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으로

아침운동 20분 실내자전거

by 눈항아리

밤사이 부슬부슬 내린 비 덕분에 라벤더가 점잖아졌다. 그동안 고개를 숙이고 온갖 벌을 불러들인 점을 사과한다. 아침부터 뜬금없는 사과에 어안이 벙벙하다.

지난밤 물을 잔뜩 마셔대서 그런 걸까? 빗방울의 무게가 많이 무거워서 그런 걸까? 의지와 상관없이 내리는 비를 맞아 얼떨결에 겸손을 떨게 되었다. 기다린 줄기를 쭉 뻗고 높은 곳에서 고고하게 꽃잎을 열고 있는 보랏빛 라벤더 꽃은 콧대가 높기만 했다. 괘씸해서 현관 앞에서 없애버릴까, 확 파 버릴까 했는데 바닥에까지 바짝 엎드려 자세를 낮춘 모습을 보니 한번 지켜보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가 계속 많이 내린다면 식물들은 곤혹스럽겠다. 그런데 잎이 물을 많이 먹어 ‘퐁’하고 터지지는 않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또 신기하다. 잎의 기공도 열렸다 닫혔다 할 수 있으니 뿌리도 마찬가지로 물 흡수를 조절할 수 있는 걸까.

한 뼘 떨어진 땅에서도 희비가 엇갈린다. 베란다는 꽃을 바닥에 눕히고도 좋다는데 화분 속에 자라고 있는 설악초와 잘려나간 부추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맛도 못 보고 그저 하늘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물만 하염없이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비가 오지만 목이 마른 처마 아래 식물들은 식 집사가 뿌려주는 지하수를 기다린다. 물을 주시오. 지난밤엔 비가 온다고 저희들을 그냥 지나쳐서 얼마나 서운하던지, 까만 밤의 빗속으로 곧장 달려 나가고 싶었다.

그 빗속으로 나도 달려 나가고 싶다. 제자리에서 굴러가는 이 날쌘 자전거를 타고 희뿌연 안개 숲으로 곧장 달리겠다. 내리는 비가 단비인지, 거센 비인지, 폭풍우인지 맞아보면 알겠지. 빗속에 서보면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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