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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무개 Jul 26. 2018

지운 기억

영화 '이터널선샤인'을 보고

 




 이터널 선샤인을 본 뒤 충분히 감정을 가라앉혀야 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나를 덮고 기분까지 이상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 영화다.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 이터널 샤인. 나는 최근 결혼 준비로 사랑을 베이스로 두고 지냈지 사랑 자체의 감정을 들여다 보며 지내지 않았다. 이 영화는 사랑, 그 생생한 감성을 곱씹게 해준다.  


 뒤죽박죽 섞인 기억들 속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는 건 흐뭇하고 편안하게 만들었다. ‘지움’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피해 도망치는 과정 속에서도 크게 긴장감은 없었다. 도망치는 상황보다 그들의 감정에 집중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 과한 사랑은 때때로 힘들게 한다. 이들은 아마도 넘치는 사랑 뒤 이별에 감당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슬픈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끝내 흘리지 않는 눈물처럼. 이 영화에서는 그런 감정의 밀당이 적절했다.  


 초록, 오렌지 그리고 푸른색. 마치 기분에 따라 변한다는 어릴 적 마법 반지처럼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은 그들이 함께 보내온 시간의 기분을 나타내주는 듯하다. 그녀의 상징적인 머리색은 클레멘타인을 더욱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만든다. 머리색만큼 충동적인 그녀의 성격은 좌충우돌이다. 길을 걷다 아기를 갖고 싶다고 사랑스럽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조엘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자 불같이 화를 내는 클레멘타인의 모습은 그녀의 캐릭터에 맞게 자연스럽다. 


 한편 조엘은 일상에 쩔어 있는 남자의 모습을 대표하는듯한 인물이다. 집과 회사,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 속에서 마치 딛고 서 있는 빙판에 금이 가듯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존재가 나타난다. 클레멘타인. 초록–첫만남, 오렌지–사랑, 푸른–지운 기억. ‘지운 기억’이란 말은 모순적이다. 지워진 기억은 더 이상 기억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을 지운 뒤 남는 것은 흔적뿐이다. 마치 볼펜으로 쓴 오류를 화이트로 지운 뒤의 어색한 종이의 흐름처럼. 하지만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지운 기억이 존재한다. 지운 기억으로 다시 현재를 만들어나간다. 조엘과 클레멘타인뿐만 아니라 하워드와 매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워드를 사랑했던 매리의 기억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니지 돌아간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새로운 사랑이 현재가된다. 


 살아가면서 지우고 싶은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했던 연인과 슬픈 기억일수도 너무 행복했던 순간이어서 현재를 비참하게 만드는 기억일수도. 결론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행여 당신의 바람대로 그런 기술이 생겨도 뜻대로 잊혀 질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지우고 싶은 기억.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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