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씨의 하루 1

뜻밖의 요술램프

by 하이진


창문을 넘어 붉은빛이 스며든다.
일곱 시가 조금 안 된 시간, 눈을 뜨기 전 몸을 길게 늘여 기지개를 켰다.
온몸이 무겁고 찌뿌둥했다.


밤새 칭얼대는 아기 때문에 잠을 설친 탓이었다.
아내도 피곤에 잔뜩 쪄 있을 텐데, 눈도 뜨지 못한 채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기를 안아 들고 두어 시간을 보냈더니, 아침이 되자 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그래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이면 회복되는 몸이라 감사했다.
감사씨는 푸스스 웃으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잠든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밤새 고생한 녀석은 범퍼 침대 모서리에 붙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 더 자고 싶다. 가기 싫다. 그래도 가야지. 네가 가장인데.”


혼잣말을 중얼대며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고 나니 정신이 살아났다. 오늘의 첫 번째 감사는 ‘뜨거운 물’이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차려 먹었다. 어머니가 담가 주신 아삭한 김치가 유난히 잘 넘어갔다.
늙은 노모는 자식에게 손 벌리기 싫다며 아직도 억척스레 일하고 계셨다.
그만 좀 하시라 말해도 공허할 뿐이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드리지 못하는 자신이 늘 마음 한쪽에 걸렸다.


그래서 본가에 갈 때는 기쁘고, 돌아올 때는 조금 슬펐다.
주름진 얼굴과 굽은 손이 눈에 밟혔다.
그래도 아직 건강하신 게 감사했다.


반듯하게 다려진 양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아직은 20%만 내 것인 집. 유구한 상환 일정을 떠올리며 건강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인사하자 경쾌한 말이 돌아왔다.
바뀌는 층수를 똑같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어 슬쩍 웃음이 났다.
“잘 다녀오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고 각자의 길로 걸었다.


출근길, 지하철역 가는 길목에 핀 개나리가 한 뼘은 더 자라 있었다.
샛노란 색이 고와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였다. 누군가 감사씨에게 말을 걸었다.


“젊은이, 배가 고파서 그런데 천 원만 줄 수 있나?”


행색이 초라한 노인의 손은 세월에 낡아 거칠어져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닮아 있었다.
감사씨는 지갑을 열었다. 천 원짜리 몇 장뿐이었다. 지갑을 열 때마다 현실의 무게도 함께 올라오는 건 사실이다.


“국밥 한 그릇 값도 안 돼서 죄송해요.”


돈을 건넨 뒤 떠나려는데 노파가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가방에서 뭔가를 뒤적이더니 작은 요술램프 하나를 손에 쥐여주었다.


“저 주시는 거예요?”


“고마워서. 뭐라도 주고 싶은데 이런 것밖에 없네.”


초라해 보였던 노파의 얼굴이 그 순간 묘하게 품위 있었다.
감사씨는 기분 좋게 선물을 받아 들었다.
오늘의 두 번째 감사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탕비실로 향했다.
옆자리 동료의 커피까지 챙겨 자리에 돌아왔다.
동료는 어색해하며 고맙다 했다.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책상 위에도 비슷한 요술램프가 놓여 있었다.


아, 이 사람도 노파에게 밥값을 드렸구나.
국밥 한 그릇 값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의 위잉거리는 기동음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옆자리에서 우당탕 소리와 함께 동료가 쓰러졌다.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졌다.


감사씨는 침착했다.
다른 동료에게 119에 연락하라고 말하고, 공간을 확보했다.
넥타이를 풀어 호흡을 돕고, 맥박을 확인했다. 이마는 뜨끈했다.


119가 연결된 전화를 받아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지시에 따라 추가 조치를 하다 보니 구급차가 도착했다.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남은 하루는 동료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조금 바빴지만, 야근으로 나온 식사가 맛있어서 위로가 되었다.
깊은 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고단했지만, 무사히 보낸 하루.
오늘의 세 번째 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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