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법의 부작용: 위험의 증가
산업안전 리스크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에서는 사고조사단을 파견하여 사고가 발생한 원인들을 파헤쳐 보는 일을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고가 난 이후 귀납적으로 추론해보면 사고는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둔갑한다. 사고가 일어나게 한 핵심 요인들을 거꾸로 어떤 조치들을 했는가를 조사해보면 미흡했던 부분이 발견되고, 경영책임자나 관리자들은 위험을 방치한 것과 같은 평가를 받게 된다. 사실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요소는 너무나 다양해서 그 모든 것을 정의하기도 어렵고, 정의했다 하더라도 모든 위험을 동일한 무게로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서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들은 반드시 적절한 사전조치를 해야 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 않은 이유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례 1. 지하철 청소노동자의 위험한 청소작업 상기 사례는 몇 년 전 “용산 지하철역 청소 위험천만~안전불감증 경고”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에 공개되었던 사진이다. 사진과 같이 청소용역 노동자가 아무런 안전시설 없이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높이에 올라가 청소를 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38조에 의하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추락할만한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위 법령에 기준 높이나 추락방지 조치에 대한 세부사항도 지시되어 있어 상기 사례는 사업주의 명백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라 볼 수 있다. 상기 사례에서 분명한 것은 중대재해의 위험이 있고, 피해자는 힘없는 근로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처벌 측면에서 현행법상 청소노동자의 사업주와 해당 사업장을 관리하는 도급업체의 사업주가 책임을 지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그렇게 처벌을 한다고 해서 이런 사례가 또다시 안 나올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이 사례를 봐야 한다. 이 사례의 진정한 책임자는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이 사례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지하철 역사 청소를 담당하는 수급인 대표가 돈을 아끼기 위해 청소노동자를 위험으로 내몰았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돈이 충분히 있고 안전에 대한 의식이 있는 대표라면 어떻게 저렇게 작업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돈보다 사람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저런 장면이 나와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에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위 사례에서 사고가 났을 때 대표는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 정도의 금전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눈앞에 뻔히 위험이 보이는데도 작업을 지시했다면 사고 발생 유무를 떠나 적발되는 순간 벌금도 엄청날 테고 사고라도 난다면 벌금과 유족 합의금 등으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생명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쳐도 너무 위험한 도박 같은 지시였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입찰 방식의 도급계약은 도급인이 어느 정도 예산의 상한을 정해두고 최저가 입찰을 진행한다. 물론 수급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인력이나 공사 실적 등도 함께 평가하긴 하지만 대부분 대동소이하여 최저가 입찰자에게 낙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애초에 예산의 상한도 거의 원가 수준에서 결정이 되므로, 입찰자들은 높은 가격을 써내기도 힘들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입찰자들은 거의 인건비 + 이익 수준에서 입찰가를 써내고, 위험관리 비용은 별도로 견적에 포함하기가 힘들어진다. 물론 국내 공사 계약에 대해서는 견적 항목에 ‘산업안전 관리비’를 계상하여 포함토록 하고는 있지만 견적의 1~2% 수준으로 작은 공사에서는 실질적인 조치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크기이다. 행여 의식 있는 영세업자 대표가 충분한 안전비용을 포함해 주지 않는 계약에는 입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금액에 용역을 수행하게 되어있다. 결국 양심 있는 대표들만 일감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런 낮은 견적과 낙찰가 혹은 기성금 등의 문제로 영세업자들이 적절한 안전조치를 하기 어렵다는 실정을 감안하여, 2020년부터는 도급인의 작업장에서 용역이 수행되는 경우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를 강화하는 형태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다. 이렇게 되면 영세한 수급인 대표가 안전시설에 대한 비용 부담 없이 용역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부담은 도급인 측에서 모두 부담해야 하는 사항으로 크기 측면에서는 다를 수 있지만 수급인과 똑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위 사례의 도급인은 지하철 역사를 운영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기업, 서울교통공사다. 지하철의 경우 대부분의 수익이 국가 보조금과 시민들의 지하철 요금, 역사 임대 등의 수익으로부터 오는데, 서울교통공사가 공시한 2016~2019년까지의 수익은 무려 5,864억 적자로 발표되었다. 벌어들이는 것보다 쓴 돈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수급인들의 안전을 확보해 주기 위해 비용을 투입하려면 적자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생각해서 그 정도는 투자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기업이란 수익이 없고 은행들이 채권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영업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지하철 운영이 중단된다는 이야기이다. 시민들의 불편도 커지겠지만 수십만의 근로자들이 실업자가 될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그냥 모른 채 하는 것 또는 시민들의 지하철 이용 요금을 올려서 조금이라도 예산을 더 확보하는 것이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둘 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냥 모른 채 하다가 적발되거나 사고가 나면 어차피 그 책임은 모두 사업주와 기업이 지도록 되어 있다. 너무 위험천만한 의사결정이다. 이용요금을 올리는 것은? 당신은 서울교통공사의 안전예산 확보를 위해 요금을 올리는 것에 찬성할 것인가? 시민들도 교통비 부담이 가중되어 반대 여론이 형성될 것이고, 무엇보다 여론을 먹고사는 정치인들이 쌍심지를 들고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도 일부 참여가 필요한 것처럼 모든 참여자, 즉 정치인, 언론인, 경제인, 일반 시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야 상황이 개선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정치인들이나 노동계 인사들의 움직임은 “난 모르겠고 어쨌든 알아서 안전하게 만들어놔. 안 그러면 여론이 가만있지 않을걸? 우리도 여론이 무서우니 할 말이 있도록 각종 규제 다 만들어놨지~”라는 식이다.
분명한 것은 서로 합심하지 않으면 위험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증가할 뿐이라는 것이다.
위 표와 같이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의 안전사고에 대한 기업 처벌을 강화한 이후에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영국의 경우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래프의 기업 처벌법 제정 전 추이를 본다면 기술발전과 교육 수준의 향상 등이 사망사고를 줄이는데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산업재해는 너무나 가슴 아픈 결과다.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근로자가 죽거나 다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모든 참여자가 함께 고심하고 참여하지 않으면서 기업에만 책임을 묻고 알아서 방안을 내놓도록 한들 큰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진심으로 산업재해를 줄이기 원한다면 예방 차원에서 효과적인 정책과 참여 방안이 무엇이 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