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일이 많다고 불평하던 그때가, 사실은 뭔가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였다. 지금 힘든 자리에 있다면 그것을 축복으로 여겨라.”
벌써 몇 달째 야근이었다.
‘회사 100년 사 발간, APEC 행사 장관 부산 방문 업무 보고서, 차관 참석, 장관 기자간담회, 100년 사 행사, 회사 홍보관 설치 기획, 심사 분석, 본부장 업무보고, 기자 간담회……,’ 몸이 열 개쯤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장면 그릇을 엘리베이터 입구에 두고 책상에 앉았다. 과장이 퇴근하면서 “내일 아침까지 청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라며 던져준 자료를 펼쳤다. 목구멍에 신물이 올라왔다. 짜장면 트림 냄새가 지겨웠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서류 뭉치를 옆으로 치웠다. 다시 청장 보고자료를 펼치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모든 부서의 불이 꺼지고, 옆 파티션 넘어 인사과장과 담당자만 남아 있었다. 인사발령 시기라 바빠 보였다.
“정 계장, 오늘도 야근이네! 발령 났는데 내일 하고 오늘은 퇴근하지?”
“네? 제가 발령 났습니까?”
“아직 모르나? 너희 과장이 이야기 안 하더나?”
내 귀를 의심했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커피를 쏟을 뻔했다. 모레 날짜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죽어라 일만 했던 3년, 정작 발령 소식은 다른 부서 과장을 통해 들었다. 적어도 함께 근무한 직원을 불러 직접 말해주는 게 상식 아닌가.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3년 전, 현 보직받을 때 “다음 발령 땐 원하는 부서로 옮겨주겠다.” 던 당시 인사과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다른 부서로 옮겼다.
일이 많아 아무도 오기 싫어하는 지금 자리에서 야근과 주말을 반납하며 일해 왔다. "내일 아침 청장한테 보고해야 한다"라며 서류뭉치를 던져주며 퇴근한 과장 얼굴이 떠올랐다. 서류뭉치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모니터에 과장 얼굴이 자꾸 비쳤다. 키보드를 모니터를 향해 던져버리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연말이라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인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간다. 회식을 마쳤는지 식당 앞에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으며 밖으로 나온다. 웃음소리는 나를 향한 비웃음처럼 들렸다.
포장마차에 앉자 소주를 시켰다. 소주도, 어묵도, 국물도 쓰기만 했다. 상사, 동료,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결국 술 한 병도 다 마시지 못하고 포장마차를 빠져나왔다. 터벅터벅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술 취한 남자가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다시 회사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일 아침까지 제출할 보고서. '왜 꼭 퇴근 시간에 주는지 모르겠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아프다. 모니터가 흐릿해졌다. 5개 부서가 있는 사무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주변이 더 캄캄해졌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한 과장에게 보고서를 내밀었다. 수정할 부분을 지적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했다. 나는 인사발령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다못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과장님, 저 발령 났습니까?"
"응, 몰랐나? 어느 부서든 똑같아. 거기 가서도 열심히 해!"
그 짧은 한마디가 내 3년의 수고를 모두 부정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부서로 옮겨졌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인사발령을 받는 사람이 아닌, 발령을 내는 국장이 되었다. 인사부서 과장이 들고 온 인사발령 안을 보며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모두가 선호하는 부서로 갈 수는 없다. 인사발령은 개개인의 의견을 묻고 협의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되도록 사전에 충분히 의견을 수렴한다. 선호하지 않는 부서로 가는 직원들은 따로 불러 그 사유를 설명해 주려 노력했다. 100% 만족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처럼 뒤늦게 소주를 들이켜는 밤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그때 그 밤의 서운함은 별것 아니었다. 새로운 곳에 가면 반드시 배울 것이 있었고, 그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3년의 야근이 실은 나를 가장 크게 성장시킨 시간이었다. '자랑스러운 우정인 대상, 대통령 표창, 장관 표창, 승진……,’ 그 밤의 서러운 눈물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한 가지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보직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상사나 인사부서에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고 있으면 알아서 해주시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절대 통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상사를 욕하고 동료들을 원망해도 그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내가 욕하는 사실조차 모른다. 나 자신에게만 상처를 남길뿐이었다.
많은 부서를 옮겨 다니며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 책꽂이에 때 묻은 ‘회사 100년사’가, 국장 명패가, 대통령 표창과 메달이 빛난다. 그 뒤에서 나를 응원하는 소중한 이들의 박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국장으로 첫 보직을 받으면서 ‘국장으로서의 나의 복무 10조’를 만들었다. 액자 속에 있는 내용을 소리내어 읽었다. 그날 밤의 쓰디쓴 짜장면 트림을 기억하며 국장으로서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
“10조. “나는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정신으로 우체국과 직원을 섬기며,
사업과 직원들의 성장과 가정이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
내일 7화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