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은 달복이가 주문한 오므라이스였다. 오늘 저녁은 복실이가 주문한 떡볶이다.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한산한 오후 시간 언니한테 오이랑, 호박이랑 잔뜩 가져다주고 반찬을 한 바구니 얻어왔다. 횡재한 기분으로 반찬통을 달랑달랑 들고 가게로 돌아왔다. ‘이걸로 저녁은 손 까딱 안 하고 먹으면 된다. 떡볶이는 그냥 내일 먹자고 하지 뭐.’ 안일한 생각이었다.
복실이가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며 말했다.
“엄마 떡볶이는? ”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묻는 것이었다.
“으... 응... 이모네서 반찬 많이 가지고 왔는데. 복실이 떡볶이 먹고 싶어? ”
“오늘 떡볶이 먹기로 했잖아. ”
아이의 얼굴에 실망한 빛이 떠오르기 전에 결정해야 했다. ‘금 나와라 뚝딱 방망이’ 같은 게 있으면 딱 좋겠는데, 비 온 뒤 날이 또 얼마나 더워지는지, 시원한 바람은 다시 어디로 다 도망갔는지, 불을 안 쓰면 딱 좋겠는데... 떡볶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약속을 지킬 것인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인가. 아이는 믿음이라는 눈망울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믿음은 지켜져야 했다.
“가자! 마트!”
아이의 얼굴이 잠시잠깐 구깃해지려다 활짝 폈다.
“우리 무슨 떡볶이 해 먹을까?”
“엄마, 짜장 떡볶이는 어때요?”
“짜장 좋다!”
우리는 마트로 향하며 말로 떡볶이를 만들었다. 떡, 어묵, 소시지, 양배추, 양파를 샀다. 달복이가 좋아하는 물만두는 물을 한 번 더 끓여야 하니 포기했다. 소스는 부어서 바로 먹는 짜장으로 골랐다.
아침에 끓여 온 사골 국물에 대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아이들에게 가위를 건네주고 빈 그릇을 줄줄이 식탁에 올렸다.
“달복아 떡 꺼내서 그릇에 담아줘. 먹을 만큼씩만 담아.”
“복실아 떡 몇 개 먹을 거야?”
“나는 10개!”
복실이는 어묵 봉지 뜯고, 달복이는 소시지 봉지를 뜯었다.
아이들이 재료 봉지를 뜯고 덜고 하는 동안 나는 야채를 준비했다.
짧은 시간 동안 떡볶이를 해야 하니 마음이 급했다. 양배추를 싸고 있는 랩이 안 벗겨졌다.
거칠게 랩을 찢어먹었다.
“복실아 도와줘. 랩 벗겨줘.”
복실이가 양배추를 썰고 싶다고 했다. 식칼은 날이 잘 서 있다. 칼날의 크기에 겁이 나는지 까만 손잡이를 멀찍이 잡고 양배추를 자른다. 손과 칼이 부들부들 거린다. 양배추가 생각보다 강하다. 복실이가 한번 썰고 나머지는 내가 숭덩숭덩 썰었다.
양파를 벗기니 달복이가 다가와 칼질을 해보겠단다. 양파를 반 자르고 시범을 보여주자, 역시나 칼날에서 제일 먼 손잡이 끝을 잡고 조심조심 부들거린다. 그나마 양파는 약한 녀석이었다. 칼질을 네 번이나 했다. 복실이는 오빠의 칼질 횟수를 보고 자신도 더 해보고 싶다고 했다. 복실이는 양파를 잘게 썰었다. 양파도 그릇에 담았다.
야채가 준비되었다. 어묵도 커다랗게 잘라 그릇에 담았다. 사골 국물은 어느새 끓고 있다. 이제 투하의 시간이다. 야채를 한 움큼씩 투하. 복실이가 양파를. 달복이가 양배추를 넣었다. 복실이가 떡을, 달복이가 어묵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소시지도 넣었다. 떡이 커지고, 어묵이 말랑말랑해진다.
꼬마들이 한 번씩 주걱으로 저어준다. 딱 한 번씩! 증거 사진도 남긴다. ‘브이’도 한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 앞에서, 익어가는 떡볶이 내음을 맡으며, 아이들은 요리사가 되었다. 진짜 요리 시간이다.
불을 줄이고 소스를 싹싹 긁어 넣었다. 10분 만에 짜장 떡볶이가 완성되었다.
“복실아, 고춧가루 넣어줄까?”
“응, 조금만 뿌려줘.”
“달복아, 너 좋아하는 메추리알 넣어줄걸. 메추리알 조림 있는데 줄까?”
“응!”
달복이는 자신의 식판에 짜장 떡볶이를 담고, 떡볶이 한쪽에 간장조림 메추리알 두 개 를 조심스럽게 세팅했다.
“엄마, 너무 맛있어!”
꼬마들이 요리사가 되는 날은 밥 먹는 시간이 광속으로 흘러간다. 자신이 만든 요리가 맛있게 사라진다. 요리하는 즐거움과 먹는 재미를 아는 아이들이 부럽다. 아이들과 함께 요리를 하며 그 즐거움이 나에게도 살짝 묻었다. 복실이의 하얀 옷에 묻은 짜장 국물처럼. 일이 아니라 즐거운 요리를 하는, 그런 날이 나에게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