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기억 ㅣ기억적기
토비는 날 자신보다 서열 아래로 두었지만 가족 중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이는 어쩌면 나였다. 그리고 토비와 함께하면서 유일하게 토비의 사진을 찍어준 이도 나였다. 그것도 컨셉씩이나 잡아가면서 까지 말이다.
강아지는 하루에 한 번 산책시켜주어야 한다는 걸 알지도 못하면서 키웠던 애완견 치와와였다. 그런 토비는 얼마나, 그리고 무척이나 답답했겠지만 정말 어떤 문제 하나 없이 우리 집 아파트에서 잘 살아 주었다.
물론 문제가 되던 날도 있었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뽑아 쓰는 휴지가 난장판이 되어 있는 거실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이걸 어찌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당시 스마트폰이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한 장 한 장 뽑혀 사방을 굴러다니던 휴지를 나 혼자 줍고 치울 때 토비는 어쩌라고? 같은 표정을 보이며 나를 한 번 더 자신보다 아래의 서열에 두고 있음을 인지시켰다. 그때 나 홀로 그 많던 휴지를 치웠다는 걸 이야기하던 나를 엄마는 기억이나 하려나 _ 지금 생각해보면 산책도 잘하지 못하던 토비만의 스트레스 풀이었던 거 같다.
여름이 되면 그 청량한 밤공기를 가족이 모두 함께 마시기 위해 토비와 함께 진짜 산책을 나서기도 하였다. 토비의 목줄은 형광 무지개색이었는데 그 여러 가지 빛 색깔이 그라데이션으로 이어진 그런 목줄이었다. 그 당시 애완견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 같다. 친척 오빠네 말티즈 하니도 똑같은 목줄이었기에 그즈음 애완견 목줄 중에서는 핫템이었던 건 아닐까 싶다. 신도안에서 엄사리까지 천천히 걸어 여름에 피던 노란색의 해바라기 닮은 꽃과 나팔꽃을 지나치며 덩굴을 만들어 자신들이 닿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는 하늘까지 위로위로 올라가던 그 부서져있던 담장의 꼬여있는 줄기를 가진 꽃들을 지나치며 그 식물들을 설명해주는 아빠의 나긋한 목소리가 있던 청초한 여름이었다. 초록색이라 말하기엔 너무 찐해 초록이란 단어에는 어울리지 않던 억센 풀잎들을 그렇게 몇 바퀴 돌아다녀오던 그다음 날 토비는 아침에 잠에서 쉬이 깨지 않았다. 토비가 늦잠이라니, 별일이었다. 토비의 집은 오빠의 침대 밑에 있었는데 누군가 무언가를 먹는 거 같다던지 그중에서도 부스럭 부스럭 봉지 뜯는 소리가 나면 그 어떤 생물보다 빠르게 발톱 소리를 '타 타탁' 내며 튀어나오던 강아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이면 밥을 짓는 엄마를 그렇게 졸졸 뒤따르던 아이였다. 사료를 싫어해 음식 하는 엄마의 싱크대 뒤에 앉아있으면 큰 눈망울에 마음 약해져 뭐하나 던져주게 만들어 음식을 받아먹었는데 그날 아침에는 깨지 않고 계속 잠들어있았다. 아니 알고 보니 앓고 있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던 내게 엄마는 토비를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왜인지 이상하다 말하길래 나는 내게 토비가 달려오는 유일한 방법인 과자봉지를 연신 부스럭대고 있었지만 토비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결국 침대 밑 자신의 방에 푹신 히 도 쳐져서 눌러 누워있던 토비를 끌고 나왔더니 아니 글쎄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엄마는 어디가 아픈지 살피더니 온몸의 털을 빗겨주다 토비의 몸에서 거머리 같은 피 빨아먹는 동그란 벌레를 찾아냈다. 여름밤 산책길 풀 속에서 토비에게 달려든 그것들은 토비의 눈썹이며 코 옆 그리고 몸 여기저기 달라붙어 있었고 어떤 놈은 젖꼭지 인척 교묘하게 위치를 선점해 그야말로 쪽쪽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그토록 밤새도록 토비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그놈들 이름을 아빠엄마가 알려주었는데 기억하지 못해 안타깝다. 거머리는 아니고 동그랗게 생긴 것이 팔다리도 없었는데 마치 콩 벌래 같이 생겨서는 피를 먹은 양에 따라 몸이 더 뚱뚱해져 있었는데 동그랬었다. 눈 같은 건 보이지도 않고 그냥 동글 말랑 그런 것들이었다. 엄마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잡아내어 빨아먹은 피의 양을 보고 기겁하였다. 나와 오빠는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었고 엄마는 그것들을 살피고 찾아내느라 배웅도 못해주었다. 학교를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토비를 찾았을 때 토비는 다시 생기발랄해져 있었다. 엄마는 아침 내내 피 빨아먹는 그것들을 다 뜯어냈고 토비에게 밥을 먹였더니 저렇게 또 힘차 졌다며 뿌듯해하였다. 그날로 토비는 산책 가는 걸 거부했다. 너무 아팠었나 보다. 산책을 가면 피 빨아 먹힌다고 생각한 걸까 ? 한동안 토비는 목줄을 거부했다. 그렇다고 토비가 밖을 평생 싫어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한동안만은 토비는 안전한 아파트 우리 집안을 선호했었다.
이건 어쩌면 우리 가족의 이야기일 테지만 어쨌든 그 사건에는 토비가 함께 있었으므로 한번 털어 놀까 한다. 그날은 어찌하여 엄마는 함께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골 할머니 댁으로 내려갔고 올라오는 길에 외갓집도 들렸던 날이었다. 늦었지만 깜깜한 밤이라도 집으로 가야 한다며 밤 운전을 하던 아빠는 사고를 냈다.
왜 그 주 주말에 시골에 내려갔던지 그 이유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이유가 있어서 갔을 터인데 그것이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제사였던가,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가, 아무튼 꼭 내려갈만한 확실한 명분이 있었음에도 엄마가 따라나서지 않았다. 엄마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며느리 역할을 해왔었는데 그날 그렇게 가지 않겠노라 말을 하고 실제로 행한 것이 더 의문일만큼 어쨌든 엄마 없이 일이 있어 내려갔던 날이었다. 할아버지 댁은 문경이고 외갓집은 상주이기에 올라오는 길에 외할머니까지 뵙고 왔는데 어쨌든 그 자리에 엄마는 없었다. 외할머니는 언제나 그랬듯이 아빠에게서 받은 봉투 속 돈을 나와 오빠에게 용돈으로 나눠주셨고 자신의 쌈짓돈 천 원짜리까지 다 내놓으며 창문 틈으로 그렇게 " 너 해라 - " 하시며 우리를 배웅했던 밤이었다. 외할머니의 돈뿌림은 늘 그렇게 마지막에는 내 주머니에 가지고 계셨던 꼬깃한 천 원짜리까지 쑤셔 넣어주셔야 직성이 풀려 끝이 난다. 외할머니가 손수 만든 것 같은 바지 속의 아무도 빼어갈 수 없을 속주머니에서 비로소 오랫동안 빚을 보지 못하고 간직하셨던 지폐가 나오고 나서야 외할머니는 그렇게 뒤를 돌아 빠르게 집으로 들어가셨다. 아빠나 고모들이 주는 용돈을 고이 받아 빳빳하게 챙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달리 상주 외할머니는 받은 용돈은 무조건 돌려주시는 편이셨고 비록 적지만 지금 가진 모든 돈을 내어주시는 분이셨다.
비가 왔었다. 시력이 나쁜 아빠는 두꺼운 안경을 몇 번을 압축해서 쓰고 다녔지만 운전할 때 밤눈이 특히 어두웠다. 그런 밤눈에 비까지 왔으며 그리고 졸음운전이 더해졌다고 했다. 사고가 났을 때 나는 뒷좌석에서 자고 있었고 오빠는 토비를 안고 조수석에 앉아 아빠의 보조를 보고 있었나 보다. 어쨌든 사고가 났다. 큰 사고였고 평생 코피를 흘려 본 적 없던 아빠는 그날 처음 코피가 났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내 눈앞에는 차 뒤 유리창에 부닥치는 빗방울이 계속해서 보였다. 그리고 내가 지금 누워있는 공간이 낯설게 느껴져 더 크게 울었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여자애가 우는 모양새치곤 어려 보이는 울음을 그야말로 쌩으로 울어버렸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체취가 담긴 회색깔의 겉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비가 오는 날의 추적한 습기가 또 싫었다. 그렇게 울고 있던 내게 아빠는 빗속에서 다가와 뒷문을 열고 나를 안아주었다. 이후 그날의 사고를 회상할 때 아빠는 내가 잠에서 깨어나더니 울어버리더라고- 라고 말했다. 그렇게 울어버리고 있던 나를 아빠도 낯설게 느꼈었나 보다. 나는 어쨌든 강한 딸이었다. 그렇게 울어버릴 아이가 아니었는데 아빠가 예상하지 않았던 나의 펑펑거림이 꽤나 명료하게 아빠에게 다가왔었나 보다. 힘든 일이 건 버거운 일이건 꾹 참고 이 악물고 버티는 게 어쨌든 습관이 된 나였는데 그날 눈을 떴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왔다. 그건 아마 인간의 본능이었던 거 같다. 나 자신이 위험했다.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이 없이 나는 두렵다- 라는 그런 거 말이다.
사고가 났고 아빠는 한동안 정신을 잃었고 옆자리의 오빠도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나는 잠을 자고 있던 와중에 사고가 났었지만 그 큰 사고의 흔들림과 소리에도 깨지 않고 계속 잠들어있었기에 경찰차로 옮겨졌고 비가 와 추운 그 날씨에 경찰 아저씨의 겉옷까지 덮혀졌다. 깨어났을 때 빗방울 사이로 보이던 경찰차의 파랗고 빨간 불빛이 너무 두렵게 다가왔고 그 현장의 사이렌 소리와 소음들이 내 눈 속으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사고로 정신을 잃은 아빠를 깨운 건 토비였다. 토비는 그렇게도 잘 짖지 않더니 아빠를 향해 미친 듯이 짖어대고 아빠에게 달려들어 앞발로 아빠를 건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지나 지나가던 차량의 신고로 사건 현장은 정리되었고 아빠는 내가 잠이 들었다 사고 순간 정신을 잃고 또 잠이 들었던 거 같다고 했다. 토비는 우리 세 사람을 살렸다. 짖어대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살렸다. 아빠는 태어나 처음 흘린 코피보다 부닥치면서 무릎이 심하게 찢어져 뼈가 보였고 그만큼 피가 흘러넘쳐 그로 인해 응급처치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토비는 그 사고의 순간을 정면으로 응시했음에도 모두가 정신을 잃은 그 아찔한 시간에도 짖어대며 그렇게 모두를 지켜냈다. 밤이라는 시간과 비라는 날씨 그리고 아빠의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지만 우리 집 강아지 토비가 이 사고의 끝을 조금 일찍 당겨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아빠가 더 심한 출혈이 계속됐다면, 상대방 차와 우리 차 그 누구도 정신을 차려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아빠가 무릎의 피를 지혈하지 않았다면. 모르겠다.
그날은 이상했다. 오빠와 사이가 안 좋은 나는 둘이 차 안에 남겨진 게 싫어 할아버지 댁에 고기를 사 가려고 정육점에 들른 아빠를 찾아 따라나섰다. 지방의 시장 골목은 좁았고 차들은 어디든 주차할 수 있었으며 차도는 그로 인해 더 좁아져있었다. 나는 작은 키였으며 길가에 세워진 차 때문에 다가오는 차를 보진 못했고 그저 정육점 앞의 아빠의 뒷모습만 쫒아 달려가다 그렇게 차에 부딪혔다. 교통사고임에도 그런 줄 모르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툭툭 털고 아빠에게 다시 달려갔다. 그때 놀라 눈이 커진 아빠의 표정과 뒤에서 나를 잡던 그 아저씨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빠는 차에 부딪힌 내게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잠시 넘어진 걸로 왜 이러는지 의야했었지만 이내 승용차가 나를 쳤다는 사실은 맞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별로 아프지 않아 나는 일어났노라 말했다. 내가 부닥친 차주인 아저씨는 자신이 어린아이를 쳤음을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했고 왜 차가 오는데 길을 건넜냐는 다급한 아빠의 물움에 나는 주차된 차 때문에 생긴 가려진 시야를 설명하고 나로서는 양옆을 살펴 길을 건넜노라 대답했다. 그 아저씨는 신발가게 주인이었다. 전화번호를 주며 자신이 저기서 장사하는 사람이라며 도망갈 염려도 없으니 언제고 아프다 싶으면 병원에 가고 연락을 꼭 달라고 했다.
신은 언제고 메시지를 준다. 그날 낮에 아빠는 그 메시지를 받았는데 조심이라는 것을 더하지 않았다. 그로인해 나는 태어나서 처음 교통사고라는 것을 경험했는데 놀랍게도 같은 날 두 번이었다.
우리는 밤에 일어난 큰 사고로 집으로도 못 가게 되었다. 병원신세를 지고 아빠는 무릎을 수술했다. 나는 한동안 몸이 뻐근해 물리치료를 다녔고 엄마는 그러길래 왜 급하게 밤에 집으로 오려했냐고 다그쳤다. 아빠는 엄마 혼자 집에 있는 것이 내내 맘에 걸려 귀가를 서둘렀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아빠엄마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왔다. 아빠가 지방으로 발령 났을 때도 매주 주말이면 아빠는 엄마에게 달려왔고 그렇게 두 분은 서로를 생각하며 행하셨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는 아빠에게 혼자서도 잘 있을 수 있는데 혼자 잔다고 걱정해서 그 비 오는 길을 달렸냐며 또 나무랐다. 사실 엄마는 어딜 가면 같이 갔었다. 내 기억에 엄마가 우리와 함께 시골에 같이 가지 않은 건 그날뿐이다. 엄마는 시골에 가서 늘 일손을 돕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를 다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왜인지 가지 않겠다 했고 못 가겠다고 그렇게도 자리를 피했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지금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아빠가 그렇게 서둘러 엄마 혼자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건 사실 평생 엄마 혼자 집에 있어 본 적도 없고 이렇게 따라나서지 않은 적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사고가 났다. 나름 큰 사고였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고 엄마는 등산을 하며 찾아갔던 절에서 스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대뜸 여기 있지 못할 사람이 여즉 이곳에 있다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비 오는 날 갔을 사람이라던 그분의 말에 엄마는 그날의 사고가 생각났다고 한다.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더니 그렇게 몸이 안 따르더니_ 내가 이렇게 살려고 그랬던 거 같다고 말이다.
엄마는 가끔 이날의 사고를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더 받은 인생을 살아가니 고맙고 감사하게만 살 거라고 말이다. 그날의 사고는 어쩌면 작은 사고였나 보다. 내게서 엄마를 빼면 그 시간들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어쨌든 토비는 아빠를 깨웠고 우리의 첫 자동차였던 중고로 구입했던 엘란트라 2272 은색 승용차는 폐차되었다.
중고였지만 생에 첫 본인의 자동차를 가지게 된 아빠는 번호판을 뽑으러 가는 길에 과속을 했었다. 경찰에게 잡힌 아빠는 이제 차량을 등록하러 가는 길이라며 선처를 바랬고 경찰은 신분증을 요구하여 아빠에게서 받은 신분증을 보고 군인이시냐며 그러면 더 잘 지키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무랐다. 아빠는 꼭 이럴 때면 민증이 아닌 군복무증을 내밀었다. 그렇게 과속에 딱지로 스타트를 끊었던 우리 가족의 첫 자동차였다. 번호판 숫자를 뽑을 때 동그란 탁구공 같은 것이 돌돌 나와 결정됐을 때 나는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고 아빠는 내가 엄마에게 과속으로 그냥 찰에게 걸린 것을 이야기할까 초조해했었다. 그 엘란트라는 엄마의 코 바느질로 만든 시트를 달아놨었고 홈패션 재봉틀로 쿠션도 몇 개 갖다 놓았았다. 처음 탔을 때는 차량의 냄새를 좋게 한다는 모과도 몇 개 가져다 놓은 적도 있으며 같은 주유소에서 몇십 번의 기름을 넣고 받아 두고 썼던 담요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차에 돈을 열심히 쓰셨었다. 그당시에 과속카메라를 감지하는 기계를 몇십만원주고 달아놓으셨고 몇백을 들여서는 에어백을 설치해두셨다. 핸들은 내가 타보았던 그 어떤 차보다 예쁘고 매끈한 모양으로 바꾸셨었다. 사실, 그 에어백이 아빠를 살렸었다. 90년대에 에어백은 많이 달려있던 시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에어백이 터지면서 아빠를 충격으로 부터 보호했기에 살아났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다음차에도 백이들든 천이들든 안전을 위한 에어백은 꼭 창착하라 하셨다. 그 에어백을 달던때에는 헉 하는 가격에 많이 망설였었지만 니아빠가 차에 돈쓴 값은 목숨값이었너보다고 하나 아깝지도_ 허투르쓴 돈도 아닌거 같다 하셨다.
그 차를 타고 얼마큼 돌아다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차가 생긴 뒤로 우리 가족은 스키장도 가고 썰매장도 가고 주말마다 어쨌든 함께 어딘가에서 같이였던 거 같다. 그렇게 빤짝이던 은색 엘란트라 2272가 폐차되었다. 오빠는 그날의 사고로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지 못하겠노라 말하였고 이후에 새로 산 새 차를 싫어했으며 그 뒤로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우리의 차를 타고 어디를 가지 않았던 거 같다. 한 번은 아빠엄마가 오빠를 달래 가며 차를 타고 어디를 가자 했더니 화가 나 뒷유리창을 깨버리기도 하였다. 어딜 갈라치면 그렇게 오빠는 토비를 꼭 안고 안전한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로 이동했다.
언제부턴가 토비는 시골 할머니와 함께했다. 그렇게 뛰어다니고 그렇게 발바닥에 흙을 묻힐 때 토비는 똥개가 아니라 애완견이라 집안에서 키워야 하는 거라며 투덜대면서도 너무 밝아진 토비의 눈빛을 보면 그래, 개란 자고로 사방을 똥꼬 발랄하게 뛰어야지! 싶었다.
할머니는 어찌 된 이유로 우리의 강아지였던 토비를 기르게 되었다. 이사를 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 엄마는 강아지를 더 이상 아파트에서 기르지 말자고 했고 그렇게 시골 할머니 댁으로 토비의 집도 옮겨졌다. 토비는 짖지 못하는 개가 아니었기에 시골에 간 뒤로는 그렇게도 짖어대고 있었다. 할머니는 토비에게 목줄을 채워주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나 영특한지 집을 곧잘 찾아온다고 했다. 할머니는 화투를 좋아했는데 그렇게 동네 할매들과 화투판을 벌려 놀고 있노라면 저녁때가 되었다고 토비가 할머니가 놀러 간 집을 찾아와 짖어대며 집에 가자고 불러댄다고 했다. "고놈 고 시간도 알고 신기해" 라던 할머니의 말이 기억난다. 시골생활을 하는 토비에게 할머니는 여자친구도 있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어린 나는 당시에는 토비의 강아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토비가 그 여자친구라는 녀석과 붕가붕가를 한다는 말이었다. 토비는 축사가 있는 집 큰 여자 개를 여자친구로 사귀며 들락거렸다고 한다.
언제고 시골에 가면 토비를 볼 수 있었다. 강아지의 일 년은 사람의 일 년과는 다른 세월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나이 먹어갈 때마다 토비도 그 자리에 늘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토비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멀리 가도 아무리 늦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던 토비가 오지 않았다. 이튿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옆동네까지 쑤셔 다녀 보고 여자친구 집도 찾아가 보았지만 토비의 흔적은 없었다. 토비는 그때쯤 사실 나이가 꽤 들어있었다. 그렇게 할머니 집으로 돌아오지 않던 토비를 우리는 잊어야만 했다. 엄마는 내게 토비가 여행을 떠난 거 같다고 말했다. 그 여행은 "죽음의 여행" 일 거라고 알려주었다. 강아지가 너무 사랑을 받아 키워지면 그 가족들에게 죽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집을 나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토비는 우리에게 와서 아파트에 살 때는 짖지도 않고 있어 주더니_ 차 사고 난 난 그날 밤에는 그렇게 짖어 아빠를 깨웠고_ 엄마에게는 늘 뒤에 있어주던 강아지였으며_ 오빠는 끔찍이도 토비를 아껴 한 시간 넘게 걸려 시내에 가서 정기검진과 예방접종을 맞춰주며 안고 돌아다니던 그런 강아지였다. 나는 늘 토비와 웃고 뒹굴었으며 할머니는 저녁때를 알려주는 토비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온 동네를 다니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사랑받고 살아간 치와와 강아지 토비는 자신 때문에 우리가 울길 바라지 않았던 거 같다고, 엄마는 말했다.
토비는 워낙 이쁘고 귀엽고 똑똑한 녀석이라 어디 가서도 이쁨 받을 거라고 했다. 죽음의 여행을 떠난 강아지들은 대부분 여기가 날 받아줄 만한 곳이다- 싶은 곳을 찾아 눌러앉아 아주 짧은 시간 정을 주고받으며 조금 살다 죽는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마지막 짧은 만남을 하게 된 사람에게는 긴 세월만큼의 큰 슬픔을 주지 않을 수 있고, 그동안 자신이 사랑했던 가족들에게는 죽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토비라 엄마 말대로 그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토비라면 우리 가족에게 아픔이나 슬픔을 주고 싶은 마음이라곤 하나 없는 그런 강아지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작은 신발 상자 속에서 나를 처음 봐주었던 앞가슴털이 새하얀 너는 나를 제일 서열 밑으로 두고 내 말은 듣지 않았지만_ 너는 나를 가장 친하게 생각했다고 믿고 나 또한 너의 바람대로 그 찬란하고 꿈결 같은 너의 모습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