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 대한 우리의 공경, 그것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 주는 누설자다.
-프리드리히 니체
은유.《쓰기의 말들》. 93. P.207.
글공부를 할 때 스승은 늘 말했습니다.
"작가라면 자신만의 문체를 가져야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낯설었습니다. 경어체를 쓰라는 건지, 평어체를 쓰라는 건지? 계속 강의를 듣고 읽고 쓰면서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문체란 복명가왕 무대나 정치풍자 코미디와도 같습니다.
복명가왕에서는 가수의 얼굴을 가리고 오직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추측합니다. 코미디언은 정치인의 목소리만 흉내 내도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지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장을 읽으면 글쓴이가 보여야 하고, 글 속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자기 문체를 가질 수 있을까요?
가수가 노래 한 곡을 수천 번 불러내며 완성해 가듯, 코미디언이 정치인의 말투를 익히기 위해 무수히 듣고 따라 하듯, 문체도 결국은 반복된 연습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저는 아직 문체가 없습니다. 나만의 문체를 가져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첫째, 필사합니다.
복명가왕에 무대가 있고, 정치풍자에 대상이 있듯, 저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 문장을 매일 따라 씁니다. 김종원, 은유 작가 글처럼 정감 있고 감성적인 글을 좋아합니다. 또 이기호 작가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처럼 읽고 나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여운이 남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하여 김종원 작가의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이다》를 필사했고, 지금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을 필사 중입니다.
둘째,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 필사한 은유 작가 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채소를 먹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 녹색 변을, 김치를 먹으면 붉은색 변을 본다"
읽은 것이 결국 글이 되어 나오듯, 글은 독서를 통해 길러집니다. 이달 초 '은유 작가 저자와의 만남'에서 작가 역시 독서를 통해 글 쓰는 법을 읽혔다고 했습니다.
셋째, 글공부를 하며 매일 씁니다.
댄스도, 스포츠도, 피아노도 혼자 배우는 것보다 스승에게 배우면서 연습하면 습득이 빨라집니다. 매주 세 시간 이상 이은대 글쓰기 스승에게 배웁니다. 배운 내용대로 꾸역꾸역 한 편 씁니다. 공자님 말씀, 교장선생님 훈화, 주례사 같은 글이 아니라,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소재 삼아 씁니다.
한강 작가가 하루아침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 아니듯, 쓰고 지우고를 무수히 반복한 끝에 거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진 작가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저는 글을 쓰고부터 삶이 조금씩 좋아지는 걸 느낍니다. 예전엔 아내 잔소리에 금세 화가 치밀었는데, 이제는 분노 게이지가 천천히 올라갑니다. 운전하다 옆 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욕부터 했지만, 요즘은 일부러 외칩니다. "어서 오십시오! 얼마나 바쁘면"
하루를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다 보니, 삶이 훨씬 더 너그러워졌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 귀한 시간에 글을 계속 써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지만 보람도 있고 가치 있은 일임을 압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쓰다 보면 내가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자존감도 올라갑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남을 더 이해하게 되고 결국 인생이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는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얻어지지 않지만, 매일 읽고, 필사하고, 쓰는 반복 속에서 조금씩 내 문체가 드러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