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라는 이름과 특수부 검사라는 명칭은 동음처럼 들렸다. 그가 대중 앞으로 처음 나섰을 때 대중은 그의 화려한 스카프와 맵씨 좋은 수트 옷차림, 굵은 뿔테 안경을 두고 수군거렸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날로 기억한다. 그는 짧은 투로 소신과 생각, 가치와 지향에 대해 기자들 앞에서 일목요연 말했다. 흡사 기자 신기주의 단문 같은 말들이었다. 기자들의 노트북, 카메라 뷰파인더를 거쳐 국민 앞에 한동훈 이름 석 자가 화인처럼 박힌 날이었다.
윤석열 정부 첫 조각의 파격은 한동훈 법무부장관 내정자로부터 나왔다. 마치 문재인 정부의 첫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윤석열 검사장이 지명됐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현장에서 해당 사실을 들은 기자들은 탄성을 뱉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자들을 배후에 두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자리에서 그는 다소곳이 서 있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면 예의 짧은 투로 할 말을 했다.
그를 두고 열려야 하는 인사청문회 날짜에 여야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며칠로 정해야 할 것인지 합의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9일로 여야의 뜻이 모아졌고 이날은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온 국민의 이목이 어디에 더 쏠릴 것인지 호사가들은 내기를 하거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더 흥행했다고 평가받았다.
청문회의 말말말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됐고 귀에 어려 종일 맴돌았다. 내정자의 딸과 공구를 만드는 기업을 혼동하기도 했고, 아무개라는 뜻의 모(某)를 잘못 읽어 성씨와 결합해 내정자의 딸에게 없는 이모를 만들어주기도 했으며 어딘가 취한 듯한 말투로 시종 고성과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국회의원이 화제에 올랐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날 청문회의 승자는 한동훈 내정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전직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환송을 받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날이었다.
인사청문회 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그는 임명되었다.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전 정부에서 34명에 이르는 청문회 대상자들이 인사청문회 없이 채택되는 이례(異例)를 보였다. 이례는 전례가 되었고 현 정부는 그 전례를 따르는 듯 보였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동훈 장관이 임명되던 날, 전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고 평가받은 검사 넷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받았다. 수사선상에서 벗어나 검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여겨지는 보직이었다. 한동훈 장관의 전임지였던 곳이었다. 바통을 건네받았다고 볼 여지도 충분했다.
한동훈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전 정부의 3년 동안이 정치 검사들이 가장 출세했던 시절이고 이는 검찰 역사상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며 (자신을 두고 정치 검사라고 평가한다는 물음에)조국 전 장관 때 눈 한 번 딱 감았으면 앞길이 순탄했을 것. 그러나 안 그러지 않았느냐. 정치 검사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맥락의 답을 했다. 세간에서 그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지는 지점이었다.
한동훈 장관의 취임사 동영상은 수백 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 또한 이례적이었다. 국민생활과 그리 잇닿지 않을 거라 생각되던 법무부장관의 취임사를 두고 어록이니 멋짐이니 하는 류의 단어들이 웹상에서 난무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국민들이 주목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를 폄하하고 평가절하하는 의견도 웹상에선 상당한 상황이다. 이 나라는 준 내전을 치르고 있다.
한 장관이 임명 후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추미애 전 장관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으로 인한 폐단이 너무 크다며 폐지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부활시킨 것이었다. 재계, 금융가의 저승사자로 통했던 부서였다. 당시의 폐지를 두곤 정파적 결정이니 존속하는 것이 정쟁의 골몰이니 하며 논의가 분분했다. 아무튼 합수단의 첫 번째 수사 대상은 현재 먹튀 이야기까지 도는 ‘루나’코인이었다.
야당에선 영부인이 연루됐다고 알려진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1번으로 수사해야 하지 않느냐고 연일 공격을 일삼는 중인데 국회 대정부 질문에 출석한 한 장관은 이를 두고 “법무부 장관은 개별사건에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일축했다. 일선 검사들이 어떤 판단과 수사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전 정부 때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안겼던 ‘라임, 옵티머스’사건 역시 파헤친다는 방침은 전해졌다.
한동훈 장관의 임명 이후 정국은 얼어붙었다. 아니 타올랐다. 대통령의 최측근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잠잠해지지 않았다. 대통령 비서실과 검찰 주요 포스트를 특수통들이 차지했다는 세간의 비판이 이어졌다. 이 시절만큼 특수검사들이 활개친 적이 없다는 비판이었다. 이를 두고 다른 한쪽에선 전 정부에서 이른바 이전 정부 적폐 청산을 위해 특수통들을 전면 배치했었다는 반박이 맞서는 모양새다. 전투의 양상은 활시위를 당기기 전만큼이나 팽팽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임기 이후 주요 수사와 이를 통해 드러날지도 모르는 사건의 전모와 향후의 정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궁금함은 잠잠해지지 않았고 그의 지난 궤적들을 적어보면 어딘가 한 구석 실마리라도 생기지 않을까 해서 적어보았다. 생기지 않았다. 난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