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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결재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이다

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by 정글


“결재는 문서가 아니라 신뢰 위에 찍히는 도장이다. 신뢰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결재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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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 우체국에 있다가 우체국을 관리 감독하는 부서로 자리를 옮긴 후 1년이 지난 12월 중순. 한 해 사업을 마무리할 시기였다. 매일 아침 과장 호통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실적이 좋지 않은 사업은 관내 40여 개 우체국 실적을 전화로 받아 집계해서 매일 아침 과장에게 보고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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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담당하는 사업은 그해 전국 꼴찌였다. 토, 일요일 휴일을 반납하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실적 향상 대책 보고서를 만들었다. 결재 서류 앞쪽에 한 장 짜지 요약본을 만들고, 중요한 부분은 띠지로 보고서 사이사이에 붙였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과장 책상 위에 올렸다. 과장이 출근, 나를 불렀다. 두 손을 모으고 과장 책상 앞에 섰다. 과장은 험상 굿은 얼굴로 나를 째려보며 결재 서류를 집어던지며 말했다.


“야~ 이걸 보고서라고 작성했어......,”



과장 질책은 그칠 줄 몰랐다. 내 자리로 오는 길 팀원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책상에 와서 결재서류를 내동댕이 쳤다. 믹스커피에 설탕을 두 스푼 더 넣은 잔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늘 보니 먹구름이 끼어있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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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돌아오니 이지형 주사가 과장 책상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었다.


"야~ 이 주무관. 연말까지 보름도 남지 않았다. 전국 꼴찌. 이거 어떡할 건데......" 그도 나처럼 당하고 있었다. 그는 자리로 돌아와 점심도 거른 채 대책 보고서를 과장에게 올렸지만 또 퇴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는 결재서류를 책상에 던지며 투덜거렸다. "에이 씨 못해 먹겠네~" 그는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안타깝게 여긴 옆자리 동료 이선미 주무관이 그의 보고서를 출력해 과장에게 결재를 올렸다. 결재는 단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똑같은 보고서인데 도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결재란에 선명히 찍혔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갔던 그가 돌아와서 결재된 보고서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선미 주무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주무관님이 딱해서 제가 대신 받아왔어요.”

그는 결재된 서류와 그녀를 번갈아보며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똑같은 내용인데, 와 씨~ 미치겠네!" 내용은 그대로인데 결재받은 '사람'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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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내가 결재하는 위치가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서류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결재자의 이름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평소 믿음직하고 관계가 좋은 직원이 올린 서류는 대충 훑어보고 결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성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직원의 서류는 꼼꼼히 살피게 된다. 예전에 과장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때 과장은 나를 괴롭히려던 것이 아니라, 나와 쌓인 신뢰가 부족했다는 것을. 결재는 문서가 아니라 결국 ‘사람’ 위에 찍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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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결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직접 대면할 일이 줄었지만, 수천만 원의 예산 집행 같은 중요한 서류를 설명 한마디 없이 올리는 직원들을 보면 서운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 클릭 소리가 커지고, 결재를 미루게 된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도 결재를 미루며 '설명해 주길' 바라는 내 모습을 보면서, 과거 내가 상사를 미워했던 그때의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내용을 보고 적정하면 결재하면 될 것을 왜 사람을 먼저 미워하는가' 하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내용을 꼼꼼히 살핀다. 문제가 없는 서류는 직접 수정해 주기도 하면서 결재한다. 온라인 결재는 생산성을 높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여전히 결재를 올린 직원은 상사가 결재를 미루면 '나를 미워하는 건가', '직접 와서 설명하라는 건가' 하고 온갖 생각을 하며 애가 탄다.



퇴근 후 술집에서 상사를 안주 삼아 술에 취해있던 과거의 나에게 조용히 한마디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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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 서류가 반려되었다고 상사를 미워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도 없어. 그건 네가 못나서가 아니야. 그냥, 상사가 너를 믿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 결재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을 믿고 하는 거니까. 지금처럼 성실하게 내 일을 하고 신뢰를 쌓으면 돼.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두 손으로 가슴을 다독거리며 말해 줘.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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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신뢰라는 바탕 위에 꽃을 피우는 행위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


내일 3화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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