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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Feb 08. 2019

윤종빈 감독의 재능이 의심스럽다 <공작>


예고편이나 광고, 실제 모티브 사건을 보면 첩보물 같지만 사실 첩보물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 첨단 장비 보다 일상적 사물들이 더 많은 포커스를 받고 요원들은 총보다 입과 얼굴로 기싸움을 한다.

<공작>에서 윤종빈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요원 흑금성의 공작 스토리' 그 자체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의 감정이나, 정체성 혼란 등은 이 영화에서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인간 내면이 아닌 첩보 스토리를 주된 플롯으로 삼으면서 스펙터클 보다 차분한 드라마식 풀어내기를 택한다? 보통 재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윤종빈 감독의 최고 장점은 디테일한 고증과 맛깔나는 대사다. <용서받지 못 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같은 전작들은 언뜻 생각해도 명장면, 명대사들이 많이 떠오른다. 하지만 첩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대사와 내레이션이 많고 서사 위주의 전개를 택한 <공작>에서는 딱히 떠오르는 대사와 기억에 남게 디테일한 장면이 없다. 사실 이런 문제점은 바로 전작 <군도>에서도 나타난 문제점인데 차기작 <공작>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는 건 전작들에서 보여준 윤종빈의 재능이 이젠 명을 다 한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공작>은 굳이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를 떠나 그냥 영상 연출 면에서도 평범하다 못해 진부하다. 주인공들이 전반에 나눈 매개물을 통해 후반에 우정을 확인하는 방식, 양자 간의 대립을 담는 장면에서 화면 중앙에 중립자, 절대자를 놓고 양측면에서 대결하는 연출은 전혀 독창적이지 못하다.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의 엔딩씬 역시 정말 전형적이고 노골적인 연출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장전되지 않은 총으로 하정우의 머리를 내리찍는 최민식의 모습을 보여주며 러닝타임 2시간 동안 보여준 인물의 전사를 한 장면으로 요약한 윤종빈의 번뜩이는 연출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설상가상 윤종빈 감독은 실패한 연출의 영화에 노골적이고 짙은 정치색을 쏟아붓는다. 마치 애초부터 <공작>은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처럼 플롯의 전개, 인물들의 행동, 대사들이 모두 후반에 폭발하는 정치성에 맞춰져 움직인다. 다듬어지지 않고 투박한 스타일로 강한 정치색을 내뿜는 방식이 이 영화를 특정 진형의 선전 영화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공작>은 황정민과 이성민 두 주연 배우의 연기에 크게 의존한다. 안 그래도 대사가 많은 영화인데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 씬 마저 많다. 여러 방면에서 마이너스가 된 연출의 영화가 2시간 동안 그나마의 긴장감, 생기를 유지하는 이유는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이다. 생각해보니 윤종빈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이건 감독의 연기 디렉팅이 좋아서였을까? 그냥 배우 운이 좋아서였을까? <군도>와 <공작>을 보고 나니 후자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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