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씨 써 보기 !
분명 나는 초딩 때 바른 글씨 쓰기 대회에 나가서 상까지 받았던 몸인데 언제부턴가 악필이 되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를 무수히 귀찮아했었고 번거로이 여겼다. 키보드 자판이 버젓이 널리 존재하는 시대에 손글씨를 남기는 일은 늘 부족했고 써야만 하는 날도 적었다. 그러니 아무리 메모광인 나라도 메모 용지보다는 메모 어플을 선호해왔다.
아마 그 어린 시절 그 일 때문일 테다.
특히나 궁서체를 어른처럼 써댔던 내게 뻑하면 글씨를 써보라고 달려들거나 구경 오는 그 모든 사람들이 싫었다. 처음엔 더 잘 쓰려하기도 했고, 잘도 쓰면서까지_ 빨리도 써대며 호응에 답도 했었지만, 아무튼 관심도 격하면 해가 된다.
타고나길 그러한 것인지 아님 글씨도 그려댔는지는 퍽 알 길은 없다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난 ‘어린 달필가’이었단 사실이다.
덕분에 글쓰기 특별활동부서는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캐스팅씩이나 되어 들어가게 되었다.글짓기 부서가 아니라 ‘글쓰기’ 그러니까 정자체로 ‘글씨를 쓰는 특별활동 부서’였다.
그때 그 시절엔 내가 글씨를 곧 잘 썼고 중학생이 될 무렵에는 귀여운 글씨체든 바른 글씨체 든 마음만 먹으면 어떤 것으로든 노트에 빼곡하고 정갈하게 필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특정할 수 없는 그 어느 날부터 나는 글씨를 쓰는 행위를 극도로 지나쳐버리고 싶어 하였다. 그러니까 얼마나 흘겨 썼냐면 가끔은 내가 쓴 글씨를 내가 직접 읽는데 어려움이 느껴질 정도록 ‘막’ 써댔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부터 어린 시절 소문났던 명성에는 걸맞지 않은 악필이 되어버렸다.
어른이 되고 공부가 좋아졌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수강하는 강의나 취미가 생겼고 그러고 나면 난 곧장 그것만이 내 세상처럼 늘 빠져들곤 했다. 무형문화재 선생님께 배우던 자수가 그랬고 국가고시까지 치러냈던 네일아트가 그중 하나였으며 민화를 그랬었고 임신 중엔 뜨개질이 그러했다. 그리고 난 오늘날 아기를 낳고 키우다 오랜만에 또 다시 공부를 해보려 한다.
서울의 문구점 주인장님께 배우는 수업은 꽤 후기가 좋아 보였고 이내 난 그의 팬이 되어 인스타와 블로그를 모두 팔로우하였다. 그리고 '유 한빈'이라는 그분의 본명도 알게 되었다.
한때는 달필가였으니 곧장 따라 하지 않을까 ?
그렇게 나는 생각해보며 우선 책을 샀다. 그냥 다 사댔다. 책으로 4주 동안 천천히 따라가 보고 그다음에 필요하다면 천천히 강의를 들어보겠노라 마음은 정해놓고는 성급한 나는 이내 클래스 101에서 1+1 강의를 결제해 버렸다.
무언가를 할 때_ 준비를 함에 진정성을 두는 나는 그보다 우선 성미가 급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책이 배송 온 날 방안지가 집안 어디에도 없자 당장 다이소로 달려가 노트 섹션을 뒤져댔고 펜 크래프트님이 추천하는 5mm 짜리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자 연습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노라 4mm 간격의 방안지라도 무조건 집어 온, 그냥 지금 하고 싶은 건 당장 해버려야 하고_ 해치워야 하는_ 난 그런 여자이다.
그렇게 당장 마련한 연습의 결과는 참으로 손이 떨리고 팔이 아파왔다.
평일에는 아기에게 쌀 튀밥을 뿌려주든 그 어떤 촉감놀이를 제공하고서라도 매일 30분 이상은 수업을 따라가고 연습해보려 한다. 물론 아직까지 15분 이상 가본 적은 없다. 내 의지 부족이 아니라 내 아기가 이내 날 방해해서이다.
책 - 나도손글씨바르게 쓰면소원이없겠네 ㅣ난 책을 깨끗하게 쓰고 싶었을 뿐이다 (feat. 아기의 방해)
이래저래 분주한 나를 쳐다보고 있던 남편에게 같이 시작하자고 하자 바른 글씨 쓰기를 깜지 마냥 여겼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려 해도 듣지 아니한다. 상관없다. 내가 정말 정갈한 나만의 글씨체를 고착시켜 내 딸 은유가 초등학교에 가면 학부모 의견란을 기깔나게 써줄 테니 후회하지 말거라, 남편 놈아 !
(아니, 그냥 내가 글씨 쓰는 모든 일을 도맡게 되는 것일까 ? 그래도 상관없다. 정갈한 글씨체만 갖게 된다면야,)
52주 동안 클래스를 성실히 듣고 월-금 평일의 시간을 공들여 바른 글씨를 써보기.
4월 둘째 주 즈음 시작한 나의 챌린지가 내년 벚꽃이 흩날릴 때는
정말 좋은 글씨를 쓰는 내가 되어 지금을 돌아보길 바란다.
클래스 수강을 몇 차례 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아마 나는 장비 빨을 좀 세운다고 나댈 것 같다.
나란 사람은 늘 그래 왔으니까 ㅋ
특히 만년필이 갖고 싶다.
이왕이면 몽블랑
#엄마의수업
블로그에 포스팅도 하며 끈질기게 나를 채찍 할 예정이다.
사실, 이 글도 한달 전에 브런치에 썼다가 지우고 원동력이 될 만한 블로그를 만들어
몇일전에 겨우 포스팅했다...
벌써 이렇게 한달이 지났다.
하루하루라는 시간은 느리게만 가는데 세월은 참 잘도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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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년이 더 지나갔다.
올해는 어쩐지 또 바쁘다. 그래도 바른글씨에 대한 욕심을 잃지 않으려한다.
꾸준하고 질기게 평생에 걸쳐 걸리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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