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직장에서 중요한 건 직급이 아니라 태도다. 함부로 욕하는 것도 문제지만, 대드는 것도 결국은 자기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젊을 때 패기가 훗날 자산이 되기도 한다.”
뜻밖의 전화
1985년 10월. 공무원 발령 이틀째 아침이었다. 제일 먼저 사무실에 출근했다. 잠시 후 책상 위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를 드는 순간, 귀청을 찢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어이~ 하동! 하동! 왜 보고 안 하노, 새끼야!”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욕설이었다. 어리둥절한 나는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러자 상대는 더욱 고성을 질렀다.
“야 새끼야! 네 직급이 뭐꼬!”
어제 임용식을 마친 따끈따끈한 새내기. 욕먹을 일이 없었기에 황당했다. 수화기를 든 손이 떨렸다.
“행정서기보 시보다. 누군데 아침부터 욕설이고?” 나도 목청을 높여 맞받아쳤다.
“뭐? 새끼야, 계장 바꿔라!”
“니가 직접 전화해라!”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시 후, 계장 책상 위 전화가 연이어 울려댔다. 계장은 출근 전이었고, 사무실엔 먹구름처럼 불안한 긴장감만 맴돌았다.
악명 높은 인물
나중에 알게 된 사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산청(부산·경남·울산 우체국 감독청) 강 계장이었다. 부산·경남·울산 관할 실적을 매일 아침 중앙에 보고해야 했는데, 당시 전산망이 없어 하부 우체국마다 직접 전화를 걸어 집계했다.
강 계장은 불같은 성격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하부 직원 중 그에게 대든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대든 것이다. 잠시 후 상사가 출근했다. 쭈빗쭈빗 상사 앞에 가서 아침에 있었던 사실을 보고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얼굴이 굳어졌다.
“정 주사, 큰일 났네. 네가 벌집을 건드렸어. 진짜 내려온다 카드나?”
당시 자가용이 없던 시절. 부산에서 하동까지는 200km, 고속도로와 비포장길을 거쳐도 버스로 족히 3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도 그가 달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한 기다림
오전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점심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에이, 안 되면 그만두면 되지 뭐!’
점심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혹시 그 사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인구 이 새끼 어딨 어!” 천둥 같은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170cm 남짓 마른 체격. 칼로 새긴 듯 날카로운 얼굴과 매서운 눈빛. 굳게 다문 입술에서 단단한 고집이 느껴졌다. 그를 본 순간 겁이 났다. 나는 급히 자리를 피해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힘껏 밟았다. 섬진강변에 이르렀다.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이름 밝히고 사정 설명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욕부터 하는 게 맞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은 없었다. 당시 나는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20대 중반 청년이었다.
‘잘못이 없다면 피할 필요도 없다. 가서 당당히 말하자!’
송림에서의 만남
사무실에 돌아오자 동료 여직원이 다급히 말했다.
“정 주사님! 본청 강 계장 와서 난리 났어요. 어디 갔다 왔어요. 빨리 송림으로 가보세요!”
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송림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일부러 중학교 교정에 들르고, 철봉 아래 벤치에도 앉아 있기도 하며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마침내 둑을 넘어 하동송림 포장마차 촌에 들어섰다. 포장마차 촌 중간에 5~6명이 모여 있었다. 그곳을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수백 년 된 소나무 숲 아래 포장마차가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파전, 재첩 국, 막걸리 냄새가 풍겼다.
“정 주사, 저기 오네!”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강 계장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새끼가, 키도 ㅈ만한 게!”
내 직속상관은 눈짓으로 머리를 숙이라고 했다. 뭐가 잘못인지 몰랐지만, 나는 연신 “죄송합니다”를 되뇌며 고개를 조아렸다.
강 계장은 큰 사발에 막걸리를 가득 따랐다.
“용서해 줄 테니 연거푸 세 잔 마시라.”
첫 잔은 억지로 삼켰다. 두 번째 잔은 목이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세 번째 잔은 배가 불러 반은 흘리며 마셨다. 소나무와 주위가 빙빙 도는 순간, 의식이 끊겼다.
뒤늦은 깨달음
눈을 뜨니 낯선 천장. 인사주임 집이었다. 정신을 잃은 나를 데려왔다고 했다. 사모님이 내어준 재첩 국은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그 후, 강 계장은 오히려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보고 숫자까지 불러주며 '그대로 보고'하라고 했다. 덕분에 실적 보고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세월이 흘러 본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놀려댔다.
“어이~ 행정서기보 시보!”
그 사건 이후, 그는 내 보직과 승진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상사가 부하를 호통치는 것도 ‘갑질’로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럽다. 여직원과 회식도 피한다. 성희롱으로 징계받아 전출 온 직원의 사례를 보며 더욱 경계한다. 코로나 이후 회식 문화는 크게 줄었고, 조직은 점점 개인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다.
“야 새끼야! 네 직급이 뭐꼬!”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그 거친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정겹게 느껴진다.
그 시절의 호통과 꾸지람은 억압이 아니라 훈련이었다. 오늘의 나는 그 시간을 지나온 덕분에 더 단단해졌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