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지아=천진난만
돈, 시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꽃을 산다. 내가 처음 꽃을 샀을 때가 기억난다. 연희동 사러가마트 한편에 있는 꽃집에서 몇송이 꽃을 샀다. 선물할 것도 아니고 화병에 꽂을 꽃이었기 때문에 몇 송이면 족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생전 처음으로 꽃을 샀는지 모르겠다. 다만 기억나는 건 위로를 받고 싶었다. 대학교 1, 2학년이었던 나는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애, 서울 생활 등 모든 면에서 안정적인 것이 없었다. 기분전환이 필요했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그 후 꽃은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단, 조건은 생화여야 한다. 그 이후 나는 꽃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주 이용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 할 일도 자주 생겼다. 축하에 관련된 일에는 빠질 수 없었고,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누가 되었든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꽃을 선물 하기도 했다. 싸게 꽃을 살 수 있는 곳도 발견했다. 양재 꽃시장의 매매가를 방불케 하는 홍대 8번 출구 앞에서 꽃을 파는 아주머니 아저씨의 꽃집? 꽃 포장마차? 다. 생화 한 다발에 5-6000원에 살 수 있다. 포장 해줄 때 “비닐로만 포장해주세요”라고 말하면 다소 올드해보이는 포장 종이를 빼고 투명비닐로만 포장해준다. 팁이다. 샛노랗고 야무지게 봉오리진 프레지아 꽃이 좋아서 지나가다 자주 찾았지만 늘 있지 않았다. 장미꽃은 항상 있다. 며칠 전에 떡하니 프레지아가 있길래 주저앉고 샀다. 집에 와서 투명한 화병에 꽂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글을 쓰는 지금도 프레지아 꽃이 보인다. 이케아에서 산 큰 인조 나뭇잎과 조화가 그럴듯하다. 졸업식 날 받은 꽃다발도 옆에 함께 두었다(며칠 전에 나는 대학교 졸업을 했다). 요즘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충분하다. 그래서 꽃을 살 여유가 생겼나 보다. 백수로 지낸 지도 한 달이 다되어간다. 일을 했던 두 달 동안 정신없게 살았다. 물론 경제 활동에 대해 무능력해졌다는 것이 날 조금 주눅 들게 하지만 지금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저 프레지아를 산 이유는 위로받고 싶어서인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무엇 때문에 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기분을 돌아볼 여유가 있어서 산 것은 확실하다. 늘 종종 꽃을 살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프레지아 꽃말을 찾아보니 ‘천진난만’이다. 프레지아가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