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자마자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했었다. 당시 점장님과 매니저님은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분들의 나이대가 되면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제 그들의 나이가 되었으나, 여전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텃세’라는 단어도 몰랐던, 때 묻지 않은 아이가 그리도 밉보였을까.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입에게 면박을 주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 사는 게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 가치를 두고 있었을까.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에서 주인공은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별의별 상황에서 별난 사람들을 겪는 주인공에게 ‘고객과의 관계를 인격적 관계라고 착각해 봤자 실수하고 울게 되는 것은 나뿐’이라며 충고해 준 매니저가 있었다. 그녀가 매니저로 일하는 매장은 가장 먼저 목표 매출액을 달성한다.
이따금 매니저는 립스틱을 새로 바르고 백화점 근처 지하상가로 내려간다. 저렴한 스커트나 양말 같은 것을 계산대에 쌓아두는데, 그러고선 그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갈군다. 노골적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그 태도는 주인공이 매장에서 겪는 고객들 가운데 가장 유난하고 잔혹하게 구는 사람들과 닮아있다. 왜 그 사람들처럼 하냐고 묻는 주인공에게 매니저는 답한다.
“도게자라고 알아 자기?
도게자.
이렇게. 인간이 인간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는 자세를 도게자라고 해. 사람들은 이걸 사과하는 자세라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사과하는 자세가 아니야. 본래 사과하는 자세가 아니다. 이게 뭐냐 하면 자기야, 그 자체야. 이 자세가 보여주는 그 자체. 우리 매장에서 난리 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야. 사과가 필요하다면 죄송합니다 고객님, 으로 충분하잖아? 그런데 그렇게 해도 만족하지 않지. 더 난리지. 실은 이게 필요하니까. 필요하고 바라는 것은 이 자세 자체. 어디나 그래 자기야. 모두 이것을 바란다. 꿇으라면 꿇는 존재가 있는 세계. 압도적인 우위로 인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경험. 모두가 이것을 바라니까 이것은 필요해 모두에게. 그러니까 나한테도 그게 필요해. 그게 왜 나빠?”
6년 전 알바 도중 뛰쳐나온 나는, 이후로도 사건을 두고두고 회자해야 했다. 여전히 감정이 앞선 비이성적인 행동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그 일은 처음으로 외부에 공격성을 발휘한 순간이기도 했다.
트라우마가 알바를 구하는 것에 신중토록 만들었는지, 다시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야 할 일은 없었다.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 당연한 것이 될 순 없을까.
따돌림으로 유명을 달리한 이의 뉴스를 접할 때 오래전 다짐을 떠올린다. 사람 사는 곳에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조금 수고스러워도 좋으니 “말의 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