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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히 라 Feb 01. 2023

똥덩어리 아줌마

필요없는 가십담화 ㅣ 배우 송옥숙

네 번째 엄마 역할



송옥숙 배우


 사실, 이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언젠간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 배우를 보았다. 남편은 스킨스쿠버를 했고, 마당에는 길고양이를 위한 밥그릇을 두었다.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은 한 꼬마가 맡았다.

우리 집은 정말 좋다고 말하며, 강아지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한국말을 하던 까무잡잡한 아이는 필리핀 태생이었다. 다큐멘터리는 드라마 - 베토벤 바이러스가 끝났을 때쯤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똥덩어리라고 말하던 강마에의 지나친 카리스마 덕분에 한때는 '똥덩어리'라는 단어를 곳곳에서 유행시키던 그즈음이었다. 그 어떤 날 밤 나는 지나가는 채널들 사이에서 그 내레이션 목소리에 이끌려 채널을 돌리는 것을 멈추고 그 프로그램을 시청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는 생각 외로 담담하게 자신의 네 번째 엄마를 배우 송옥숙이라고 소개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아이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필리핀 꼬마보다 몇 해 어린 자신의 친딸이 있었다.

둘은 자매처럼 지내면서도 투닥거리기도 했고 서로를 경계하기도 했으며 또 그 나이에 맞게 솔직하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송옥숙 배우의 남편이 친딸을 데리고 나가 다이버를 알려주고 바다에서 시간을 보낸 뒤 갈비를 먹여주던 일이었다. 친딸이 이뻐 죽겠는 아빠의 찐 미소와 행복함이 화면을 터져 나왔지만 그 사랑을 집에서는 다 내뱉지 못함에 참 뭐라고 해야 할지, 그리고 어찌 말할 그것이 되지 못하였다. 집에 돌아온 딸은 참 거침없이 아빠와 있었던 신이 났던 하루의 그 신남을 재잘거렸고 필리핀 꼬마는 그 둘만의 시간이나 다정함이 아닌 '갈비를 먹고 왔다'는 그 식탐에 중점을 두고 몇 번이고 " 너 그래서 갈비 먹었어? "라는 말을 그렇게 반복해서 내뱉으며 되물었다. 아이는 먹는 것에 대한 결핍이 있는 듯 보였다. 허기져 보였다. 그렇다고 먹지 못하고 삐쩍 꼴았던건 아니었지만 아마 마음이 허했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이 다큐가 재밌던 점은 각각의 인물들의 시점이 더 잘 보였기 때문이다. 온전히 이 집에 입양된 그 꼬마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옆에 친딸이자 원래 이 집의 주인인 송옥숙의 어린 딸의 감정도 있는 그대로의 날것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딸인 자신은 왜인지 두배로 혼나는 것만 같고 칭찬에는 인색한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왜인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그 어린 심정까지도 미묘하고 솔직하게 담아냈다.


송옥숙 배우는 그 아이를 입양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엄마는 낳아준 엄마였고, 두 번째는 길러준 엄마 그리고 세 번째 엄마는 입양을 해서 한국이라는 나라로 자신을 데려온 엄마 그리고 파양을 당한 뒤 다시 만난 엄마가 바로 배우 송옥숙이었다.


인터뷰를 하던 송옥숙 배우는 사실은 자신의 친척이 아이가 생기지 않자 입양을 결정했다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파양을 했음을 밝혔고, 그걸 지켜보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 아이를 입양해 키우기로 결정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송옥숙 배우에게는 그 특유의 눈빛이 있다. 눈동자가 조금 당돌하다고 해야 하나?

첫 소절에도 썼지만 나는 이 배우에 대해 잘 모른다. 어느 날 아빠와 함께 봤던 코미디 영화 - 하면 된다 에서 보험사기를 치는 엄마로 나왔고 또 드라마에서는 꼭 억척스러운 역할을 파마머리를 하고 나오던 그런 아줌마였다. 그렇게 그녀는 내겐 주연배우보다는 조금 뒤에 있는 배우라 생각되었다.


그런 그녀가 다큐멘터리에 나올 때 나는 참 흥미로웠다.


내가 알던 배우의 모습이 아닌, 엄마의 모습으로 나오는 그 여자의 화면이 퍽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이혼도 했었고 나름 유명 헸고 연기력으로 한 획을 그었던_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살아간 시대와 내가 티브이를 보고 영화를 보던 그 시절에 송옥숙이라는 배우가 내겐 그저 조연이었기에 내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런 그녀가 최근 엉클이라는 드라마에 부유층 할머니로 나왔다.


메이크업을 두텁게 하고 카리스마 있는 표정을 보이며

매회 옷을 몇 번이고 갈아입었다.




화면 속 그 배우를 보며 나는 꽤 이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생각이 난 것이다.




그 아이는 잘 지낼까 ?


이젠 꽤 자라지 않았을까?





관련 기사를 검색하기 위해 '송옥숙 다큐멘터리'라는 키워드를 적었고 내가 단지 가지고 있던 기억들을 껴 맞추다 보니, 그때 내가 본 프로그램이 휴먼 다큐멘터리 - 사랑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시리즈는 본 기억이 없고, 난 그저 지나가다가 그 네 번째 에피소드인 배우 송옥숙과 필리핀 혼혈아의 이야기만을 보았다.


그때 그 밤. 그걸 보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혼혈 꼬마는 한국계 필리핀 그러니까 흔히 그런 아이들을 부르는 비속어로 ‘코시안’이었고,
추정하기로 한국 남자들이 그저 즐기러 가는 여행에서 생긴 아이가 아니었겠냐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천주교도가 많은 필리핀에서는 낙태가 법으로 금지되어있어 많은 미혼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더라도 아이를 무조건 낳는다고 들었다.




다큐의 마지막에 가족들은 모두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목적은 네가 태어난 곳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고 아이는 필리핀 사람들이 넌 여기 사람같이 생겼다고 말하거나 너는 필리핀 애 아니냐고 물어내고 만지고 손가락질할 때마다 꽤나 퍽 싫은 내색을 했었다.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즈음 혼자 앉아있는 꼬마의 옆에 앉은 네 번째 엄마 송옥숙은 잠시의 침묵을 깨고 "엄마도 잘 몰라"라는 말의 시작으로 그냥 너를 낳아준 사람은 이 나라 사람이겠거니 알고 있다고 말해준다. 아이는 울었다. 그 모습이 더 슬펐던 것은 펑펑 울지 않고 그 까무잡잡한 피부에 또르르 흐르기만 하는 눈물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난 경험하지 않은 입양이나 파향 또는 혼혈이라는 그 어떤 공통사를 아이와 같이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그저 그 아이가 얼마나 외로울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생각과 속앓이를 했을지_ 퍽 와닿아 뜨거운 눈물을 소파에 앉아 나도 혼자 흘렸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이제와 다시 찾아본 기사에는 그 꼬마는 숙녀가 되었고 꽤 많이 자란 만큼 행복해 보였다.





 다큐멘터리에서 유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별로 없었기에 섭외의 이유에 대해 담당 PD에서 질의했을 때 김 PD는 아시아계 혼혈아를 입양한 것이 독특했다는 대답을 했고 아시아계 혼혈아 가정이 많고 이혼율이 높은 이 시점, 개인의 문제이긴 하지만 눈여겨 볼만 한 사회적 이슈라는 의견을 더했다.

국내 입양도 어려운 상황에서 혼혈아 입양은 더 어려웠을 텐데 그녀의 가정이 '노력하는 사랑'이라는 말이 퍽 와닿는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제3의 관찰자가 있는 그 촬영이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촬영팀 사이에서는 '촬영 치료'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데 모든 촬영이 끝나고 나자 그제야 그 혼혈아 - 지원 양의 표정이 밝아졌다고 스텝들은 전해왔다.


그시절 송옥숙 배우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을 거의 끝낸 상태였고 그 드라마가 방영될때 자신의 네번째 엄마를 티비속에서 바라보며 엄마가 하는 연기에 감정이입하며 그리도 좋아하는 엄마에게 똥덩어리라고 내뱉는 김명민배우를 째려보던 아이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드라마임을 알고 연기라는 걸 알고있음에도 자신의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배우까지 싫어했던 아이의 그 진심이 담긴 표정과 감정이 아직 그대로 내게 남겨있다. 

이 방송이 좋았던 이유는 송옥숙과 아이의 관계가 미칠듯한 감동적인 모성애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여느 가정처럼, 다투고 질투하고 속상한 마음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런 것처럼 진정 평범했다. 이방인이 껴있는 그 가족은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까지도 감동을 짜내는 그런 심파 같은 것은 화면 밖으로 쏟아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어떤 포장이 없는 진정한 다큐멘터리였다.






배우 송옥숙은 “괜한 짓을 한 건 아닐까 갈등이 너무 심했어요.”라는 말로 다큐를 시작하기 전 그 예전에 인터뷰를 했었고, 커버린 입양아는 네 번째 엄마라는 꼬리표가 아닌 그냥 엄마라는 말로 송옥숙 배우를 지칭하면 “엄마가 TV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도 절 버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그 사람들은 세상의 인연을 이어갔다.




송옥숙이라는 배우가 재혼을 한 것도 이 다큐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가 어떤 집에 어떤 마당을 두고 살아가는지를 엿보면서 저런 배우가 있구나 싶었다.


왜 악역만 하는 배우를 어쩔 땐, 보기만 해도 싫을 수도 있는데 이번에 엉클에서 나온 그녀의 악역은 참 좋았다.
내가 그녀를 좋은 엄마 그리고 사회의 문제를 끌어안은 참 대단한 하나의 사람으로 보아서 일까 ?


온갖 못된 짓을 해대는 할머니 역할에도 나는 그녀가 연기를 잘하고 있다 생각되었고 직업정신이 출중하다 여겼지, 그녀가 미 워보이 진 않았다. 오히려 꽤 시간이 지나 그때보다 더 나이를 먹었을 송옥숙 배우가 한 회 한 회 멋진 드레스코드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던 것 같다.









언젠간 또 가능만 하다면,

이런 다큐 제작진들이

그 후 십 년 혹은 그 후 이십 년 이후의

이야기를 제작해 주길 바란다.



네 번째 엄마라니 __
당신이 단지 유명인이고 배우라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님을 난 알고 있다.


그걸 충분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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