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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새글 Oct 12. 2023

시간을 달리는 주인공- '회복'이라는 낭만의 서사

문피아 웹소설 두 편 리뷰

  여성향 독자들이 로맨스를 읽는 까닭을 묻는다면,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울 ‘낭만’적인 감정선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낭만적 보상심리, 기실 이것은 남성향 웹소설의 독자들 역시 매한가지로 가지는 독서 욕망이다. 그 낭만의 지표가 일신의 회복인지 혹은 두 명 이상의 관계 회복 위주인지가 장르와 독자의 층위를 갈음할 뿐이다. 감미로움과 이상(理想)을 지향하는 분위기를 뜻하는 ‘낭만’은 꼭 남녀간의 관계에 한정된 수식어는 아니다. 드라마로 시즌3까지 제작되며 연이은 흥행에 성공한 <낭만닥터 김사부>의 촌스러운 돌담병원과 열혈 의사 김사부는, 옛것으로 치부되는 따사로움과 인간미로 승화되면서 대중에게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이는 오늘날 대중화된 ‘낭만’의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낭만은 시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서사로 재현되는 낭만은 과거에 방점을 찍고, ‘그때 그 시절’에 빛났던 가치를 회복시킴으로써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독자들의 보상심리를 충족시킨다. 특히 웹소설은 활자 매체의 특성상 시간과 관련된 낭만을 가장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콘텐츠다. 트렌드라기에도 진부해져버린 ‘회빙환’, IF물을 역사적으로 대입한 ‘대체역사물’ 등은 시간을 조종해서라도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웹소설 독자의 낭만을 적극 대변하는 장르다.  

  이런 점에서 남녀 독자를 막론하고 ‘잘 읽히는 웹소설’이란 오늘날의 ‘낭만’이라는 주제 의식을 얼마나 탁월하게 구현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올해 9월 둘째주 기준 유료웹소설 베스트셀러 순위권 가운데, 흡입력 있고 차별화된 소재와 캐릭터를 내세운 작품, 무엇보다 ‘시간 이동’이라는 클리셰에 당위성을 부여하여 건강한 대중적 낭만을 지향하는 작품을 두 편 선정해 보았다. 건강한 대중적 낭만의 지향을 관건으로 삼는 까닭은,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웹소설이라는 매체를 넘어서 웹툰 혹은 영상화까지 내다보기 위한 상업적 지향이기 때문이다. 




1) 이세계 영주가 밥을 잘 먹임 (이디즈 작가, 9월 둘째주 기준 유료웹소설 베스트셀러 32위)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밥심’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인은 밥심’, ‘먹고 살려고 일한다’는 말처럼 밥을 잘 먹는 것은 열심히 일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잘 사는 것과 관련된다. 이 작품은 ‘밥심’에 대한 낭만을 제대로 구현하고자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서 어촌 마을 에버그린이라는 이세계로 공간 이동을 감행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차원 이동이 아니라 전생을 선험적 자산으로 가지는 시간에 대한 낭만을 전제로 한다. 전생의 현실세계에서 습득한 영양학적 소양을 모두 간직한 채 도달한 후생의 이세계에서는 이것이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귀한 자산이 되는 것이다. 이때 이세계는 우리가 겪은 적 없는 이상적, 목가적 과거의 형상화로 여겨진다. 단순한 차원이동을 넘어서 공간의 변화를 가능케 한 근원적 ‘시간 조종’의 서사는, 캐릭터 주변의 환경이 전적으로 쇄신되어야 진정한 치유와 회복이 가능하리라는 독자의 의지와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세계라는 배경을 활용, 현실의 독자들에게 친숙한 식재료를 ‘낯설게 함’으로써 ‘밥심’의 본연의 가치를 거듭 강조한다. 작중 소시민들은 낯선 식재료들에 편견 없는 건강한 삶의 단면을 고위 귀족들, 나아가 작품 바깥의 독자에게 제시한다. 한국인의 ‘밥심’은 적어도 에버그린에서만큼은 저렴한 값에 싱싱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공급받는 소시민을 중심으로 전파된다. 그야말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노스텔지어, ‘회복’을 기원하는 웹소설 독자들의 목가적 판타지 그 자체인 셈이다.

  이 작품이 작품 내적으로 오늘날 웹소설 독자들의 ‘낭만’을 제대로 저격한 대중적 주제 의식을 강점으로 가진다면, 외적으로는 그러한 주제 의식을 다양하게 매체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점으로 제시할 수 있다. <대장금>이나 <식객>에서 보듯 ‘요리’와 ‘음식’은 소비자의 시각적 흡인을 고려한 단골 소재로서 비주얼 매체에서 흔히 의도적으로 전면화된다. 작품의 목가적인 배경, 텍스트에서부터 강조되는 여러 음식들의 각양각색 비주얼로 인해 웹툰화를 고려하기 비교적 수월할 뿐 아니라, 작중 현실 음식들의 식재료 선정 및 조리 과정 자체를 콘텐츠화한 요리책 굿즈 출시와 같은 아이디어도 떠올릴 수 있다. 

  OSMU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타겟은 2040 여성 독자들이다. 현재 작품의 여성 독자 비중은 22% 정도로 다른 작품에 비해 약 5-10% 정도 높은 정도이나, 웹툰화 및 타 플랫폼 유통 시 여성 독자들의 유입은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여성향 애니메이션으로의 각색도 긍정적으로 고려할 만하다.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라이트노벨을 원전으로 한 치유계 이세계물 애니메이션이 인기리에 제작되어 왔다는 점도 이 작품의 일본 수출용 애니메이션으로서의 판권 가치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뿐만 아니라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비주얼노벨 등 게임화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다. 주인공은 식재료 또는 요리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제 경영 시뮬레이션 과정을 방불케 하는 단계적 과제와 해결안을 제시한다. 그 점에서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시나리오로서의 각색 가치도 충분하다 할 만하다.

  작중 평범한 소시민 2030 한국 남성의 자아를 대변하는 주인공 도미닉은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굳은 심지나 천재적인 능력을 뽐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업에 걸맞는 전문성으로도 충분히 ‘밥값’을 한다. 그가 제시하는 통풍을 완화하기 위한 식습관 개선안, 임산부의 붓기를 빠지게 하는 식단은 부엌 몇 번 기웃거려 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이다. 다른 먼치킨 캐릭터에 비하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그의 지식, 그것이 슬기롭게 활용되는 이세계 현장에서의 ‘밥심의 낭만’이야말로, 외려 이 작품을 대단히도 친근하고 소박하게 느끼게 하는 ‘제대로 온 특이점’이라 하겠다. (개인 평점: ★★★☆☆)




2) 시간을 달리는 소설가(피아조아 작가, 9월 둘째주 기준 유료웹소설 베스트셀러 4위)



  오늘날, 우리는 사실적시조차 명예훼손의 죄목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적재적소에 정확한 언어로 입 밖에 낼 수 있다는 것은 말하는 행위 자체의 단순함에 비할 바 없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마치 시대의 그늘을 대변하는 듯한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낭만’에 관한 판타지가 된다.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단순하다. 가난한 고아 작가 지망생이 병사 후 12살로 회귀하여 천재 소년 작가로 활동한다는 예사로운 클리셰다. 그러나 문학의 가치가 ‘무엇’이 아닌 ‘어떻게’에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뻔한 클리셰를 풀어내는 작가의 글솜씨는 결코 뻔하지 않다. 주인공이 무너진 삶의 입지를 회복해나가는 장르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인간의 심연을 폭로하는 듯한 날카로운 필치와 재치 있는 대사가 서사의 풍미를 더한다. 20대 초반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작가의 필력으로 인해 독자평 가운데서는 ‘시달소는 피아조아 작가 본인의 이야기’라는 우스갯소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띌 정도다.

  여느 회귀물, 먼치킨물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주인공의 출중한 재능을 바탕으로 사이다 같은 승전보를 거듭한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인 탄산을 과다 섭취하는 곳은 지극히 현실의 위장이다. 고아 소년이 학교와 사회, 심지어 그 작은 보육원 안에서조차 당면해야 하는 현실적인 부조리, 거대 미디어 재벌 백합그룹의 정치적 암투, 세상에 거리를 두며 글쓰는 이들조차 권력욕만큼은 거리를 두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단의 헤게모니…. 잘 벼려진 냉소적인 문체가 묘사하는 현실은 주인공의 행보를 단지 조숙한 천재 소년의 언행을 넘어 ‘촌철살인의 판타지’로 보이게 한다. 

  이 작품의 경우 웹툰화 시점까지는 탄력적인 각색만으로도 대형 IP인 원작 독자들을 유치함으로써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영상화 이후부터는 다르다. 영상화는 더 많은 다중에게 서사로서의 가치를 냉정하게 평가받는 관문이다. 이 작품의 경우 과히 핍진적인 무대 설정과 묘사로 인해 독야청청 주인공의 기행과 성공 신화의 위화감이 여타 먼치킨물에 비해 유독 와닿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최대 관건은 바로 주인공의 ‘느슨한 성공 씬에 긴장감을 주는’ 안타고니스트의 설정 여부다. 새로운 캐릭터를 설정하거나 혹은 본작 조연의 존재감을 키워 주인공 문인섭의 맞은편에 앉힐 필요가 있다. 주인공이 위기 의식과 성장의 계기를 제공하는 (조력자로서의) 적대자를 필요로 하는 사례를 우리는 일찌감치 접해 왔다. 작년 드라마화된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송중기가 아닌 이성민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했음을 상기해 보자.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타 장르에 시나리오 원작이기는 하나 오늘날의 ‘마동석’을 성공적으로 브랜딩한 <범죄도시 1>의 최대 공로자는 마석도 형사가 아니라 악랄하기 그지없는 장첸이었다. 관객은 사이다를 마셔도 이유를 찾는다. 사이다를 마셔야 할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마시는 사이다는 공연히 관객의 신트림만 유발할 뿐이다. 촌철살인의 개연성, 핍진성 있는 낭만에 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2018년 9월 ‘웹소설은 스낵컬처인가 문학인가’ 하는 문제의식으로 당시 네이버시리즈 순위권의 웹소설들을 검토한 적이 있다. 방법론은 스낵컬처의 대표적 특성으로 거론되는 ‘끊기 신공’이 다음 회차 감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수용자 반응 지표(댓글)을 통해 분석하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의 결론은 ‘웹소설도 문학’이라는 것이었다. 찰나의 ‘끊기 신공’보다도 문학의 본질, 즉 ‘언어로 짜임새 있게 표현한 예술’로서의 본질에 충실한 텍스트가 순위권에 포진해 있었으며, 독자 반응 역시 문학으로서의 기본적 구성 요소에 관한 평가에 집중되어 있었던 탓이다. 웹소설도 소설이라면, 기성 문학만큼이나 깊이 있고 정교한 언어로 구성된 작품이 주목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시간을 달리는 소설가>가 웹소설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이다. (개인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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