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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환희 Mar 31. 2022

청년의 주거난과 좋은 소설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부어스』

권혜린 『부어스-별을 따는 사람들』.실천문학사.2021


'집’이라는 소재와 ‘청년’이라는 소재는 2000년대 초반부터 떼려야 뗄 수 없게 됐다. 드높은 서울의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경기도 외곽으로 밀려나는 20~30대를 두고 투표 성향을 분석하는 여론조사값이 나오기도 했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역시 아래로는 충남 천안으로 우상향으로는 강원도 원주까지 서울권에 포함되는(출퇴근이 가능한) 대서울이라는 개념으로 두며 집값이 확장되면서 파생된 생활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연대 내부 동아리에서 출발한 ‘민달팽이 유니온’이라는 시민사회단체도 있어 서울시와 거버넌스라는 이름 아래 저렴한 월세방, 자취방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는데 방식은 월세 집주인에게 월세, 임대료를 대폭으로 높이지 않게 권고하는 수준에서 그쳤을 것이다. 


  업무 와중에 읽게 된 소설 『부어스-별을 따는 사람들』. 소설은 고시원에서도 내몰려 주소지가 ‘미로’가 되어버린 청년들의 순례 여정을 그린다. 집 없는 청년들이 순례(라고 쓰고 도보 행렬)를 하다 맞춤한 일과 터전을 잡으면 해당 지역에 정착하는 이른바 ‘낙오’를 목적으로 두게 되는데 정주와 이주, 목적과 낙오라는 상궤상의 개념이 전복적으로 쓰이게 되어 눈여겨보게 된다.  


  제목으로 쓰인 ‘부어스’는 책 속에서 쓰인 ‘부어족’을 나타내는데 ‘Poor’라는 의미보다 한결 더 거칠고 열악한 의미인 ‘천박한 사람’을 나타내는 ‘Boor’에서 따왔다. 부어라고는 치킨밖에 모르는 나에겐 생경한 낱말이었다. 배경 설명은 이쯤하고. 


  책은 얇다. 210쪽이면 원고지로 하면 400~450매쯤 될까. 그러나 책의 분량이 얇다고 저자의 공력이 얄팍하지는 않다. 올해 30대 후반으로 치닫는 저자는 자신의 20대 후반부터 구상하고 기획했던 소설이라고 소개한다. 순례길이란 소재는 이번 여름에 걸었던 20여 일간의 도보 여행에서 따온 소재라고 들었다. 


  책의 줄거리라고 할 서울역 앞에서의 조우, 안양역에서부터 시작되는 야간 순례 행렬을 읽으면서 27살 무렵에 떠났던 서울-대전까지의 도보 여행이 떠오른다. 때는 여름의 복판, 직사열을 맞으며 살이 익어가도록 국도를 걸었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두 가지 생각밖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엄 캐리어’와 자동차를 발명한 ‘헨리 포드’가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는 점. 이 미천한 생각과 달리 저자는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길래 이와 같은 소설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또 이 소설을 상재하고 나서의 생각도 궁금하다. 


  세상은 어렵고 청년은 위태롭다. 서울 시내 숱하게 많은 집들이 그야말로 즐비한데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상은 나아지는 중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청년들에겐 내일과 미래를 긍정할 여지가 있을까. 그렇지는 못하리라.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듯이 줄거리를 밀고 나아간다. 


  다만 현실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어했던 듯한 저자의 시도와는 달리 서술이 시종 낭만적이고 어떤 부분에선 순진하기까지 하기에 읽는 내내 조금은 오그라들기도 했다. 한편 저자의 오랜 독서 이력을 알 수 있는 낱말들, 이를테면 ‘베돌다’, ‘갈신쟁이’같은 말은 눈에 띄었다. 네이버 사전을 검색하기도.  


  글을 흘리듯 쓰는 나와 다르게 저자는 ‘글을 다듬고 다듬었’다니 그 연마와 공력을 짐작하지 못하겠다. 좋은 문장이란 무엇일까. 좋은 서사란, 좋은 이야기란 어떤 걸까와 같은 물음에 답하기를 쉼 없이 해야 할 텐데 나는 부끄럽고 저자는 당당해 보인다.   


  고백하자면 책은 끝까지 다 보지 않았다. 내 독서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책. 한국 문학을 잘 안 읽기도 하고, 이렇게 순수문학의 갈래에 있는(출판사가 무려 실천문학사) 책과는 잘 안 맞기도 한다. 그러나 청년의 주거난에 대한 고민 좋은 소설이 어떤 건지에 대한 물음을 공유하고 싶다면 읽어봄직한 소설이다. 저자, 그녀의 ‘내년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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