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이 문전성시

보라, 삶이 달라진다

by 눈항아리

현관 중문을 열고 나간다. 신발 신는 아이들이 줄줄이 서있다. 현관은 늘 잔칫집 같다. 신발이 문전성시. 신는 신, 안 신는 신, 집에서 신는 신, 바깥에서 신는 신, 장화와 작업화 등이 모두 나와 현관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신발을 멀리 두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신발에 떠밀려 내 신발이 한 발자국 보다 멀리 날아가면 할 수 없이 다른 신발을 밟고 자신의 신발을 찾아 나선다. 짓밟힌 신발은 아랑곳 않고 바닥을 지킨다. 내구성과 탄력이 얼마나 좋은지 꿈쩍을 않는다.


이 현관을 언젠가 평정하리라! 모두 신발장에 정리하고 가지런히 몇 개만 놓는 날이 올 것이다! 매일 집을 나서며 미래의 ‘치움’을 다짐한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니다. 치울 엄두가 안 나는 매일 새로움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쓰레기가 생성되어 보관되는 곳이었다.


지금은 여러 개의 신발만이 가득 차 있으나 예전에는 쓰레기가 현관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음식쓰레기, 박스, 재활용 쓰레기, 쓰레기봉투 하나 혹은 둘.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만들어지는 쓰레기의 보관 장소였다. 지금도 엄청난 신발 현장인데 예전에는 더 한심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우리의 옛 모습이 우습다. 어느 날 현관 사진을 찍는데 바닥을 찍을 수가 없었다. 오른쪽 벽만 빗겨서 살짝 찍고 나의 숨겨진 현실의 뒷면을 감추었다. 그러고도 마음 한 구석에 숨긴 내 진짜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버려진 공간. 집안에 버려두고 손대지 못하는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일까. 장롱 속, 묵은 책꽂이, 서랍장, 수납장, 주방 곳곳, 밥솥 뒤편, 베란다 빨래방, 소파, 거실, 방구석구석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했다.


집안만 그러했을까 내 삶의 곳곳이 내버려 둔 채 방치되고 있었다. 모든 삶이 그러한데 한 곳을 손 대기가 쉬웠을까. 계속 보다 보니 가능해졌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보며 바꿔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관 신발을 보며 ‘치움의 다짐’을 할 수 있는 이유, 그건 집안 구석구석을 하나씩 차근히 살펴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보는 게 두렵지 않다. 넘치는 집안일을 방치하지 않는다. 숨기지 않는다. 그 모습 그대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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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기 위해 귀 기울이다 자연스레 글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자연, 시골생활, 출퇴근길,사남매의 때늦은 육아 일기를 씁니다. 쓰면서 삶을 알아가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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