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우거진다. 고원 산소도시 태백 역시 푸르름이 짙어진다. 새벽 단잠을 깨웠다. 눈 비비고 일찍 일어났다. 대낮은 태양빛이 강렬하다. 덥기 전에 산행을 다녀오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간단히 물과 간식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아직 도로는 한가롭고 조용하다. 새벽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태백산 등산로는 여러 곳이다. 당골 유일사 백담사 백천계곡 등 여러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유일사로 올라가서 당골로 내려오는 탐방로가 좋다. 오늘 태백산 산행은 캐나다에서 방문한 조카와 동행한다. 조카는 방학 동안 서울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귀국했다. 부모님이 살았던 대한민국, 할머니가 살고 있는 태백 여행 중 태백산에 올라 보고 싶어 한다.
유일사 주차장에 주차했다. 일찍 나섰지만 등산객들이 눈에 띈다. 주차장에서 화장실에 다녀와서 등산을 시작했다. 입구에 있는 태산사에 도착했는데 벌써 숨이 차다. 나는 체력 고갈을 실감한다. 조카는 가볍게 등산을 한다. 간단히 몸풀기 시작했으니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등반을 시작한다. 태백산 자락에 들어서니, 은은한 라일락 향기가 바람을 타고 불어온다. 산들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마치 춤을 추는 듯 생기 넘치는 모습이다. 정상 중간 정도에 왔다. 쉼터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웬 산에 곤돌라가 있나?’고 묻는다. 언덕 아래에 보이는 유일사에 식료품을 운반하는 용도라고 설명했다. 조가는 한국 사찰에 관심이 많다. 유일사가 보고 싶다고 한다. 내려가는 길은 데크로 잘 정리해 놓았다. 유일사 무랑수전은 절벽을 병풍 삼아 웅장하다.
유일사 언덕을 다시 올라왔다. 지금부터는 돌계단이 이어지면서 경사도 심하다. 철 지난 꽃들과 다양한 야생화들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르다 보니 정상 가까이 올랐다. 천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주목들이 위엄 있는 자태를 드러낸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생전 사천(生千死千)’나무로 불리는 주목의 웅장함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태백산 정상을 지키고 있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껴본다.
태백산 정상에 도착했다. 태백산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이다. 천제단은 태백산 천왕단을 중심으로 한 줄로 놓여 있다. 천왕단의 북쪽에 장군단이 있고, 천왕단의 남쪽에 하단이 있다. 제단을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태백산은 예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섬겨져 제천의식의 장소가 되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부족국가 시대부터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기록하는 것으로 미루어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개천절에 나라의 태평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천제를 지내는 천왕단을 올라가서 볼 수 없다. 제단을 둘러쌓고 있는 둥근 석축이 무너져 있고 복구를 위해 진입 금지하고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구름이 떠있다. 천제단을 바라보면서 잠시 마음을 담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간단히 준비해온 간식을 먹는다. 생수도 꿀맛이다. 당골 광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단종비각이 있다. 비각에는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라 새긴 비석이 있다. 단종비각이 태백산 정상부근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전 한성부윤 추익한은 태백산의 머루 다래를 따서 자주 진상하였다. 어느 날 과일을 진상하러 영월로 가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곤룡포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오는 단종을 만나는 꿈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영월에 도착해보니 단종이 그 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 후 1457년 영월에서 승하한 단종이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고 산신령으로 모시는 제를 음력 9월 3일에 지내고 있다. 지금의 비각은 1955년 망경대 박암 스님이 건립한 것이며, 오대산 월정사 탄허스님의 친필로 쓰인 비문이 안치되어 있다.
돌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덜거린다. 새벽공기를 따고 독경소리가 들린다. 태백산 정상에 있는 망경사에서 염불을 하고 있다.망경사에는 용정이 있다. 대한민국 최고 높이에 있는 우물이다. 물맛은 차고 달콤하다. 힘들게 올라온 피로가 풀리는 듯 하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조카는 틈틈히 돌을 주워 석탑쌓기를 즐긴다. 정성을 다해 넘어지지 않게 세우는 재미도 있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참나무 숲과 발아래 사각거리는 산죽 소리,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다 보면, 일상의 번잡함은 잊고 오롯이 산과 하나 되는 기분이다. 태백산의 맑은 기운을 느낀 오늘 하루는 진정한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가끔씩 나를 돌아보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