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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집에 가기 싫은 상사

세상사람들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by 정글

"회사는 잠시지만 가족은 평생이다. 남은 건 실적도 자리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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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의 약속 시각 6시 30분! 김 과장은 일도 없는데 퇴근하지 않았다. 시계는 여섯 시 반을 가리키고, 나는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오늘은 특별히 오래전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지방에서 부산까지 찾아온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나기로 약속한 자리, 식당에서 그가 기다리고 있다. 과장만 퇴근하면 약속 장소로 달려갈 차비를 마친 상태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장은 의자에 몸을 반쯤 누어 책을 읽고 있었다. 움직일 기색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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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없으면 퇴근이나 하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저… 오늘 약속이 있어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를 입 밖에 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보다 훨씬 고참인 선배들조차 꿈쩍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말단 직원인 내가 먼저 나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괜히 나섰다간 과장뿐 아니라 선배 직원들에게까지 찍히기 십상이었다.


퇴근 후의 내 시간은 언제나 과장 퇴근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그래서 저녁 약속은 애초에 잡지 않는 게 마음 편했다. 오늘만은 달랐다. 약속은 이미 잡혔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결국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전화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일곱 시가 되자 과장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틈도 없이 그는 수석계장을 불러 세웠다.

“이 계장, 직원들 고생하는데 저녁이나 먹고 가지?”

이 계장이 우리를 향해 외쳤다.

“자, 모두 책상 치우고 저녁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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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사무실은 정리되었다. ‘아~다행이다’ 속으로 외치며 수석계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한 뒤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이미 약속시간을 30분 넘긴 상태다. 식탁에는 밑반찬과 수주 두병이 놓여있었다. “진짜 미안합니다. 과장이 퇴근하지 않아서….” 아무리 설명을 늘어놓아도 그에겐 변명이었을 뿐이다. 약속 시각을 어긴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미안함만큼 술병이 늘어갔고 2차, 3차로 이어졌다. 결국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아저씨 왜 남의 차에서 자요?” 누군가 몸을 흔드는 소리에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아침 햇살을 등진 채 서 있는 건장한 남자가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났다. 러닝셔츠와 팬티 차림. 남의 차 안이다. 겉옷을 챙기려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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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씨발! 남의 차가 자기 안방인 줄 아나? 옷 저기 있네!" 험악한 목소리에 온몸의 피가 식는 듯했다. 그가 가리킨 곳을 보니 전봇대 손잡이에 겉옷이 걸려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광경을 보며 걸음을 멈췄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겉옷을 입고 신발을 신발을 찾았다.


"차 밑에 신발 있네! 에이 아침부터 재수 없어!"

그의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외치며 신발을 구겨 신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술에 취해 차를 집으로 착각하고 잠든 모양이었다.


내가 죽도록 미웠다. 하수구에서 올라온 모기에 물려 온몸이 가려웠다. 주머니에는 구겨진 카드 영수증 3개 있었다. 매의 눈으로 밤새 기다렸을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다음 날. 과장이 퇴근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일 아침 9시까지 금정산 입구 버스정류장으로 모여라!”

휴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날인데, 그에게는 집도 가족도 없는 듯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등산 준비를 하며 아내와 마주친 순간, 싸늘한 시선이 날카롭게 꽂혔다. “이럴 거면 혼자 살지, 미쳤다고 나랑 결혼했나?”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마지못해 따라가는 등산은 즐거울 리 없었다. 산행 뒤엔 어김없이 술집과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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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가장 후회되는 건 가족과 함께할 소중한 시간을 놓친 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함께 시간을 보낸 추억도. 나는 곧 할아버지가 된다. 두렵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들이 손주에게 제대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상사에게 밉보이면 어때서? 가족보다 중요한 상사가 어디 있으며,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직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오로지 직장만 바라보다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군 지역 국장이 되었다. 직원들은 퇴근시각이 되면 자유롭게 퇴근한다. 내가 퇴근하든 안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눈치를 보며 퇴근 5분 전, 짐부터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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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근에 근무하는 지영철 국장과 저녁식사를 했다. "퇴근시각 컴퓨터를 끄는 데 「업데이트 중입니다. 끄지 마시오!」라는 메시지 때문에 5분 늦게 국장실을 나왔는데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없었다."라며 푸념했다. 상사 괴롭힘에도 꿋꿋이 버텼던, 열정적이었던 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머리카락에 흰 서리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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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없이 일에 시달렸고, 술에 시달렸다. 회사와 상사를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만 그대로인 채 시대는 변해 있었다. 과거의 열정이라 믿었던 것은 나의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는 습관이었고, 회사에서의 공적이라 여겼던 일들은 내 곁을 지키던 가족의 희생이었다.


삶의 끝에 남는 건 회사의 직급도, 통장의 숫자도 아니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내일 9화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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