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아저씨, 솜사탕 아저씨는 특별한 날 볼 수 있었다. 헬륨이 가득 든 캐릭터 바람개비 달린 풍선을 보기만 하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사고 싶었는지. 비싼 걸 뻔히 아니, 안 사 줄 걸 뻔히 아니 한 번도 사달라 부모님께 졸라보지 못했다. 한 번 사달라고 졸라볼 걸 그랬나? 크고 나서 솜사탕은 어린 날의 달달한 추억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헬륨 풍선은 정말 꼭 한 번 사고 싶었다.
스무 살이 넘어 축제장에 가서 내 돈을 주고 7천 원짜리 피카츄 헬륨 풍선을 샀다. 풍선은 자취방 한쪽에서 바람이 빠질 때까지 식구로 지내다 어느 날 미련 한 터럭 남기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인형을 좋아했던 나. 풍선뿐만이 아니었다.
어릴 적엔 우리 집에 내 장난감, 인형이라 부를만한 게 없었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컸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인형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차기 시작했다. 가지고 싶었다. 다 커서 왜 그런 마음이 가득 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길에 대형 인형을 늘어놓고 파는 트럭에 눈이 절로 갔다. 복실 한 곰인형이 얼마나 포근해 보이던지. 남자 친구에게 ‘털 짧은 초대형 못생긴 판다 인형’을 선물로 받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며 얼마나 의기양양했는지.
인형 뽑기 기계 속의 작은 인형은 또 얼마나 가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방을 하나 둘러메고 어느 날 원정길에 나섰다. 학교에서 시내로 가는 길 중간쯤 버스에서 혼자 내렸다. 인형 뽑기 기계가 있는 곳이었다. 인형을 가둔 사각의 철 감옥에서 그들을 구출해야 했다. 시내까지 걸어가면서 인형 뽑기 기계란 기계에 모두 들러 낚시질을 했다. 그리고 인형을 가방을 가득 채워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하루 아르바이트비 3만 원을 지갑에 넣고 가 다 쓰고 왔다. 3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사고 싶은 걸 사 보는 경험, 하고 싶은 걸 맘껏 해보는 경험을 나는 그렇게 했다. 그 인형을 가방에 걸고 냉장고에 달아놓고 책상에 놓고 쌓아놓고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던지. 그날 이후로 뽑기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스무 살 나의 인형에 대한 애착은 어린 시절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애절한 미련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지지 못한 것은 가져봐야 한다. 가지고 싶다면 미련 없이 가져봐야 한다. 돈을 쓰고 싶다면 미련 없이 써봐야 한다. 다만 자신의 돈으로 써봐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돈지 아깝지 않은 곳에 써야한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스무 살의 어느 날엔 혼자 축제장에 갔다. 풍선 던지기가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동전 던지기가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만 원을 들고 붐비는 사람들 틈바구니로 들어가 혼자 풍선을 던지고 동전 던지기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사행성 오락거리를 좋아하는 사람. 오락실을 들락거리는 경험을 못 해본 나의 어린 시절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그렇게 만 원이라는 귀한 돈을 펑펑 쓰고 돌아왔다. 헛된 경험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어느 축제장에 가도 동전 던지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돈 쓰는 것도 경험이라 생각한다. 꼭 해보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 사고 싶은 것은 사봐야 한다. 돈이 필요하다면 열심히 모아 써봐야 한다. 스스로 저축과 소비의 경험을 해 봐야 돈의 값어치를 알게 된다. 지금의 나는 정말 올바른 경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쓴 만큼 돈이 나간다.
힘들게 번 돈도 한 순간에 훅 간다.
귀한 돈을 써봐야, 돈 귀한 줄 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는 나를 꼭 닮았다. “엄마, 풍선 가지고 싶어. 엄마, 동전 던지기 하고 싶어. 풍선 던지기 하고 싶어. 엄마, 인형 너무 이쁘지?”그런다. 나를 닮은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내 아이에게 돈 잘 쓰는 경험을 어떻게 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부족하지 않은 아이가 만족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