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내 등을 볼 수가 없을까? 영원히. 그 점이 가끔 어린 나를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아니, 내 얼굴도 항상 대상을 통해서만 볼 수가 있지 않은가. 내가 보는 나-거울을 통해 보는 나란,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얼굴이다. 사람들은 좌우가 바뀐 채로 나를 볼 테니. 내 눈 또한 타인과 세상을 들여다보고 비춰주는 거울이다.
여러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굴리고, 노트에서 끄적이고 있다. 글 속에서 주인공은 이미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이 세상에 홀로 살아가고 있다. 그 대상이 죽은 어머니이기도 하고, 다른 이의 연인이 된 사람도 있다. 둘 다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통해 받아들이게 되는 내용이다.
우리는 원하지 않는 것을 간절히 원할 때가 있다. 내 경우, 진짜 원하는 건 이야기를 만들고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인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과도하게 책을 구매한다. 읽지도 못하고 이제는 감당도 잘 못하면서.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지만, 친구들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전화라는 것에 대해 공포가 있다고 여기면서. 그러면서 뭔가 안 풀리면 그 주제에 상관없이 "나는 오래 아팠던 사람이니깐", "이러다가 내 몸이 또 나를 공격할지도 몰라",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는 데에 집중하면서 징글징글한 연민에 빠지다가 힘들게 헤어 나오곤 한다.
이제는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의 '연민'이 아니라,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민'이길 바란다. 돌이켜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때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몸이 아프면 메말라갔다. 울음을 오래 참으면, 눈물이 몸 안의 빈 공간을 차지하느라고 다른 필요한 것들을 몸 밖으로 내보는 것 같다. 말라가고 말라가고... 울음을 목구멍에서 꺼내올 릴 때, 울음이 터져 나올 때 내 몸은 비로소 숨을 쉬고 필요한 빈 공간을 마련한다.
내 속에서 무서운 아버지, 슬픈 어머니, 내가 어른이 되는 걸 어렵게 했던 어른들, 날 해치려 했던 이들... 을 다 꺼내 비눗방울로 불어 날아가게 한다. 영원히 비눗방울에 갇혀 날아가게. 내 고통아, 그렇게 햇빛에 반사하는 비눗방울이 되어주라.
목구멍에서 계속 길게 꺼내고 빼내고 토해낼 때가 있다.
아니,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