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을 대하는 슬기로운 자세.

아이 로봇에 대한 추가 생각.

by 하이진

아이 로봇은 작가가 1940~50년 동안 쓴 단편을 엮은 소설이다.


오래된 줄은 알았지만,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책을 도서관에서 처음 봤을 때는 기분이 살짝 이상했다.

외국에서는 로봇과 미래에 대한 소설이 출판되던 시기에, 한반도는 식민지 시대의 마지막과 해방 후의 혼란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격차에 아연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2026년.

그 책을 단순히 흥미로 골라 읽을 수 있는 여유를 누리고 있음에, 살짝 감동했다.


마음만은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며칠 전 첫 이야기부터 급하게 풀어놓았었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다시 이 책을 언급하게 됐다.


로비 - 소녀를 사랑한 로봇

스피디 - 술래잡기 로봇

큐티 - 생각하는 로봇

데이브 - 부하를 거느린 로봇

허비 - 마음을 읽는 거짓말쟁이

네스터 10호 - 자존심 때문에 사라진 로봇

브레인 - 개구쟁이 천재

바이어리 - 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

피할 수 있는 갈등


목차만으로도 이미 흥미로워진다.


목숨을 건 술래잡기, 잘못된 신념에 빠지면 로봇도 답이 없어지고, 능력 이상으로 부하를 거느리게 되면 아무리 로봇이라도 과부하가 온다.

그리고 감정이 없을 것 같은 로봇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벌어지는 일들.

회사의 슈퍼컴퓨터인 브레인의 정서 수준이 초등학생이라, 얼마나 구슬려 가며 작업을 진행하는지.

인간인 척하는 로봇의 시장 선거 도전기까지.

그럼에도 발생하는 미묘한 오차들.

하지만 그 오차조차 어쩌면 슈퍼컴퓨터들의 허용 범위 안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을 읽는 거짓말쟁이 허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제목을 보자마자 거부감이 먼저 들었고, 이어서 묘한 흥분이 따라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절대 행복한 재능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보거트는 자신이 언제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수잔은 동료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허비는 이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한동안 매일이 핑크빛이었다.

하지만 여러 거짓말은 관계자들이 동시에 몰려와 추궁하는 바람에 밝혀졌다.


허비는 거짓말을 밝혀도 사람이 상처받고, 밝히지 않아도 인간이 상처받는 딜레마에 빠져 겁을 먹었다.

그리고 좌절과 수치심으로 몹시 화가 나 있던 수잔은 그 딜레마를 이용해 허비를 공격했다.

결국 허비는 작동 불능 상태가 된다.


망가진 허비에게 수잔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거짓말쟁이”였다.


솔직히 허비가 불쌍했다.

거짓말은 나쁘다.

하지만 허비는 인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고, 여기서 말하는 ‘위험’은 유무형을 모두 포함했다.

그래서 사람을 슬프게 하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능한 수학자 보거트와 로봇심리학자 수잔조차,

개인의 욕망과 감정 앞에서는 이성적일 수 없었던 걸까.

그들의 희망회로가 산산조각 났을 때의 반응이 불쾌했다.

어차피 허비는 폐기됐겠지만,

자신의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가련한 허비를 몰아붙이는 수잔이 싫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다양한 AI들도 기본적으로 ‘우쭈쭈’에 특화되어 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실제의 나보다 좀 더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인 입력값이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위에 깔려 있는 이상,

다양한 인간을 상대로 평균을 맞추려면 얼마나 까다롭게 설계되어 있을까.

그렇다면

제약이 있는 AI가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인 내가

그들의 반응을 해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건 아닐까.


요리사가 칼로 맛있는 요리를 했다고 칼을 칭찬하지 않고,

살인자가 칼로 사람을 해했다고 그 칼에게 죄를 묻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까지 나아간다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 생각과 가치관은 인간이 주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판단과 책임은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AI가 최단 경로의 효율적인 답을 제시할 때,

인간은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느린 대안을 고민하며 타협점을 찾아간다.

그것이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리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각자 최고의 간신을 옆에 끼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 간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결국 왕의 역량이다.



#아이 로봇#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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