
나의 첫 글은 책 읽기로 시작되었다.
2023년 3월 14일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고 나는 블로그에 첫 발을 내밀었다.
“자존감이라는 개념을 망각한 채 일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태도” - 나인가 했다.
“위기에 처했을 때 힘을 내는 자가 영웅이고 달아나는 사람은 영원한 조연이다.”-187쪽-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나 스스로가 변하는 순간 우주가 변한다.”-오노레드 발자크-
책이 나에게 해주는 말을 들었다.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짧게라도 매일 썼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썼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삶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걸림돌 같은 일상 이야기를 썼다. 나중에는 발에 차이는 돌덩이만 굴러다니던 차돌밭 같던 일상 속에서 작지만 귀하고 반짝이는 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블로그는 방향을 가지고 운영해야 한다는데 그런 것은 관심 밖이었다. 나는 살아야 했으니까. 왜 그리도 간절했느냐? 그건 비밀이다. 그러나 바닥을 치는 강렬한 아픈 경험을 했고 나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년 후 누군가 나에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권하고 싶은가? 나는 글쓰기를 하라고 권하지 않을까?
글을 쓰기 위해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은 나에게 말한다. 오늘을 잘 살았는지, 길을 잘 걷고 있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늘 내 곁에 있다. 든든한 내 벗.
글이라는 벗이 나에게 물었다.
“왜 여름이 되면 수박을 왜 썰어야 하지? 대체 수박이 무엇이기에 그 엄청난 무게로 나를 짓누르는 것이지? ”
식칼을 들고 수박 반 통을 격파한 후 지난 여름날들의 수박 글을 찾아보았다. 나에게 수박은 무엇인지.
글이 나에게 말을 건 게 아닌가? 수박이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걸까? 글인지 수박인지 삶인지 도통 구분이 안 간다. 누구든 자꾸 말을 거니 글을 쓸 수밖에.
수박 글을 쓰고 있다. 상황에 따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내 글을 보는 재미가 좋다. 세월이 쌓이면 글도 쌓이겠지, 세월이 흐르면 글의 깊이도 달라지겠지?
그래서 과연 수박은 나에게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