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더더기 속에서 보는 진짜 인간관계의 묘미

인간관계는 요점파악이 아니다

by 눈항아리

달복이가 달려옵니다.

“엄마! 복실이가 수학 문제 스무 개 풀려고 했는데, 다섯 문제 풀고, 헉헉 (잠시 숨을 돌리고) 게임해도 돼요?”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게임해도 돼요?”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다니요. 달복이의 긴 말을 들으니 제 글 속 군더더기도 저절로 떠오릅니다. 이렇게 쓱쓱 잘라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인간관계는 글과 다르게 불필요해 보이는 표현 하나에도 마음이 담겨 있고, 그 미묘함을 무시할 수 없더군요.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둘은 저마다 억울함을 쏟아냈습니다.


복실이는 말합니다.

“내가 수학 문제를 스스로 스무 개 만들어서 풀고 있었는데, 오빠가 자기가 내준다며 4학년 문제를 내는 거야. 나는 그런 거 안 배웠는데 오빠는 이것도 못 푸냐며 공부도 못한다고 놀렸어. 그러더니 엄마한테 갔다 오더니, 다섯 문제만 풀고 게임하자고 했어. 근데 난 다섯 문제도 못 풀었는데…”


달복이는 말합니다.

“나는 게임 시간인데 복실이가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대서 도와주려고 한 거야. 근데 11 곱하기 11을 11이라고 하는 거야. 자기는 안 배웠다면서 시간만 끌었어. 그래서 엄마한테 다섯 문제만 풀고 게임해도 되냐고 물은 거야. 복실이는 다섯 문제도 못 풀고 계속 시간만 질질 끌었어. 바본가 봐. 오늘은 학원 가지 말고 복실이 두 자릿수 곱셈 공부를 시키는 게 낫겠어. ”(그 문제는 3학년 1학기 때 복실이가 어려워하던 걸 함께 풀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두 아이의 ‘계획표’가 달랐던 겁니다. 복실이는 방학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고, 달복이는 게임을 하기로 한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같은 시간에 함께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라 시간을 맞추려 했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충돌이 생긴 겁니다. 달복이는 수학 문제를 못 푸는 동생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게임 시간을 날려버렸습니다. 화가 난 달복이는 결국 혼자 학원에 가버렸습니다. 심지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말에도 돌아서더군요.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존재감을 감췄습니다. 한참을 숨어있다 나와 말합니다.

“엄마, 아까 게임 시간 못 썼는데, 지금 해도 돼요?”

“시간은 스스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해. 아까 못 쓴 게임 시간을 지금 사용하면 되겠네. 그런 걸 융통성이라고 하는 거야.”

엄마의 말의 요점을 단박에 파악한 아이입니다. 게임해.


아이는 제 뒷말을 듣기도 전에 생글거리며 뛰어갑니다.

“대신, 방학 숙제 같은 네 할 일은 꼭 해야 해. 자유에는 늘 책임이 따르는 법이거든.”

달복이도 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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