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히어로!

3화 위로

by 맹구

이 이야기는 영화 시나리오로 작업한 글입니다. 안타깝게도 영화 시장의 위축과 동물영화의 기피로 인해, 영화로 제작되지 못하여 글을 통해 독자분들과 먼저 만나기를 희망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건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주인공이 유기동물을 구조하며 벌어집니다. 다양한 동물 가족들과 함께하는 인물들의 사연과 동물을 구조하며 성장하는 주인공의 서사로 이루어졌습니다.


모쪼록 독자 여러분들의 소중한 시간, 즐거운 독서가 되었으면 합니다.


작가 맹구(복운석) 올림


이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저작권 등록번호 제 C-2021-401800 호)



3화 - 위로(慰勞)

하이히어로_3화_위로.png

(위 이미지는 챗지피티의 생성형 Ai 이미지입니다.)



13. 아파트 단지. 낮


순자가 나타나자, 길고양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사료와 물이 들어있다)를

끌고 순자를 따라다니는 상철. 순자가 구석에 놓아둔 밥그릇과 물그릇에 사료와 물을 담고, 길고양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한다. 고양이들의 식사를 바라보는 순자와 상철. 순자는 상철에게 고양이들의 이름을 알려준다.


순자

쟤는 코스모스야… 쟤는 열대야…

열대야는 밥 먹을 때 외에는 항상 축 늘어져서 누워있어,

그리고… 쟤네 둘은 초롱이와 해바라기.

쟤가 왜 해바라기냐면 초롱이만 졸졸 따라다니거든.

그래서 초롱이 바라기라서 해바라기…


웃으며 길고양이마다 간직한 사연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순자.

깔판을 깔고 앉아, 연신 하품만 내뱉는 상철은 고양이를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상철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내가 보기엔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구만.

고양이가 다 그냥, 고양이지.


그때 노란 줄무늬가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상철의 주위를 맴돌며 몸을 비빈다. 깜짝 놀라는 상철.


상철

오, 왜 이래? 왜 이래?

순자

걱정하지 마, 사람을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

상철

오. 오···

순자

아직 어려서 호기심이 많아. 그리고 사람도

잘 따르고. 그런데 걔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이름이 없어.


노란 줄무늬 고양이와 순자를 번갈아 바라보던 상철.


상철

어! 이 고양이 순자 너 닮았는데,

순자

나 닮은 것 같아? (고양이 순자를 바라보는 순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상철

(고양이 순자를 쓰다듬으며)

너는 순자를 닮았으니까,

순자로 하자, 고양이 순자.


고양이 순자, 다시 순자에게 다가가, 얼굴을 비빈다. 순자와 순자 서로를 바라본다. 고양이 순자와 놀던 순자, 길고양이들의 마릿수를 세어본다.


순자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나, 둘, 셋… 어, 이상하다.

안 보이는 애들이 있어.


그때, 검은 그림자가 순자와 상철을 뒤덮는다. 혜옥과 혜옥의 강아지 마틴이 순자와 상철, 고양이들을 바라본다. 마틴 고양이들에 다가간다.


혜옥

어우, 더러워, 이리 와. 마틴.


자신의 강아지를 낚아채는 혜옥. 물티슈로 강아지의 털을 닦아낸다. 퀭한 얼굴에 혜옥은 고양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혜옥

여기 주민이에요? 난 여기 동장이에요.

순자

아…

혜옥

단지 내에 외부인은 못 들어오게 되어있는데,

그리고 이렇게 길고양이들 막 밥 주고 그래도 안 되고.

순자

아, 죄송합니다.

혜옥

어차피 또 올 거면서.


쪼그려 앉아 있던 혜옥 천천히 일어서며 순자를 내려다본다.


혜옥

예쁘기는 한데 어쩌지? 병균도 막 있을 것 같고.

얘들 때문에 동네도 시끄럽고.

그냥 보호센터나 그런데 보내면 안 되나?

순자

제가 잘 돌봐주고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배고파서 울었을 거예요.

제때 밥을 주면 괜찮을 텐데.

혜옥

여기 입주할 능력 돼요?

순자

지금은…


상철,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혜옥

입주민 신분으로 길고양이가 울 때마다,

챙겨줄 수 있어요?

순자

혜옥

힘들겠죠? 책임질 수 없으면 시작하지 마요.

민폐야, 민폐.


쪼그려 앉아 있던 상철, 갑자기 벌떡 일어나 혜옥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댄다.


상철

저 아줌마. 여기 아파트 얼마예요?

엄청 대단한데 사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유세 떨고 있어.

방 세 개짜리 소박한 아파트잖아요.

혜옥

어머, 어머, 이것 봐, 지금 위협하는 거 에요?

교양 없어, 정말. 딱 봐도, 집도 없게 생겼어.

지금 집값이 얼마인지 알아?

상철

와, 얼굴에 보여요. 그게? 대단하시네.

아줌마 얼굴은? 아이고 욕심이, 욕심이 덕지덕지.

그래서 이 아파트 얼만데… 요.

순자

하지 마, 우리 가자.

(순자 혜옥에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혜옥

이래서, 아무나 들어오게 하면 안 돼!

내 집 앞에서 이게 무슨 꼴이야.


혜옥, 멀리서 비질을 하는 경비 아저씨를 바라보며 소리 지른다.


혜옥

아저씨, 아저씨, 이리 좀 와보세요.


경비아저씨 비질을 하다 말고 혜옥을 바라보고 천천히 다가온다. 눈치 없이 서 있는 상철, 순자는 상철의 옷

끌어 슬금슬금 자리를 뜬다.




14. 원룸. 밤


순자, 명숙(순자모 54세 여)이 소포로 보낸 오미자 제품을 냉장고에 정리하며 통화 중이다.


순자

엄마. 무릎은 좀 어때?

명숙

별거 아닌데, 수술해야 한다고 하더라.

순자

요새도 많이 아파?

명숙

별거 아니라니까. 비 오기 전날 밤에는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긴 한데, 괜찮아.

순자

명숙

너는 엄마 걱정일랑 말고 공부에만 정진해.

순자

알았어. 엄마도 내 걱정하지 마.

명숙

걱정 안 해. 나는 우리 딸 순자, 믿는다.

순자

(미소) 고마워.

명숙

순자야, 오미자 원액은 물 타서 아침저녁으로 꼭

한 잔씩 먹고, 오미자 청은 서울 외삼촌 갖다 드려.

엄마가 이번 명절에 못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순자

응.

명숙

끊는다.

순자

… 엄마.

명숙

왜? 할 말 있어?

순자

그게…

외삼촌이 오미자 자꾸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지난 설에 돈을 주시더라고.

명숙

그 짠돌이가 웬일이니. 받아서 용돈 하지 그랬어?

순자

용돈 하기는 너무 많아서,

그때는 그냥 안 받았거든.

명숙

근데 그 얘긴 갑자기, 왜?

순자

아니, 그냥 이번에도 주시면 어떡하나 하고.

명숙

받지 마. 어차피 받은 만큼 다음에 돌려줘야 돼.

순자

알았어, 나도 그러려고 했어.


cut to

순자, 냉장고 가득 들어찬 오미자가 병을 바라본다.



15. 독서실. 밤


까치발로 천천히 자신의 지정석을 찾아가는 순자.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한다.

노트북 소음이 드리자, 책 몇 권을 노트북 밑에 받친다. 그래도 들리는 소음, 거의 환풍기 수준으로 커진다.

공시생들과 독서실 총무가 순자를 흘끔거린다. 순자, 당황해서 노트북 전원을 강제 종료한다. 카운터에 앉은 독서실 총무를 바라보는 순자, 총무가 사용하는 신제품 노트북(‘청운 독서실’이라는 명찰이 붙어있다)이 보인다.

(시간경과)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는 순자. 그때 문틈으로 보이는 독서실 총무와 사장.

분위기, 심각하다.


사장

그만두겠다고?

총무

취업했어요.

사장

다음 달이 시험 아니냐?

총무

그만하려고요. 돈도 없고, 공시생 생활도 지겹고…

공무원 해도, 답 없잖아요.

사장

그래도 이때까지 공부한 게 아깝지 않니?

총무

아니요.

사장

아이고 이거 참.


당황해하는 사장. 둘의 대화를 유심히 듣는 순자.




16. 원룸. 늦은 오후


오미자청 박스를 금박지로 포장하는 순자. 상철, 책을 펴 놓은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상철

외삼촌한테는 언제 인사드리지?

나도 같이 가도 되는데. (웃음)

외삼촌도 공무원이시잖아.

순자

오빠는 집에 안 다녀와도 돼?

상철

명절에 노인네들 보면 뭐 해?

잔소리만 하지, 그냥 시험 붙고

우리 같이 가자.

순자

그러니까, 제발 나갈 생각하지 말고 공부해!


순자, 금박으로 포장된 오미자청을 종이가방에 담는다.


상철

그거 어차피 오미자인 거 다 아시잖아,

포장은 왜 했어?

순자

그냥, 성의 없어 보일까 봐.




17. 지하철. 저녁


추석 전날, 한산한 지하철 안. 구석에 앉아 박스를 받치고 명절 카드를 쓰는 순자.


‘...외삼촌,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다 잘 되길 빌게요. 순자 올림.’


명절카드를 종이가방에 넣고,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자. 한강변 아파트들이 반짝, 반짝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