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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못써서 글쓰기 선생이 되었다

by 정글


글쓰기의 거짓 욕망이 다른 욕망,

주체 자신도 모르는 욕망을 가리는 것입니다.

-롤랑 바르트

은유 작가. 《쓰기의 말들》. 필사. 80.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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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글이 늘지 않았다.

매일 쓴다고 쓰지만 제자리인 것 같았고,

때로는 써놓은 글이 민망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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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선생이 되면, 억지로라도 쓰지 않을까?”

수백만 원 수업료를 들여

글쓰기 코치과정에 입과 했다.

2개월 과정을 받고 코치 인증을 받았다.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생들 앞에서 글을 말하고,

글을 권하고,

글을 쓰자고 부추기다 보니

나도 ‘안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게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비밀병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자주 흔들렸다.


“이건 내 길이 아닌가 봐.”

“괜히 시작했나?”

"나는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가 봐"

"차라리 다른 일을 이만큼 했더라면"

“학생들이 더 잘 쓰는 것 같아...”

가끔은 이런 생각에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게

내가 글쓰기 선생이라는 게 민망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질문을 바꿔본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었을까?”

나는 왜 글을 가르치고 있을까?

정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데도 내가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글을 쓰는 일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글을 쓰는 학생들을 보면,

내가 포기할 수 없다는 것.


가끔은 내가 쓴 글보다

학생들이 쓴 글에 더 감동받는다.

나보다 잘 쓰는 것 같아서

위축될 때도 있지만 그보다 더 자주,

“내가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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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다.

그러기에 글쓰기 스승에게

매월 20여 시간 글쓰기 수업을 받고,

매월 12시간 이상 글쓰기를 가르친다.


나를 다잡기 위해 글을 배우고 가르치고

나를 밀어붙이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잘 써서 선생이 된 게 아니다.

그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서,

지금도 멈추지 않고 쓰고 있는 사람이라서,

함께 쓰고자 애쓰는 사람이기에

선생이 되었다.


누구보다 잘 쓰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오래 쓰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다.


글이 안 써지는 날에도,

학생들의 글이 더 좋아 보여서

위축되는 날에도,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구보다 잘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경험을 꺼내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함이고,

내가 글을 가르치는 이유는

내가 먼저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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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 줄을 겨우 쓰며

글쓰기 선생으로 살아간다.

잘 쓰기보다 계속 쓰기 위해.

혼자 쓰기보다 함께 쓰기 위해.

내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내가 잘 쓰니까 선생이 되는 게 아니라,

함께 쓰는 사람이니까 선생으로 존재한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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