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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무개 Oct 25. 2017

소설가 김영하의 제목 짓기

김영하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읽고

** 스포 있음 **

 나는 글을 즐겨 쓴다. 예전에는 제목부터 짓고 글을 써 내려갔다. 요즘은 제목 짓기에 부담이 많이 간다. 멋모르고 쓸 때는 제목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는데, 시 하나를 읽고 제목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민 
                                         이윤학

한 마리 개미를 관찰한다

돋보기로 보는 개미
흐릿하게 확대되어
어지러운 마움속에 사로잡힌다

얼마나 추웠을까?

초점을 맞춘다



 이 시에서 재목이 '개미' 였다면 독자에게 주는 인상은 180도 달랐을 것이다. 결국, 이 시의 주제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해 제목으로 짓지 않았을까. 제목을 짓는 것이 어려워졌다. 내 글을 아우르면서 소름 끼치게 할 만한 제목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내 수준에서 독자에게 소름 끼치는 감동을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읽고 소설가 김영하의 제목에 집중해 보았다. 단편집 각각의 제목을 포함해 이 소설집의 전체 제목을 '오직 두 사람'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지. 


첫번 째 소설.  <오직 두 사람>

 딸과 아빠의 관계에 대한 소설이다. 편지 형식의 소설이며 고백적이다. 딸인 현주가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병상에 있는 아빠와의 관계에 대해서 썼다. 현주는 아빠의 품에서 자랐다. 엄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매들도 있다. 그중 유독 아빠와의 유대관계가 깊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이미 그녀는 아빠라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듯했다. 유년시절을 포함해 그녀에게 세상은 아빠였다. 이 두 사람의 끊을 수 없는 어쩌면 강제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제목이 아닐까. 마치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남은 것처럼. 


두번 째 소설. <아이를 찾습니다>

 이 소설집 속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이다. 김영하의 소설은 뻔하지만, 어딘가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는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아주 좋다. 이 소설은 아이를 찾다가 모든 걸 읽은 윤학의 이야기다. 직장, 미쳐버린 아내 그리고 십 년 만에 찾은 아이까지 윤학에게서 사라져버린다. 글의 마지막에 윤학은 자신이 낳은 아들이 낳은 갓난아기를 맡게 된다. 십 년 넘게 아이를 찾던 윤학은 모든 걸 잃고 갓 태어난 아기가 윤학에게 온 것이다. 마치 신이 '너의 인생은 아이 때문에 망쳤으니 리셋하고 다시 이 아이로 시작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결국, '아이를 찾습니다'의 아이는 이 갓난 아이었을까. 제목, 아이를 찾습니다. 기가 막힌다.


세번 째 소설. <인생의 원점>

 서진은 인생의 원점이 있다는 것을 부러워한다. 항상 떠돌며 살았던 서진은 돌아갈 곳이 없다. 어릴 적 친구 인아와 사귀고 있다. 서진은 내연남이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며 사는 인아에게 서진은 숨구멍이다. 인아를 사랑하는 서진은 인아가 인생의 원점이라고 한다. 인아는 결국 죽는다. 자살로 밝혀졌으나 서진은 분명 남편이 죽인 것이라고 믿는다. 남편을 해코지하려고 미행하던 중 예전에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한 남자가 인아의 남편을 사정없이 때리는 것을 목격한다. 인아의 남편은 뇌사상태 혹은 불구가 되기 직전의 상황으로 가고, 그를 때렸던 인아의 또 다른 내연남은 구속되었다. 서진은 인아를 잃었지만,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적들을 무찌른 상황이 된다. 그것이 새로운 인생의 원점이 되었다고 한다. (줄거리 설명이 길었다) 인생의 원점이 없었던 서진은 인아를 통해 원점이 생긴 것이다. 소설 중 "네가 내 원점이야."라고 했던 것이 맞는 말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처음부터 인생의 원점을 두고 주인공이 논한다. 그렇기에 너무 당연한 제목이지만, 있어 보이는 제목이다. 작가의 평소 고민이 소설로 나온 것일까. 작가는 독자에게 "어느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의 질문을 던지면서 "그럼 재밌는 내 소설을 읽어볼 테야?" 라고 하는 것 같다. 흥미로운 질문과 재밌는 소설까지 두 가지 선물을 받은 소설이었다. 


작가 김영하는 소설을 다 쓰고 제목을 짓는 듯하다. 이유는 제목이 소설의 문장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소설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할까, 소설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 소설가 김영하의 제목은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듯하다. 두 사람의 내용이지만, 읽고 나면 연민이 느껴지는 제목. 아이를 찾는 내용이지만, 읽고 나면 소름이 돋는 제목. 인생의 원점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지만, 그럴 듯하면서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 뻔한 제목은 없는 것 같다. 작가의 재량이 평범한 것도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재량이 부족했다면 뻔한 제목이 될 수도 있지만.즉,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쓴듯 하지만, 한번더 생각나게 하는 제목이다. 내가 원하는 제목은 소설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그래서 이글의 제목도 '소설가 김영하의 제목 짓기'로 해봤다. 뭔가 궁금하지 않았었나. 내용은 <오직 두 사람>의 감상문에 가깝지만, 각 소설의 제목이 좋았다고 생각했기에 이 글을 썼다. 글의 때깔을 결정하는 제목. 끊임없이 생각해도 부족해 보이는 것이 제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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