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과 위험을 동시에 지닌 공동체로서의 가족과 흔들리는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다루는 영화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설명이나 묘사 때문에 감상과 격을 해치는 것인데 <포스 마쥬어>는 전언의 구체성과 깔끔한 표현이 돋보인다.
본격적인 갈등은 눈사태 이후에 시작되는데 눈사태 이 전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파편적으로 이동하는 가족의 모습 등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일종의 전조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OST로 쓰인 비발디 '사계' 역시 러닝타임 내내 사건이나 갈등이 터지기 전 전조곡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포스 마쥬어>는 형식적으로는 무언가를 계속 암시하거나 예고하지만 극 중 인물들은 투명하고 구체적인 대사를 한다. 캐릭터들의 대사가 얼마나 직설적인지 눈사태 이후 주인공 부부의 대화는 거의 모든 시퀀스에서 '갑분싸'를 만든다. <포스 마쥬어> 속 인물들의 대화는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균열과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대사로 겨루는 인물들의 감정싸움을 보고 있으면 홍상수의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포스 마쥬어> 의 또 다른 훌륭한 점은 갈등을 겪고 있는 두 주인공 중 어느 한 쪽에 더 감정적으로나 설정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고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를 갖췄다는 점이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고는 하나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남편, 용서하는척하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의 실수를 들쑤시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와이프.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관객 입장에선 선뜻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기가 난감해진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멋진 점은 영화의 마무리다. 눈사태 이후 부부는 히스테리로 인해 주변 모든 인물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건 부부의 자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어떻게든 전통적 가족관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부의 의지로 휴가 마지막 날, 연출된 재난으로 조난된 신뢰를 간신히 봉합한 것처럼 보여준다. 남편의 구조씬 뒤에 출구 터미널에서 나란히 병렬로 걸어오는 가족의 모습이 영화 초반 가족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스키장을 올라갔던 씬들과 대비되면서 조금 찜찜하지만 어쨌건 해피엔딩이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가족은 드디어 악몽 같았던 스키장을 벗어나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맡긴다. 그런데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 길을 미숙한 버스 기사가 운전하게 되고 버스는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 같다. 이 불안감은 관객을 포함한 모든 승객들이 공유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버스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은 와이프다. 앞서 보여준 연출된 구조 사건은 아이들과 남편을 위한 조작된 신뢰 회복이었지 자기 자신은 여전히 남편을 용서하지 않았으며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버스에서 내린 부부는 같은 방향을 보며 걸어간다. 비록 한 아이는 다른 남자가 안고 있고 부부는 앞뒤로 따로 떨어져 가지만 같은 방향으로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엔딩에서 이들이 걸어내려가는 산 길에는 눈이 없지만 <포스 마쥬어> 속 그 어떤 장면 보다 창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