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성미
"야 이 씨발년아! 그만 좀 해!"
라고 외쳤는데 교실 아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나를 자꾸 괴롭히던 부반장(한때 우정반지까지 나눴던)에게 참다 소리를 질렀다.
“야, 성미가 저 정도로 나오는 거 보면 네가 너무한 거 아냐?”
남자애들이 킥킥대며 그렇게 말을 던지니, 그 부반장도 어쩔 수 없이 웃기만 할 뿐 나에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 후에 그랬나, 아님, 그전이었나. 나는 우정반지를 나눈 친구 중 한 명에게 12시 45분(추정)에 학교 공터로 나오라는 쪽지를 받았다. 알았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 친구는,
“너 내 욕하고 다녔지?”
나는,
“아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얘도, 얘도 같이 얘기했어.”
그러면서 그 친구 편에 있는 두 명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한 명은 부반장. 나는 욕한 게 맞는데 뭐가 그렇게 당당하다고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문을 열었는지. 어린 날의 깡이라기엔 지금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한참 말로 싸우다가 서로 머리카락을 잡았다. 나는(내가 기억하기로는) 누구 머리채를 먼저 잡는 법이 없지. 하지만 응대엔 최선을 다해야 하지. 난 두피와 머리카락이 강한 편이라(그때가 그리워 ㅠㅠ), 많이 뽑히지 않았지만, 내 손엔 가득했다. 나도 놀랐다.
화는 풀렸는데 서로의 머리카락을 놓을 타이밍을 놓쳐 서로 어색하게 잡고 있다가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 준비 종이 쳤다. 갑자기 모범생이 된 우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 이따 봐!”
그 뒤로 우린 다시 ‘우정’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부반장에게 생애 가장 소중한 내 어릴 적 사진을 빼앗겼다. 케첩을 바른 식빵을 들고 먹으려다 재채기를 하기 직전의 사진! 케첩까지 사진에 나와 케첩을 바른 식빵인 건 99% 진실. 그 부반장은 우정으로 내 사진을 가져가서 또 우정이 깨졌을 때 끝까지 돌려주지 않았다.
날 질투했나?
여기저기서 날 좋아하니깐? 내 사진이라도 갖고 싶었니?
그 해는 갓 결혼한 담임 선생님이 이혼당하고 알코올 중독이 되어 학교를 드문드문 나오던 때였다. 우리는 서로를 놀리다가 물어뜯다가 한 아이로 좁혀 그 아이를 무자비하게 때리기까지 했다. 교실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라고 5학년의 나는 생각했다.
그 아이는 나의 유치원 동문인데, 목욕탕을 자주 가는 걸 아는데도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심했다. 말이 어눌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어머니가 그 아이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보다 그 아이를 자주 봤고 함께 있었던 적이 많았는데, 아무에게도 그 애 얘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선 밤에는 술 취한 고모부, 아침에는 술 취한 고모부 때문에 시끄럽다고 찾아오는 무당할머니가 있었다. 나는 그 얘기도 친구들에게 전혀 하지 않았다.
“너 팔이 왜 그래?”
“엄마한테 맞았어. 너는 얼굴이 왜 그래?ㅣ
”아빠 개고기 몰래 먹은 거 들켜서 뺨 맞았어. 힛“
친구는 장난을 치다 걸린 사람처럼 웃었다.
우린 맞았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서 공유할 수 있었다.
“그랬구나.”
학교에 나와도 술냄새를 풍기던 담임은 2학기에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 선생님으로. 그분이 담임이 되자마자 우리는 서로 아무렇지도 때리던 시간에서 벗어났다. 다른 반과 같은 존재들이 됐다. 가끔 목소리 높이고 말 잘 듣다 안 듣다가. 그래도 선생님 사랑받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 아이들. 선생님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그땐 그게 가능했었나 보다.
이제 바라는 건 하나.
1994년 구로남초등학교 5학년 11반 1학기 부반장! 내 사진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