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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무개 Oct 13. 2017

아무 생각없이 들어보세요

가수 시와의 '랄랄라' 리뷰

2017.04 부산 해운대에서 찍은 사진


 ‘꽤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부스스한 이불을 걷어내고 아직은 찬 바닥에 두발을 내려놓는다. 누가 내렸는지 몰라도 커피냄새 정말 좋다. 터벅터벅 거실로 나가 약간은 식은 커피가 있는 머그컵을 들고 쇼파에 앉는다. 꺼진 티비 앞에서 멍하니 덜 깬 잠을 떨친다.’

 앞글을 보고 머릿속에 누군가를 그려 이 사람이 하는 행동에 따라 ‘내 시선’을 두었는지 묻고 싶다. 필자의 부족한 글 솜씨 탓에 그림을 그려나가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도한 대로 독자가 따라왔다면 여유로운 상황 탓에 평온한 마음이 들었을 터. 오늘 소개할 가수 시와의 ‘랄랄라’는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미술 선생님 같은 노래다. 


 스무 살, 나는 마음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첫사랑 때문에 힘들었다. 막 대학에 들어가 살이 찐 내 모습은 더 나를 비참하게 했다. 그 해 한창 더운 여름 날 친구 한명이 나를 홍대 라이브카페에서 하는 공연에 데리고 갔다. 드디어 나도 서울 문화 제대로 누려보는구나 했다. 가수 라인업을 확인하고 ‘시와’라는 독특한 이름에 잠시 눈을 뒀다. 감성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등장했다. 차분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노래마저 말하는 듯이 하는 그녀. 취향저격. 공연 후 그녀의 씨디를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 좋아하는 가수 이름을 말할 때면 처음으로 말하는 가수가 되었다. 



 그 중 왜 ‘랄랄라’가 마음속에 남았을까. 앞서 말한 힘들었던 스무 살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힘들 때, 특히 이별을 감당하지 못해 미련 속에 파묻혀 있을 때는 마음이 참 복잡하고 지쳐있다. 깨끗하고 단순하고 맑고 차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시와의 ‘랄랄라’를 처방합니다. 어쿠스틱 기타의 도입부가 군더더기 없다. 깨끗하다. 여섯 줄의 가사로 4분 7초를 이끌어 간다. 단순하다.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가사의 한부분이다. 마치 햇살이 쏟아지는 놀이터에 앉아 하늘, 나무, 그늘, 놀이기구의 계단을 맑은 눈으로 쳐다보는 듯하다. 맑다. 그리고 시와의 조급하지도 높지도 않은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차분하다. 구구절절한 슬픈 노래 (대부분 이별노래)는 오히려 나를 더 깊은 감정의 늪에 빠지게 한다. 마음이 힘들 때는 이 노래만한 게 없다.



 시와는 2007년에 데뷔해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라디오에도 나오면서 ‘나만 알고 싶은 가수’의 심해에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시와에게 소수인원으로 진행한 기타레슨을 받아 본 적이 있다. 노래의 가사, 그녀의 목소리처럼 적당히 밝고 적당히 차분한 사람이었다. 붕 떠있지 않고 자연스러운 사람의 냄새가 나서 편안했다. 당시 나에게 수요일은 힐링데이였다. 수업의 마지막 날에는 내가 만든 팔찌와 직접 쓴 편지를 수줍게 건네기도 했다. 그 후 공연 후 사인회 때 마주치면 아는 척을 해준다. 팬의 입장으로서는 성공한 덕후가 된 것이다. 

 별 고민 없이 산 옷이 매일 입고 다니는 데일리 아이템이 되고, 별 생각 없이 봤던 영화가 내 마음을 후벼판 인생 인생영화가 되고, 친구 따라 간 공연에서 본 가수가 마음을 치유해준 가수가 되었다. 어떨 때는 너무 많은 고민과 너무 많은 선택지가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 할 때가 있다. 별 생각 없이 보고, 별 생각 없이 들어보자. 어느 순간 별별 생각을 하게 만들 여운을 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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