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가 취업이 되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IT 및 AI 산업 기조에 발맞춰 대학에서도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밀어준다. 현실보다 적성을 운운하던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알릴레오북‘s에 출연한 김상욱 교수님께서 『사피엔스』를 추천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도덕과 법률, 선과 악, 정의, 돈, 경제 등은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에요. 물리학자들에게는 시간과 공간, 물질 빼고는 모두 상상의 산물이죠. 과학자들은 의미를 찾지 않아요. 의미에 관련된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든 상상이니까요.”
『자유론』에서 밀스도 그러한 말을 했다.
“수학적 진리를 증명하는 것의 특이성은 확실한 정답이 있어서,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 분명하게 나뉜다. 따라서 반론도 있을 수 없고, 반론에 대해 대답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들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는 각각의 의견을 밑받침해 주는 일련의 서로 상반되는 근거들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진리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껏 갈고닦은 학문은 이 시대에 유용한 지식일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추상적인 학문은 인간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용한 게 아닐까. 의미가 왜 필요하지?
빅터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극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추구한 사람들은 의욕과 희망을 잃지 않았고 그 덕에 생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잠시 지식 앞에 실용성을 따진 모습을 반성했다. 삶이란 예측불가능한 일의 연속이라, 명확한 답이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프랭클은 행복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고로 행복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아픈 이를 치료하는 방법이 약물이 아니라 살아야 할 목표를 이야기해 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가치 있는 목표를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투쟁할 때 우울증과 중독, 자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무엇에 의존하고, 어딘가에 영향을 받고,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게 되면 불안에서 탈피할 수 있다. 구본권은 『공부의 미래』에서 물에서 자유로우려면 수영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외국을 자유롭게 여행하려면 외국어 능력이 필요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려면 경제활동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이 자유를 가로막는지 그 힘과 영향력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명확한 답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모호한 학문’들은 답이 없는 한계를 극복의 대상이 아닌 다룸의 대상으로 인지하게끔 만든다.
고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문돌이들아, 자신감을 갖자!”
의미를 분석하고 파악하는 일은 삶에 목적을 부여한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 의미를 제공하는 학문이란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