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기억 ㅣ 하히라의 한중록
연애시절을 되돌아 생각해 보면 나는 그에게 참 많은 실수를 한 것 같다. 동생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나는 어쩐지 몇 편의 수화를 하는 영화를 함께 보자 권했고 그는 이따금씩 여간 불편해했었다. 한 번은 중간에 보기 싫다 몸을 베베 꼬기도 했었고 이해 못 할 춤사위에 혼란스러움을 표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저 단 하나의 생명체와 그리고 그런 생명체와의 사랑이야기였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이라는 그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 몇 군데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보고 싶어 예약하고 겨우 자리를 잡아놨는데 영화관 의자에서 지겨움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그의 행동 방침에 대한 이유의 원천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그가 보고 있는 언어장애의 한 여성과 그 어떤 생명체 간의 넘어서는 찬란한 사랑이야기도_ 사실 그 장애를 옆에 부대끼고 살아가는 이에게는 환상임을 알고 있기에 그는 그날 그토록 뒤틀려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떤 날은 내 책장의 수화책을 보고 할 줄 아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낮았던 나는 그런 사람들의 생활과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영화를 굳이 감정을 밀어내며 보는 것을 좋아라 했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도 그걸 권하던 나는 내 남자친구 곁에 장애인이 있다는 걸 몰랐었다. 난 참 가벼웠다. 쉬이 내가 경험해 보지도 않고 아름답고 선명하게만 보여지는 미디어나 책의 창작물을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그에게 권유까지 해대며 나는 참 모질었다. 책을 좋아하냐며 물어놓고 어려워 힘들어한다는 그의 말에 만화카페에 데려가 원래 모든 가치관이나 배움은 그림으로 배우는 편이 옳다며 권했던 책 또한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쩐지 그는 그 전편을 그 자리에서 모두 읽었고 시옷 발음이 가장 어려워 시옷이 연속으로 들어가 있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성생님’ 이라고 겨우 말하는 Ho에게 애정을 품어댔다.
모든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참 그토록 미안했다. 어쩌면 연애시절 같이 보았던 영화 때문에, 그리고 내 책장의 책 때문에, 아니 그 귀여운 억수씨의 만화책 Ho! 덕분에 그는 그 말을 꺼내기까지 더 어려웠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들로 인해 용기를 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
다른 이의 상처나 치부는 그 누가 어루만지고 이해한다고 한들
아픈 건 아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