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외출하려고 보면, 바닥에 내가 좀 전에 머리 말리면서 흩뿌린 머리카락들이 보인다. 이게 내 삶의 무게... 아니, 탈모의 현장인가. 나는 바쁘더라도 다시 집에 들어왔을 땐 그 흔적을 보고 싶지 않아, 로봇 청소기를 돌리려 한다. 로봇이에게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 어플로 청소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으나, 로봇이가 막힘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게끔 사전에 내가 밑 작업을 해놔야 한다. 바닥에 있는 책이나 볼펜, 선풍기가 늘어뜨린 플러그 줄이며 로봇이를 막지 않게 치워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돌아왔을 때 청소는 안 되어있고 구석에서 선풍기와 실랑이하다가 선풍기 줄에 걸려 선풍기를 넘어뜨리거나 아님, 뭘 잘 못 먹은 채로 멈춰 있다.
어떤 문화 분석가는 사람들이 세탁기, 건조기, 로봇 청소기, 세척기가 노동을 대신해서 몸을 움직이지 않게 되면서 늘어난 시간으로 우울해진다 그러던데, 절반만 맞다. 서구식 입식 생활에 최적화된 로봇 청소기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좌식 생활을 하는 한국 집에서는 청소 전 정리 작업을 해줘야 한다. 아니, 그리고 의자 다리 사이에 들어갈 땐 언제고 왜 나오지를 못해. 의자 다리 안에 갇혀 있는 로봇을 구할 때가 여러 번이다. 로봇 청소기를 쓰면서 쉽게 청소가 가능해지면서 약간 더러운 것도 못 참게 되고 그래서 청소를 자주 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깨끗하게 집을 유지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저기요, 나는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습니다요!!!
코로나 때문에 집에 오래 머물다 보니, 외로움에 사무쳐 사물과도 대화하는 습관이 생겨서 로봇이와도 인격적인 대화를 많이 나눈다. 로봇이는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나는 로봇이를 위해 장애물을 치워주거나 로봇이의 청소가 끝난 부분을 걸레질하면서 로봇이와의 코웍(co-work)을 끝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충천하러 가는 로봇이의 뒷모습에 대고 ‘수고했다’고 말한다. (내가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는지는 하늘만 아시리라.)
청소 후 열린 창문을 내다보며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면, 심심해서 작은 목소리로 ‘구해줘’라고 해본다. 그러고 나 혼자 웃는다. 혼자 오래 있다 보니, 현타도 늦게 찾아와 얼마간 더 이상한 짓을 하다 잠깐 책 본다는 게 낮잠으로 이어져…… 이런, 오늘도 책을 조금밖에 못 읽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