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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끝내 버릴 수도 무를 수도 없는 참혹

퇴고는 삶을 치유하는 여정입니다.

by 정글


퇴고는 자신의 글로부터 유체 이탈하여

자신의 글에 대한 최초의

독자가 되어보는 경험이다._정여울

은유. 《쓰기의 말들》. 86번.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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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는 삶을 치유하는 여정입니다.


지금 두 번째 책 퇴고 중에 있습니다. 초고를 완성한 지 한 달이 흘렀습니다. 퇴고하려 초고를 읽으면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습니다. 처음 보는 글 같습니다. 다시 쓰기가 귀찮고, 무를 수도 없고, 다른 일하면서 짬짬이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한쪽으로 밀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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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올라오는 단톡방 출간 소식에 축하 댓글을 달면서 밀어놓았던 초고를 꺼냅니다. 은유 작가 말처럼 고역이고 형벌 같은 이 작업을 합니다. '편하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일은 없다'라고 수강생들에게 말했는데 부끄럽습니다.


처음 '치유의 글쓰기'라는 말을 듣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글을 고치고 다듬고 정리하고 덜어내고 깎아내는 퇴고의 과정이 결국 내 삶을 탄탄하게 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라는 걸 말이죠.


글쓰기 스승은 "퇴고는 덜어내기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작가 은유는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그 자신이 영리한 독자, 냉정한 판관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정여울은 '사랑과 영혼'의 영화 주인공처럼 내 몸에서 살짝 빠져나와 자신이 쓴 글의 최초 독자가 되는 게 퇴고라고 합니다.


저는 허수경 시인의 "끝내버릴 수도 무를 수도 없는 참혹."이라는 말이 마른땅에 비 오듯 내 마음에 스며듭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400번 넘게 퇴고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퇴고는 끝이 없다는 말이겠지요. 그렇다고 평생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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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는 내가 쓴 글에 대한 최초의 명석한 독자가 되어, 모 회사 광고 카피처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과정을 겪어야 좋은 글이 탄생합니다.

작가 은유는 퇴고할 때 이런 질문을 하라고 합니다.


퇴고 여덟 가지 질문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가?
① 그 단어가 정확한지
②문장이 엉키지 않는지
③단락이 매끄러운지
④근거는 탄탄한지
⑤글의 서두와 결말의 톤은 일관된 지
⑥주제를 잘 담아내는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잘 전달되었는가?


왜 퇴고가 치유일까요? 글을 고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내고, 과장된 표현을 다듬고, 논리의 빈틈을 메꾸고, 마음을 비우고, 용서하고 용서를 빌고, 반성하고, 감사하고, 생각을 명료하게 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고......,


허수경 시인의 말처럼 '끝낼 수도 무를 수도 없는 참혹'이지만, 바로 그 참혹함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됩니다. 퇴고는 글을 완성하는 과정이자, 나 자신을 완성해 가는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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