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지갑을 주웠다.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벌써 세 번째다.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지갑을 많이 잃어버리나. 사무실에 찾아가 이름과 번호를 남겨두고 왔다. 안에 신분증이 있으니 지갑은 머지않아 주인을 찾을 것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우리는 ‘상실감’이라고 표현한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는 애착 이어폰을 잃어버린 뒤부터 지갑과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슬픔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 역시 물건을 잃어버렸던 경험이 많다. 기억에 남는 일만 추려본다면, 하루에만 휴대폰을 세 번 잃어버린 적도 있고, 나도 모르게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이 집 앞으로 배송 온 적도 있다. 학교에서는 에어팟을 잃어버렸는데 누군가 에브리타임에 올려준 덕분에 한 시간 만에 찾은 일도 있었다. 잃었지만 운이 좋아 되찾은 경험의 연속이다.
젖살이 빠지고, 눈밑 다크서클의 농도가 짙어지면서부터 다른 형태의 ‘상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시절인연들과의 이별을 ‘옛 상실‘이라 칭한다면,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 새로운 상실‘이라 부르겠다. ‘새로운 상실’의 아픔은 일시적이지 않다. 또한 해결될 수도 없기에, 나는 이 ‘상실‘을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자, 인생사의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어제 아침이었다. 내 인생의 귀인이자, 몇 안 되는 존경하는 스승님, 어디선가 잘 살고 계셔야만 하는 그분에 대해, 달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시선 끝에 창문이 보였는데. 순간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풍경이 너무도 평화로운 나머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평화도 폭력적일 수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