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시 송편에 깃든 아흔다섯 어머니의 사랑

금동이 할머니의 어버이날

by 서하



어버이날을 앞두고 금동이 할머니의 마음이 바빠지셨다. 오른팔은 하루 종일 떨리고, 혼자 옷을 입거나 밥 한 숟갈을 뜨는 것조차 이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간단한 샤워도 혼자서는 버거워 자식들이 돌아가며 매일을 곁에서 챙기고 있다.

"어버이날이 뭐 중하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시면서도, 마음 한편이 들뜬 듯 보였다. 금동이 할머니의 자식들 나이도 이제는 모두 60대, 70대 노인이 되었지만, 할머니 눈에는 여전히 어린 자식들일뿐이다. 내 새끼들 입에 뭐 하나 더 넣어주고 싶은 마음은 나이와 상관없는 모성의 깊은 자리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것 같다.

금동이 할머니의 자녀들도 이제는 다들 허리가 굽고 관절이 뻐근해진 노인이 되었다. 큰아들은 벌써 일흔이 넘었고, 막내딸도 환갑을 지났다. 그런데도 그들은 매일 아침 '어머니는 어떠신지' 서로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할머니의 자녀들이 서로에게 물려받은 첫 번째 유산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었다.

"젊을 적에는 몰랐지. 부모님 마음이 이런 건지..."

할머니의 큰아들이 어느 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신의 자식들은 각자의 삶으로 바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런 아들이 어머니 곁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자신도 이제 노인인데, 더 늙은 노인을 모시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며칠 전, 할머니께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모시 송편이 먹고 싶은데… 자식들 오면 같이 좀 나눠 먹게 사다 줄 수 있을까?"

그 말씀이 어찌나 조심스럽고 정다운지, 나는 그 부탁을 가슴 깊이 새겼다. 할머니를 돌보며 해드릴 수 있는 일이라곤 이런 작은 심부름뿐이었다.

그날 오후, 동네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떡집으로 향했다. 모시잎 향이 은은하게 스며든 송편은 보기만 해도 고왔고, 말랑말랑한 떡 안에 달콤한 콩앙금이 촉촉이 들어차 있었다.

포장을 곱게 해서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자, 작은 상자를 열어본 할머니의 눈이 순식간에 촉촉해지셨다.

"이걸 어찌 다 샀다냐… 곱다 곱어… 자식들 올 때 이거 주면 되겠다."

할머니는 그저 보시기만 했는데, 한참을 말없이 떡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가에 살짝 고인 눈물을 손등으로 쓱 닦으셨다.

내심 먹고 싶으셨던 것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내 자식들 오면 이걸 먹일 수 있다'는 생각이셨던 것 같다. 그 마음이 어찌나 깊고 순한지,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금동이 할머니의 자녀들은 모두 노인이 되어 각자의 관절통과 고혈압, 당뇨와 같은 노화의 증상들과 싸우고 있다. 그런 그들이 또 다른 노인을 모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위해 모이는 날이면, 그들은 다시 할머니의 자식이 된다. 서로의 아픈 허리를 붙잡고 어머니 병원에 함께 모시고 갈 때면, 그들은 흰 머리카락 사이로 깊어지는 주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금동이 할머니의 보물들 '이다.

자식들이 방문하는 날만큼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지는 날은 없다. 그들이 돌아가며 할머니를 찾아올 때마다, 나는 그 가족의 깊은 유대를 지켜보는 특별한 증인이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 그 사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따뜻한 사랑이 아닐까.

아흔다섯 해를 살아낸 손끝에서 피어난 모시 송편 한 접시는 단순한 떡이 아니었다. 그건 곧 '자식을 위한 삶'을 살아온 한 어머니의 진심이자, 시간이 담긴 눈물 같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노인이 된 금동이 할머니의 자식들은 다시 그 사랑을 어머니께 돌려드리려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나침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