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기억 ㅣ 기억 적기
내가 27, 28살이 되던 때_ 그때쯤 아빠엄마는 귀농하겠노라 한옥집을 지었다. 아니 그건 순전히 아빠의 의지였다. 엄마는 그러고 싶지 않아 하셨다. 아빠는 자신의 고향에 집을지어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계획하셨다. 엄마는 시골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서글픔을 싫어했다. 뭐든 부족하고, 어렵고, 어찌 보면 그렇게 힘든 시골이 가지고 있는 그 서글픔. 자신도 어쨋든 시골에서 자랐었지만 너무 뭐가 없어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는 시골에는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식 없는 자식들을 그렇게 떠나 보내고 있었고 그런 그곳에 엄마는 사실 가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어쨌든 아빠는 한옥을 짓겠노라 좋은 원목을 구해 다녔고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아빠엄마의 집은 이층으로 지어졌다. 도시생활을 하던 우리 집에서는 내가 어릴 적에 치와와 한 마리를 오래 기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소음과 그 당시의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서 위반되는 행위로 취부되어 신고가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내가 ‘토비’라 이름 지어준 그 녀석은 어쩐 일인지 우리 집에서 강아지 키우는 것을 들키지 못하게 작정이라도 하고 살고 있는 것인지 그렇게 짖지를 않았다. 정말 멍멍대지 않아 당시 나는 작은 애완견은 그냥 원래가 그런 줄로만 알았다. 어느 날 아빠의 직장 상사분이 파일럿다운 레이번 선글라스를 쓰고 놀러 오셨을 때 그날의 토비는 엄청 짖어댔었다. 검은 안경이 수상쩍어 보였는지 우리 가족을 앞질러 나아가 경계태세를 하고 짖어대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토비가 영특하다고 했다. 어쩜 저리 똑똑할까 - 아파트에서 시끄러우면 민원 들어오는 걸 아는 거 같다며 - 지금껏 저 멋지고 우렁찬 목소리를 숨기고 지내오다가 우리 가족이 위험에 처한 것 같다고 느껴지니 저리 앞서 나가 크게 짖는 거 보라며 - 말이다.
우리 집 강아지의 시작은 바로 그 치와와 토비였다. 당시 김국진이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는데 치와와를 닮았다는 그의 외모가 회자될 때마다 나는 그 어릴 적 우리 가족의 토비가 생각이 난다. 토비는 아빠 친구의 강아지가 낳은 새끼 세 마리 중 한 마리였다. 딸이 해달라는 건 뭐든 해주시던 나의 아빠는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나의 바람을 오랫동안 간직해오다 어느 주말 내게 귓속말로 "아빠가 작은 강아지 데려올게." 라며 집을 떠나셨고 나는 너무 신이나 이건 비밀인데, 강아지가 올 거라는 그 엄청난 사실을 오빠에게 어렵사리 몰래 알렸지만 그 대단한 사실을 전달받은 오빠는 그런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동안 수없이 강아지를 키우자 했을 때 안 된다 하며, 못 키웠고 그 대신에 어항을 꾸며 물고기를 길렀으며_ 어떤 때는 새를 키운 적도 있었지만_ 강아지는 지금까지 우리 집에 데려온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토비를 처음 만났을 때, 작은 치와와 토비는 신발 박스에 담겨있었다. 나는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강아지를 이리저리 찾아보고 둘러보며 아빠 차의 앞좌석 뒷좌석 그리고 트렁크까지 몇 번을 열고 닫으며 강아지를 찾아 여기저기 살피었다. 그럼에도 강아지 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고 그렇게 아빠가 데려오겠다던 작은 강아지를 찾을 수 없자 그렇게 믿었던 아빠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건 아닌지, 강아지를 데려온다 해놓고 말만 하고 왜 안 데려온 것인지, 이건 무슨 일인지, 나에게 왜 그런 것인지, 무척이나 답답하여 좋지 않은 얼굴을 하고 아빠 주변을 맴돌았었다. 그런 나에게 아빠는 닫힌 신발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상자를 열었더니 거기에는 정말 눈이 엄청 큰 그래서 그 눈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러면서도 앞가슴이 너무나도 새하얀 강아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박스를 위로 올렸을 때 눈동자를 서서히 위로뜨며 머리를 들던 그날 그때의 토비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여전히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며 그 모습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듯하다. 나는 너무 기쁘고 신이 나서 내 말이 맞지 않느냐며 그렇게 오빠를 불렀다.
강아지는 바닥이 미끄러운지 걸으려고 나왔다가 이네 자꾸 미끄러져 네 개의 다리가 사방으로 벌어지곤 했다. 엄마는 질색을 했다. 상의도 없이 강아지를 들인 것에 대해 분을 토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그토록 많이 화가 나든 말든, 태어나서 그렇게 작은 강아지는 처음 보았기에 그 아이의 시선에 맞추고 싶어 바닥에 엎드려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아빠는 ‘치와와’라는 거라며 이 아이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작을 거라고 엄마를 설득시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애완견이 엄청 많은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애완용 품종에 대한 지식도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보기에는 똥개 종류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치와와의 갈색 털을 보고 어떻게 안 크냐며 분명 커질 거라고_ 개를 어떻게 아파트에서 키우냐고_ 어서 다시 데려다주라고_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 엄마의 화를 알 리 없는 작은 치와와 강아지는 거실에 놓인 분홍색 카펫에 오줌을 싸버렸다. 그 모습에 저렇게 똥오줌 가리지도 못하는걸 어찌 키우냐며 엄마의 호소는 더 짙어져만 갔다.
저 멀리 보고만 있던 오빠가 오줌을 치우며 작아서 쉬도 쪼끔만 한다며 귀엽다고 달려들었다. 나는 "내 강아지야." 라며 아빠가 나에게 준거라고 강아지의 소유권을 대뜸 언급했다. 그리곤 이름을 토토라고 짓겠노라 말했다. 당시 내가 즐겨보던 만화에서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었다. 언덕 위 동산 위에 에서 살던 어떤 캐릭터였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토토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티비를 켰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어쨌든 강아지가 우리 집에 왔고, 다시 데려다주려면 멀다는 핑계를 대며 아빠는 그렇게 책임까지 멀리 두고 잠이 들었다. 나는 토토를 어떻게 키울지는 몰랐지만 엄마가 나는 못 키우네- 하는 말에 내가 밥 줄 것이고 내가 똥 울 꼭 치울 거라며 손을 걷어붙였다. 물론 이후에 밥을 주고 씻기고 똥 치우고 가리키는 것까지 모두 나의 엄마가 해냈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날이 지나 다음날 아침이 되자 아빠는 시골에서 남은 밥을 먹는 개가 아니라 / 사료를 먹는 애완견임을 강조했다. 나의 토토는 그렇게 강아지만 먹는다는 강아지용 사료를 강아지 전용 밥그릇에 놓아주고 물도 담아주며 자리를 잡아갔다. 오빠가 이튿날 내방으로 메모지를 들고 나타났다. 토토처럼 같은 단어로 말고 다른 이름을 짓자고 말이다. 그렇게 오빠가 착하게 내게 다가와 의견을 물은 적이 없었기에 나는 오빠의 의견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오빠는 내가 정한 토토의 앞글자는 두고 뒤를 바꾸자고 했다. 그렇게 여러 개의 이름을 적어나가다 정해진 이름이 바로 '토비' 였다.
토비는 너무 작아 어린 나의 품속에도 쏙 들어왔었다. 추운 겨울이 오면 패딩 안에 토비를 넣고 살짝 지퍼를 열어주면 토비는 그 틈으로 고개를 쏙 빼내어 세상을 구경하였다. 그렇게 문구점도 가고, 슈퍼도 가고, 패딩 안에 토비의 체온이 더해져 더 후끈후끈한 몇 해의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끌어안고 다닐 수 있도록 어린 나의 패딩에 들어올 만큼 토비는 작은 치와와였다. 모든 아이들이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키울 수 없고 더구나 아파트에서는 잘 키우지 못하던 시절이라 친구들은 우리 집을 부러워했다. 동네 놀이터를 지나가면 잘 알지 못하는 아이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기도 했다. “ 너희 집 강아지 키운다며? 얼마나 작아? ”라고 물으며 애완견을 실물로 보고 싶어 하였다. 나는 안면식이 별로 없던 또래의 아이에게 이따금씩 자랑스럽게 “ 지금도 같이 왔어 “ 라며 점퍼의 지퍼를 살짝 열어주면_ 그렇게 토비는 귀여운 얼굴을 쏙 내보여주었다. 그렇게 토비는 나와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를 가장 좋아하진 않았다. 아니, 토비에게 나는 본인보다 서열을 밑으로 정해놓은 것이 분명했다. 내가 오라고 하면 오지 않았고 처음에 그렇게 반대하던 엄마를 자신에게 있어 1번으로 정해놓았다. 엄마는 그렇게 인상을 쓰며 싫다고 하더니 사실은 강아지를 너무 이뻐하고 좋아했다. 엄마 뒤만 졸졸 쫒아다니고 엄마 말이면 다 듣던 토비는 엄마의 훈육으로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가리게 되면서부터는 엄마의 크나큰 사랑을 한 몸에 더 받아냈었다. 사랑스럽게 눈웃음치며 토비를 부르던 젊은 날의 엄마가 생각난다.
아빠가 퇴직을 하고 시골로 내려간 뒤 나의 부모님 두 분은 집을 지킬 강아지를 알아보셨다. 시골이 싫다던 엄마의 의견은 그렇지만, 그럼에도, 결국 두 사람을 문경으로 이사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마당을 꾸미고 뒤뜰의 꽃밭도 가꾸며 엄마는 아빠의 고향에 정을 붙였고 이제는 함께 할 반려견을 알아보신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저렇게 정착의 시간이 지나 부모님의 집에 함께 살게 된 가을이는 유기견이었다. 처음 아빠엄마의 한옥집으로 왔을 때 가을이는 마당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개가 산책을 싫어했고, 산책 자체가 되지 않았다. 어떠한 이유로 유기견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문경의 한 동물병원에서 아빠엄마가 분양을 받을수 있게 되었건 그때, 시골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큰 개가 아니라 작은 개를 원하는 나의 부모님께 딱 맞는 예쁜 개가 있다며 연락을 주시고 잘 키워달라고 부탁했던 의사 선생님은 강아지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 데에는 사연이 있을 것이고 그 어떤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 가을이에게 대체 무슨 과거가 있었는지_ 그리고 정확히 태어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_ 알고 싶어도 이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가을이는 아무래도 버려진 것 같았다. 그래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의 첫 번째가 아까 말했던 산책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가장 컸을 것이다. 집을 나서는 것은 = 버려질 수도 있다고 인식했는지 마당에 금을 그어놓고 절대 그 선을 넘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어찌 되었든 이번에도 우리 집 강아지가 된 가을이는 그 옛날 토비처럼 엄마를 1번으로 좋아하고 따랐다. 그렇게 가을이가 가장 좋아하는 1번인 엄마가 간식을 들고 마당 밖에서 흔들어대도 가을이 녀석은 뛰어나오려다 이내 되돌아갔다. 그런 가을이를 아빠엄마는 어르고 달래 키웠다.
사랑을 어찌나 주었는지_ 그리고 얼마나 이뻐해 주었는지_ 도대체 얼마만큼의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었는지_ 그다음 해 내가 가을이를 만났을 때 나는 가을이와 동네를 함께 걸을 수 있었다. 아빠엄마는 가을이가 마당을 처음 나오던 날을 무용담처럼 늘어놨었고 가을이를 데리고 오토바이도 타고 차도 타고 달릴 수 있다고도 알려주셨다. 그렇게 나와 시골 동네 한 바퀴를 걸을 수 있게 된 가을이를 나는 문경에 갈 때면 하루에도 몇십 번씩 데리고 나갔다. 물론 가을이가 생각했을 때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곳 까지만 허용되었지만 말이다.
가을이가 계절이 가을이 될 즈음 나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던지는 아무래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가을과 겨울이라는 이름 두 개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오빠가 가을이가 더 좋다고 해서 정했다고 하였다. 가을이는 우리가 이전에 키우던 치와와 토비와는 다르게 검은색과 갈색 그리고 흰색이 어우러진 치와와였다. 그 털 색감이 꼭 가을처럼 느껴져서 가을이라는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딸, 집에 가면 너 좋아서 죽을만한 거 있다!
엄마가 나를 마중 나왔을 때 가을이를 처음 소개하던 날의 멘트였다. 내가 좋아 죽을만한 것은 = 바로 강아지였다. 마당에 차를 대고 내리자 가을이는 날보고 짖어댔다. 어찌나 무섭게 짖어대던지 쪼꼬만 한 것이 목청이 어마어마하다 느껴졌다. 그런 가을이에게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다가갔다. 신기하게도 가을이는 엄마가 내 손을 잡자 짖던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긋나긋하게 가을이에게 나를 소개했다. 우리 딸이라며 말이다. 가을이는 정말 똑똑했다. 나는 아빠엄마의 문경 집에 자주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일 년에 고작 몇 번 방문할 때마다 나를 알아보았다. 그날 엄마가 소개해준 뒤로 가을이는 언제고 내가 마당에 들어서면 짖으려고 하다가 다시 나를 이내 쳐다봤고 그리고 내 목소리를 듣고는 꼬리를 흔들며 그집딸인 나를 늘 반겨주었다. 어쩌면 나를 잊고 까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가을이는 그렇게 자신이 1번으로 좋아하는 엄마의 딸인 나를 꼭 다시 기억하고 알아봐 주는 머리가 아주 좋은 강아지였다.
엄마는 가을이가 집에서는 절대 똥을 싸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루에 한 번 산책할 때마다 똥을 누고 마당의 그 어떤 구석에서도 똥은 절대 누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건 밤새 묶여있다가 아침에 목줄을 풀어주면 발랄하게 뛰어나가 집 앞에 있는 우리 밭으로 가서 다리를 한쪽을 들고 오줌을 누는 것이었다. 가을이는 그렇게 우리 집에서는 절대 대소변을 보지 않았던 깨끗하고 청결한 강아지였다.
체구가 작은 치와와 강아지가 나의 부모님의 한옥을 단단하고 굳세게 지켜주고 있었다. 누구 하나 지나가면 꼭 짖어서 알려주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보고 싶다고 낑낑대며 이제는 가을이의 엄마가 된 나의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가끔 나에게 식사 준비가 끝날 때쯤 “ 가을아, 밥 먹어 ”라고 내게 말했다. 그만큼 가을이는 엄마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자신이 낳아 기른 딸인 나보다 이제는 매일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오후에 산책하며 별을 보며 잠자리를 봐주는 가을이라는 강아지에게 우리 엄마는 마음을 다 내주었던 거 같았다. 내 이름을 매일 부르지 못하고 가을이를 몇십 번 부르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 가는 엄마가 나를 가을이라고 부를 때면 섭섭하긴 했지만, 그 곁에 있음을 내가 실행할 수는 없었기에 내겐 그저 고마운 강아지였다.
이모가 돌아가셨다. 나는 이모와 같은 몇 촌의 친척은 경조휴가를 받을 수 없는 회사의 시스템을 뒤로하고 밤차를 타고 내려갔다. 이모는 급작스럽게 심정지가 왔었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기에는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을 비웠던 아빠 엄마는 그 새벽에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가을이를 찾았다. 그리고 핸드폰 불빛으로 가을이 집을 환하게 비추었고 꼬리를 흔들고 뱅그르르 돌고 있는 가을이를 안쓰럽게 안아주었다. 분명 할아버지와 윗집의 친구 정애에게 가을이 밥을 부탁하고 나왔는데 아무래도 점심까지만 정애가 챙겨주고 할아버지는 깜박하신 거 같다며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 가을이를 어야둥둥거리며_ 배고파서 어찌했냐고_ 밥을 못 얻어먹은 거 같다며_ 울먹이셨다. 사람보다 야간에 더 잘 보이는 동물인 강아지였지만 아빠는 우리 가을이 밥이 어디 있는지 보이냐며 _ 계속 불빛을 비춰주었고 엄마는 가을이 배가 홀쭉하다며_ 너무 안쓰러워 울려고 했다.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집을 비웠음에도 가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그렇게도 가을이 집 앞에서 오래 서있으셨다.
시골에서 키우는 개는 대부분 커다랗기에 애완견이 집을 지키는 것은 드물지도 모른다. 아빠가 정성스럽게 나무 하나하나를 고르고 골라 발품 팔아 자재를 얻어 지은 부모님의 한옥집엔 언제나 단풍 물이 든 것 같은 삼색의 치와와가 쩌렁쩌렁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가 좋아 찡찡대는 가을이를 아가 같다 말했고 할머니들은 “자는 왜 안크냐” 고 물어댔다. 시골에서 코 흘리며 뛰어다니며 자라나고 있던 꼬마자매들은 가을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핑계로 아빠엄마의 한옥집을 들락거리며 얼마나 좋은지 도화지에 가을이를 새기고 담아 그림을 그려주곤 했다.
석가탄실일에는 법당에서 받은 배지를 가을이 목줄에 이어 달아 주고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며 너무 이쁘다 칭찬하며 가을이를 꽃처럼 봐주었고, 이따금씩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껍질에 남은 초콜릿 을 가을이에게 챙겨주고 행복한 듯 카카오스토리에 그 기록을 올려놓기도 하였다.
가을이는 이불을 돌돌 말아 자신의 집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돌돌 말린 이불과 담요 사이에 자신의 몸을 숨겨 그 가운데에서 따습게도 자는 강아지였다. 열대지방의 강아지라 추위를 많이 탄다고 알고 있는 치와와였지만 가을이가 혼자서 담요며 수건이며 모든 천들을 동그랗게 돌돌 말아내는 솜씨는 과히 강아지가 해낸 것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언제나 예쁘게도 되어있었다. 오토바이가 늘 있었던 할아버지 시골집처럼 아빠엄마도 오토바이를 하나 구입하셨다. 그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면 가을이가 낑낑대고 주변을 뱅뱅 돈다고 한다. 자신도 태워달라는 제스처라고 한다. 그럼 아빠는 오토바이를 똑바로 세우고 "이리 와" 라고 외치고 가을이는 오토바이 발판 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고 했다. 아빠가 쌩쌩 달리고 왼쪽으로 오토바이를 기울이면 몸의 중심을 반대로 잡으며 그렇게도 커브길도 잘 버티고 어쩜 그리도 귀엽도록 라이딩을 즐기던 강아지였다.
내가 결혼을 준비하던 2019년_ 문경에 갔을 때 왜인지 마당에서 나를 반기는 가을이 목소리가 나지 않아 나는 두리번거렸으나 엄마는 어서 들어오라며 말을 돌렸다. 아니야 아니야를 몇 번 하며 인사로, 밥으로, 시간을 끌어보내며 가을이 이야기를 피하고 꺼내지 않던 엄마는 호박모양 조명 아래 아일랜드 식탁에 서서 과일을 접시에 담으며 결국 그렇게도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엄마의 코가 빨개졌을 때 , 나는 가을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을이가 몇 살인지 모르는 나는 아빠엄마의 가을이가 그렇게 늙었던가, 생각했고 그렇다기엔 가을이는 너무 똥꼬 발랄하지 않았던가_ 기억했다. 엄마는 동네에 조금 무섭고 미친것 처럼 보이는 개가 나타났다고 했다. 흰색의 덩치가 큰 그 개는 주인도 없었고 산속에서 사는 것인지 어느 날 주인을 잃어버린 것인지 길 위에서 생활하며 난폭해진 것 같은 그 하얀 개가 어두운 밤에 가을이를 공격했다고 한다. 그날 밤 가을이가 짖어대는 소리가 났고 가을이 목소리가 아닌 다른 개의 소리가 들려 이상하여 나와보니 그 덩치가 크나큰 흰 개가 가을이를 덮쳐 있었고 이미 가을이는 크게 물려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가을이는 그렇게 끝까지 집을 지켰다. 아빠엄마의 한옥집 한 귀퉁이에 본인의 집에서 이불을 돌돌 말아 잠드려다 수상한 그 흰 개를 보고 짖어댔고 그 개의 성질을 건드렸는지 그렇게 무참히도 공격당했다고 한다. 엄마가 본 광경은 그렇게 작고 작은 가을이를 덮치기에는 너무 큰 개였고 그토록 피를 흘리도록 다치게 해 놓고 또다시 공격을 하고 있는 그 무서운 눈빛의 흰색 개를 상대로 엄마가 저리 가라고 소리소리를 질러도 떠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노려봤다고 한다. 다급해진 엄마가 몽둥이를 들고 허공에 휘둘려보아도 꿈쩍도 안 하던 그야말로 크고 무서운 흰색의 개였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엄마를 달려들지도 모르는 그 개에게서 가을이를 떨어뜨려놓기 위해 몇 번을 더 몽둥이를 휘저었더니 그렇게 떠났다고 한다. 이미 피를 많이 흘린 가을이는 병원에서 수술을 해도 어려울 수 있다고 했고, 하더라도 살 수 있을지_ 그렇지 못할지_ 알 수 없는 그 비용으로 600만 원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빠엄마는 그런 가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가을이는 그날 밤 낑낑거렸지만 아빠를 엄마를 그렇게 도 오래도록 그리고 많이 쳐다보다 쌕쌕 거리며 잠이 들었다고 한다. 새벽녘이 되어 다시 낑낑대던 가을이 소리에 엄마는 가을이를 찾아갔고 엄마를 보던 가을이는 이내 그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아빠엄마는 가을이 이름만 나오면 울었다. 아빠엄마가 그렇게 강아지 때문에 가슴 아리며 우는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가을이와 함께 한 시간을 손가락으로 접어가며 자신들과 함께 이렇게나 오래 살았다고 회상하고 어떤 과거가 있어 처음에 그리 벌벌 떨며 마당 밖도 못 나갔었지만, 아빠엄마는 줄 수 있는 만큼 준다고 사랑을 내주었고 가을이의 남은 견생을 오래, 그리고 길게 자신들과 함께 하길 바랬다고 말하더니 이내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못했던 거 같다며 또 우셨다. 그리고 그렇게 가을이가 세상을 떠나고 일주일 내내 어찌나 가슴이 저미는지 뻑하면 울음이 나와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내게 말하는 지금은 그래도 마음이 잘 아무렀다며 우리 가을이 죽었는데도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_ 너무 깨끗하게 누워서 원래 매일 밤 곤히 자던 거처럼 그렇게 갔다고 알려주셨다.
가을이가 좋아했던 그 언덕진 곳에는 매년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복숭아가 어여쁘게 달린다.
가을이와의 칠, 팔년의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아빠엄마는 가을이 없이 한 것이 없을 정도로 가을이와 늘 함께였다. 산에 갈 때도 밭에 갈 때도 논에 갈 때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집을 나설 때도 돌아올 때도 늘 가을이가 아빠 엄마의 모든 순간이었다. 언제나 엄마는 “ 가을이 쟤는 진짜 행복할꺼다. 우리집에 와서. “ 라고 했다. 어떻게 태어나 어떤 시간을 보내다 우리집에 왔는지는 몰라도 가을이는 행복한거라고_ 얼마나 좋겠냐고_ 가을이의 견생의 남음을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함께 하기를 그토록 좋은 일이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행복한 강아지였던 가을이를 엄마와 아빠는 잃었다. 그런 가을이의 빈자리를 어떤 것으로도 채우긴 어려웠다. 그렇게 몇 달을 비워진 그 자리를 메울 수도 없고 대신할 수도 없었지만 그런 시간이 버거웠는지 또는 어쩐 일인지 오빠가 어떻게든 치와와를 데려왔다. 그렇게 데려온 빵글이는 왜인지 가을이와 똑 닮아 있었다. 그 단풍 든 것 같은 털 색깔이 그냥 딱 가을이었다. 다른 것이라면 언제나 위풍당당한 가을이 와달리 겁이 엄청 많아 다가가지도 못하게 울어버린다는 점이었다. 아니, 사실 생각해보면 가을이와 털색만 같고 전혀 달랐던 거 같다.
내가 “ 빵글이는 왜 빵글이야 ? ” 라고 물으니 원래부터 빵글이라고 이름 지어진 아이를 데려왔으니 그냥 빵글이라고 아빠는 답했다. 그 이름 붙여진 데에 이유가 있거늘 다시 바꿀 생각이랑 없다고 하셨다. 빵글이는 정말 작았는데 너무 어려 이층에서 아빠 엄마가 잘 때도 보살피며 데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빠엄마의 2층에 함께 하게 된 빵글이는 너무 겁이 많아 누군가 다가오면 미칠 듯이 울어댔다. 짖는 게 아니라 울었다. 자신이 지금 너무 두렵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낑낑대며 우는 그 목소리에 엄마는 애가 너무 겁이 많으니 다가가지 말라고 했다. 빵글이와 친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빵글이는 다행히 산책을 좋아했고 그 작은 발로 나를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가을이가 다시 돌아온 줄 알았고 가을이와의 안녕을 모르는 어떤 이들은 빵글이를 가을이로 착각하기도 하였다. 손바닥만 한 아기 치와와를 동네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 아빠는 그렇게도 빵글이에게 바보라고 말했다.
빵글이는 바보야 바보, 큭큭
그렇게 바보라고 말하면서도 얼굴에는 싱글벙글이 한창이던 아빠와 시간이지나 이제는 집밖에서 키우겠다고 내놓으면서도 걱정이 한가득인 엄마는 빵글이의 공간으로 펜스까지 치며 요란한 전동드라이버 소리를 내고 문을달고 카펫을 깔아놓고 다음으로 물마시는 장치를 달아놓고는 그 홀짝거리며 목마름을 해결하는 빵글이의 모습이 얼마나, 어찌나, 귀여운지 봤느냐고_ 성화를 부리셨다. 앞집의 친척오빠는 집에 내려왔다가 그런 우리아빠엄마의 마당을 둘러보고는 뭐 개 하나 키우면서 그 개의 집으로 펜스를 다 사서 시공해 놨다며 요란하다 - 하였지만 엄마는 이전에 습격을 당했던 가을이처럼 또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을리 없다며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며 이깟 펜스정도로는 어쩌면 가당치도 않을지도 모른다며 아빠와함께 빵글이의 공간을 어찌하면 더 안전하게 만들지 고민 뿐이셨다.
한번 인사한 뒤로는 날 알아보던 가을이 와달리 빵글이는 매번 내려갈 때마다 내 소개를 해야 했고 아빠엄마와 내가 호의적인 관계라는 것을 느껴야지만 나에게 곁을 내주었다. 동네 사람들도 잘 못 알아보고 낑낑 울기만 한다며, 집도 못 지킨다며, 아빠는 그렇게 빵글이를 바보라고 했다. 같이 산책을 가면 가을이는 도로에 나있는 올곧은 흰 선을 따라 언제나 똑바로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하며 가을이는 진짜 똑똑했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뒤로 그리고 옆으로도 방향을 못 찾는 빵글이를 보며 또다시 “바보야 바보” 라고 말했다.
가을이는 밭에 일하러 가면 먼저 뛰어가 기다렸고 일이 한창일 때는 이리저리 구경하고 놀다가 끝날 때쯤 나타나 집으로 안내했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빵글이는 같이 밭일도 논일도 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이유는 빵글이는 바보라서 같이 가면 낑낑 울기만 하기 때문이란다. 밭일하는 동안 자신을 봐주지 않으면 서럽게 울어버린다며_ 혼자서는 놀지도 못하는 빵글이를 바보라고 그렇게 놀려댔다. 아빠의 가슴속에는 가을이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똘똘한 모습만 보여주고 강아지치곤 신기하리만큼 아빠엄마에게 충성하며 문경에 자리 잡던 그때부터 곁에 있어주었던 그 가을이를 어찌 마음에서 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빵글이와 살아가면서 아빠엄마의 가슴속에 있는 가을이는 더 자주 회자되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다졌다. 빵글이도 아빠 엄마의 이쁜이가 되어 또 그렇게 옆에서 당신들의 일상이 되기를 말이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나는 빵글이를 교육시켰다. 아빠가 매번 말하는 똑똑한 가을이가 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앉아, 손 등의 강아지 필살기였다. 가을이는 얼마 큼의 나이를 먹고 아빠 엄마에게로 왔었고 그런 재주는 없었지만 정말 똑똑한 강아지였다. 겁 많은 빵글이는 아직 어리니 내가 이걸 해내어 아빠가 자꾸 빵글이를 바보라고 놀리며 가을이를 회상하는 일을 없애고 싶었다. 나의 마음다짐이 통했는지 빵글이는 여름휴가 첫째 날 앉아! 손! 두 가지를 통달했고 둘째 날 돌기를 어느 정도 알아들었고 셋째 날 완벽하게 해내었다. 아빠와 엄마는 놀래 자빠졌지만 어릴 때 배우니 하는 거 같다며_ 가을이도 쪼꼬만 할 때 우리에게 왔다면 다 할 수 있었을 거라는 말로 또 한 번 가을이를 마음속에서 소환했었다.
나는 그런 빵글이가 좋았다. 내 말을 하나도 듣지 않던 어릴 적 토비와 달리 내게 달려오고 가을이만큼 똑똑해 보이진 않아도 내 말에 이런 귀여운 필살기를 잘 해내니 어찌 안 이쁘겠는가?
그런 빵글이가 얼마 뒤 가을이가 잠든 그 나무 옆 또 다른 나무에 묻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건강치 않은 새끼 강아지를 무분별하게 분양하는 곳에서 데려온 아이였었나보다. 그저 가을이와 비슷한 아이를 찾았던 오빠는 나름 비싼 값어치를 내었지만 작은 애완견을 오롯이 많이 분양하는 업체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수많은 새끼들을 팔기 위해 노력했었나 보다. 그리하여 그렇게 겁이 많았던 걸까, 빵글이는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처음 접한 세상에 두려움을 안고 살다 우리에게 왔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빵글이는 손바닥만 한 크기로 그렇게 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저 내가 다녀간 뒤 얼마 뒤 겁은 줄어들지 않더니 시름 거리는 횟수가 많아졌고 그렇게 잠이 들어 깨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 엄마에게는 작은 치와와들이 언덕 나무 밑에 묻어졌다. 그리고 다시 또 그 마음을 채울 작은 강아지를 찾을까 하였으나 두 분은 결국 '곰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어디서 똥개 새끼를 데려다 같이 하기로 하셨다. 똥개는 똥도 크고 많이 싸서 싫다더니 곰돌이를 보여주며 강아지 아니고 곰 같지 않냐며 동글동글 곰돌이가 이런 시골에서는 제일이라고 하신다.
아빠엄마는 어쩐 일인지 곰돌이에게 조금 먼 마음을 주고 계신다. 다시 눈물을 흘리며 가을이를 보내던 그 마음이 생기지 않길 바라시는 거 같기도 하다. 곰돌이는 집이 아닌 집 앞 밭에 개집을 놓아두셨고 그 거리만큼 조금 멀리 이뻐하신다. 아무리 그래도 그 마음은 멀지 않아 아빠는 곰돌이를 이리저리 자랑하고 싶어 하시고 똥개라도 귀엽게 산책하고 싶어 예쁜 목줄을 사주셨다. 안타깝게도 곰돌이는 몇 달 뒤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산책을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 끌어 다닐 수밖에 없게 폭풍성장을 하였다.
곰돌이가 오래오래
아빠엄마의 한옥집 앞 밭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