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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히 라 Feb 19. 2022

담장을 넘던 꽃집

기록하는 기억 ㅣ 기억적기

몽글몽글 꽃이 담장을 넘던 큰엄마의 집



 그곳엔 그 하얗고 큰 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어느 날 즈음엔 석류가 빨갛도록 달려있었다. 어릴 땐 높게만 느껴지던 그 담장엔 그리고 송이송이 꽃과 열매가 늘 담을 넘어 매달려있었다. 


큰엄마는 어여쁘쎴다. 시골에서 살 것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에 눈웃음을 치며 하얀 강아지를 마당이 아닌 집안에서 길렀고 ‘이쁜이’라고 이름 지셨다. 똥개가 남무 하는 시골 촌 구석에 큰엄마의 강아지는 호강을 하며 살았다. 그런 큰엄마의 취향이 배어있는 그 집의 담이 어찌나 탐스럽도록 예뻤는지 내가 어찌 말하겠는가.


초록 잔디를 가꾸고 가꿨고 총총이 현관까지 이어진 그 짙은 동그란 돌을 밟고 뛰어가면 그곳이 바로 그 당시 최신 유행으로 지어진 빨간 벽돌의 큰엄마 집이었다. 잔디밭과 화려한 샹들리에 그 두 가지 만으로도 나는 그저 그 집이 부자라고 느껴졌었다. 그리고 당시 생소했던 석류가 담장을 넘어 탐스럽게 열렸을 때 아빠는 그 과일을 설명해주었고 내게 한 알 한 알 빼내어 내입에 넣어주셨다. 내가 그 달콤한 맛을 어찌 잊겠는가. 생전 처음 보는 석류라는 과일에 더 이국적으로 느껴지던 그곳은 바로 큰엄마의 집이었다.



 큰엄마는 어느 날 아프기 시작하셨다. 병원에 있는 큰엄마가 익숙지 않아 나는 친한 척도 하지 못했다. 그때도 큰엄마는 날 반기셨고 그리도 이뻐해 주었는데 나는 왜인지 아픈 큰엄마에겐 곁을 내주지 못하고 인사도 멀찌감치 서서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언제 뵙고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는데 큰엄마가 돌아가셨다.


큰엄마의 자리는 몇 년이 지나 다른 이가 채웠고 는 그런 재혼이라는 제도를 온 가족이 함께 나서서 해낸 것이 퍽 생소하고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니까 큰아빠의 아들딸들이 아빠의 재혼을 허락하고 추진했다는 것이 참 놀라웠던 것 같다. 그렇게 매워진 큰엄마의 자리에 다른 큰엄마가 앉아있었고 나의 큰엄마는 우리의 기억과 추억 속에서만 이야기되었다. 그래도 큰엄마 집은 늘 한결같이 그곳에 있었다. 초록의 잔디가_ 그리고 석류가_ 늘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다른 큰엄마는 마당을 시멘트로 부어버렸다. 초록 잔디는 개미와 벌레를 꼬이게 했고 매번 깎아주며 돌보는 일이 만만치 않아 편히 살겠노라 회색 시멘트를 부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런 큰엄마 집이 낯설었다. 내가 총총총 뛰어다니며 걷던 그 동그란 돌이 딱딱한 시멘트 속으로 묻혀졌다는 사실에 나는 그 담을 잘 넘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내가 큰엄마의 집 대문을 잘도 넘어가지 못하던 때 말이다. 언제나 반짝이던 샹들리에가 시간이 흘러 세월에 빛을 바랐지만 나는 그것이 왜인지 나의 큰엄마의 부재로 인해 생긴 일 같아 그 집에서 그렇게 나를 멀찌감치 애써 밀어내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오월 문경을 찾았다.

오월의 문경은 접한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여름 겨울방학에 찾았고 추석이나 설이 아닌 오월의 문경은 내게 새로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꽃을 보았다. 



사월 초파일을 전후해 만발하는 부처님의 꽃 불두화. 

그래, 조금 더워지는 봄이 되면 그 뭉개 뭉개 새하얗게 탐스러운 그 꽃이 큰엄마의 담장에 그리도 피었다. 그게 딱 이맘때였나 보다. 꽤 오래도록 피어있던 그 꽃을 나는 만지작 거리길 좋아했고 한참을 쳐다보기를 행복해했다. 다른 큰엄마가 바꿔버린 것 같던 나의 큰엄마 집엔 잔디는 없어졌지만 담벼락의 모든 것들은 아직 그대로였다. 내가 돌아보지 않아 몰랐을 뿐 그다음 벼락은 늘 언제나 갖은것들을 올리고 내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름방학이면 오빠는 친척오빠와 함께 시골에서 더위를 즐겼다. 매년 그러던 와중에 그 해에는 어쩐지 내가 갔다. 나는 엄마 아빠 곁을 떠나 처음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시골생활을 했었다. 그 여름 옆집의 큰엄마는 나를 그리도 쓰다듬어주셨다. 머리칼을 만져주시며 내 일기장과 여름방학숙제를 봐주시던 일이 아득히 생각난다. 가파른 언덕을 까불며 내려오다 무릎팍이 난리가 나도록 까져놓고 방학이 끝이 나면 담임선생님이 검사하며 볼 일기장엔 다쳐서 아프다고만 썼고 그 이유는 창피해 적지 않았을 때 큰엄마는 일어난 사건을 적었더라면 더 좋은 일기가 될 것 같다는 조언을 하셨더랬다.


내가 하는 한마디 마디 어찌나 재밌어하셨는지 나와의 일화는 만나는 그 누구에게도 떠들어주셨다. 화려한 목걸이를 늘 하고 계셨던 나의 큰엄마는 이제는 만날 수 없다. 얼마 전 그 묘에 다녀갈 일이 있어 찾았을 때 나는 큰엄마의 목소리가 생각이 났었다. 립스틱을 고이 바른 그 입술에서 나오는 상냥하고 명확하던 목소리를 난 참 좋아했었다.


잔디가 사라진 큰엄마의 집이 다른 큰엄마가 살게 되면서 많이 변했다고만 여겼는데 오월의 문경에서 다시 눈여겨보니 그곳은 여전히 큰엄마의 집이었다. 매해 피고 지는 불두화도 내가 그 담벼락을 다시 바라봐주실 바랬는지 모른다. 큰엄마의 꽃잔치들이 여전한 그 담벼락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넘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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