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돌이켜보면 그때는 내가 로봇인 줄 알았다. 일에 파묻혀 나 자신을 잃어가던 시절, 왜 그렇게 우직하게 버텼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결국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나의 이야기가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깨달음이 되기를 바란다.
뜻하지 않은 인사발령
인사과장에게서 걸려온 인터폰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아직 부서를 옮길 시기도 아닌데,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긴장된 손으로 문을 열자, 인사과장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미 결정된 듯한 말투로 통보했다.
“총무과로 가서 근무해야겠어.”
난데없는 소식에 당황해서 물었다.
“저, 보직받은 지 1년 6개월밖에 안 됐는데요. 저희 과장님도 싫어하실 겁니다.”
하지만 과장은 내 말을 잘랐다.
“자네 과장에게는 내가 얘기할게. 이번에 자리를 옮기면 다음 인사 때 자네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줄게."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맡게 될 보직은 '기획/업무보고'였다. 그저 PPT를 좀 잘 다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심사분석, 본부장 보고, 주요 업무계획 등 머리 나쁜 내게는 버거운 업무들이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였다.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좋은 부서만 골라 가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런 고된 일을 맡게 되는지 억울했다.
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과장이 나를 불렀다. 목소리가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정 계장, 총무과로 옮긴다고 했나?”
자신에게 말도 없이 부서를 옮기고 싶어 한 것처럼 비난하는 말투였다. 이미 인사과장과 통화한 후일 거라는 생각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새 부서의 업무를 인계받던 중, 전임자가 왜 그리 서둘러 떠났는지 알 수 있었다. 기존 업무에 더해 회사 100년사 제작이라는 대형 프로젝트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힘든 일을 미리 알고 떠난 것 같다는 생각에 전임자가 미웠다. 인수인계하는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인사과장과 전임자가 친척 사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더 상했다. 돈도, 배경도 없는 나는 그저 이용당하는 소모품처럼 느껴졌다.
발령과 동시에 100년사 제작 TF 팀을 구성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아무도 오려하지 않았다. 결국 간부 회의를 열어 각 부서에서 한 명씩 차출해 겨우 4명으로 팀을 꾸렸다. 역사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우리들은 모두 막막했다. 우리는 50년사와 100년사를 제작한 다른 기관들의 자료를 샅샅이 뒤졌고, 전국 우체국과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3개월 후, 함께 일하던 팀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결국 나 혼자 남겨졌다. 100년사 제작 업무는 내 기존 업무에 추가된 일이었다. 매일 밤늦게까지 사료 분류 작업을 하고 초안을 완성했다. 이후 사료편찬 출판사와 용역 계약까지, 마침내 <부산체신청 100년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보화 물결이 거세던 시절, 대기업 S사 사장 출신이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공무원 조직에 혁신을 불어넣고 싶어 했다. 장관이 바뀌자 그동안 한글로 작성하던 주간, 월간, 분기, 연간 보고서가 모두 PPT 보고로 전환됐다.
그해에는 해운대에서 열리는 국제행사(APEC 등)가 많았다. 장차관이 부산으로 자주 내려왔고, 당연히 IT 부서 보고서는 올 때마다 PPT로 작성해야 했다. 한글로 결재가 나도, 그걸 다시 PPT로 만들어야 했다. 초안을 올리면 끝없는 수정이 이어졌다. 과장에게 보고하면 ‘과장수정 1, 과장수정 2…’ 파일이 쌓여갔다. 겨우 과장을 통과하면 ‘청장수정 1, 청장수정 2…’ 끝없는 수정이 이어졌다. 하도 많이 수정해서 어떤 내용이 진짜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수정할 보고서는 꼭 퇴근 시간에 건네졌다. "내일 아침까지 수정해서 보고해"라는 말과 함께. 밤늦게까지 모니터를 바라보며 수정 작업을 하다 보면,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모니터 화면이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글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늦은 퇴근으로 모니터만 뿌옇게 된 게 아니었다. 글자도 가족도 내 삶도 그렇게 희미해져 갔다.
경영혁신을 위해 '6 시그마'가 회사에 도입되었다. 각 부서마다 한 명씩 과제를 맡아야 했다. 우리 부서에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의 계장이 있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이 맡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과장은 나를 불렀다. “정 계장, 자네가 6 시그마 과제를 진행하게.” 순간 참아왔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제가 로봇인 줄 아십니까?"라고 소리치며 대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결국 6 시그마 과제까지 떠안게 되었다.
매일 야근에다 주말에도 나와 일을 해야 했다. 스트레스는 회사 앞 포장마차에서 술로 풀었다. 그때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아내보다 더 자주 보는 얼굴이었다.
우직함이 미덕이었다
그때는 왜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을까? 왜 과장에게 내 소신을 끝까지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우직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37년 회사 생활 중 그때만큼 열심히 일한 적은 없다. 덕분에 역사에 길이 남을 <회사 100년사>에 내 이름이 새겨졌고, 바쁜 와중에 진행한 '6 시그마 과제'는 은상을 받았다. PPT 작성 실력은 수준급이 되어 유튜버와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그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고생한 만큼 동료는 편할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힘든 일 후에는 반드시 성장과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죽어라 일만 시키는 상사가 미웠고, 억울하고 힘든 시간들이 왜 나에게만 주어졌나 원망했던 날들. 이제는 그 모든 순간들이 나의 삶을 단단하게 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안다. 힘든 시간들을 견뎌낸 나에게, 나를 단련시킨 상사와 동료들에게 이제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일 5화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