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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선서, 오전 내내 신고식!

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by 정글

"함께 침묵하는 것도 값진 순간이다. 그러나 진정 멋진 일은 함께 웃는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감정을 나누는 동료가 있다는 것. 그것이 직장 생활의 가장 큰 선물이다."


“저, 발령받아 왔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담뱃재를 털며 “발령받은 아가 니가?” 하는 박 주임의 눈짓이 소파를 향했다. 양복이 없어 형님의 옷을 빌려 입은 몸이 더없이 불편하고 낯설었다. 엉거주춤 소파 옆에 서 있자니, 박 주임이 “안 앉고 뭐 하노?”라며 째려본다. 나는 소파에 등을 대지 않고 곧추세워 앉았다. 하나둘 출근하는 직원들이 흘끗흘끗 쳐다보는 시선이 따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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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흘렀까 박 주임이 종이 한 장을 탁자 위에 툭 던졌다. “이거 읽고 도장 찍어!” 종이 위에는 「공무원 선서」가 진하게 적혀 있었고, 아래에는 ‘(직급) (성명) (인)’ 적는 칸이 있었다. 성명은 알겠는데, 직급은 뭘 적어야 하나? 도장도 안 가져왔는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직급은 뭐라고 적어야 합니까? 도장을 안 가져왔습니다.”

“새끼, 임용받는 놈이 도장도 안 챙겨 왔나! 지장 찍어, 인마! 직급은 '행정서기보시보'라 적고....”

군대도 아닌데 왜 욕을 먹어야 하나 속으로 투덜거렸다.


시간이 한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박 주임은 나에게 눈짓하며 따라오라고 했다.

회의실로 끌려가 '공무원 선서'를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다.

“선서!”

“더 크게! 새끼 군대 안 갔다 왔나? 다시!” 군대도 아닌데 왜 욕을 먹어야 하나 속상했다.

‘선서!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서...’

몇 번을 반복하자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러자 박 주임은 “자동!”이라 외치며 회의실을 나갔다.


나는 큰 소리로 선서문이 외워질 때까지 연습했다. 복도를 지나가던 여직원들이 빼꼼히 문을 열고 킥킥거리며 지나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박 주임이 다시 돌아와 따라오라 손짓했다.


복도를 지나자 ‘국장실’ 팻말이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국장실로 들어가자 맞은편 책상 앞에 머리카락이 반쯤 벗어진 국장이 서 있었다. 그 옆으로 간부로 보이는 다섯 명이 도열해 있었다. 박 주임이 나와 국장을 번갈아 보며 “지금부터 국가공무원 임용식이 있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선서문을 건넸다.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오전 내내 연습했던 대로 오른손을 들고 우렁차게 “선서!”를 외쳤다. 국장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중심을 잡았다. 선서문을 보지 않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약간 더듬고 말았다.


국장은 나의 눈을 보며 “박력이 있어 좋다!”라고 칭찬했다. 훈시가 길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임용식이 끝났다.


임용식을 마친 뒤 박 주임은 선서문을 챙겨 자신의 책상에 두고는, 따라오라고 했다. 도착한 곳은 하동시외버스터미널 건물 안에 있는 식당이었다. 반은 슈퍼마켓, 반은 식육점이었다. 주인은 박 주임을 잘 아는 듯 반갑게 악수했다.

“오늘 소 잡은 거 있지? 천엽하고 간 한 접시 주라!”

잠시 후 하얀 대접 두 개와 대병 소주 한 병이 나왔다. 대낮에 소주라니. 박 주임은 대접에 술을 콸콸 따랐다. ‘설마 저걸 마시라는 건 아니겠지.’ 그는 소주가 가득 담긴 대접을 나에게 건넸다. 자신도 대접에 술을 채우고 잔을 들어 내 앞으로 밀며 건배했다. “공무원 된 거 축하한다.” 나는 입술을 대접에 대어 마시는 시늉만 하고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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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박 주임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선배가 잔을 주는데 베어 먹어?” 그 순간 이런 조직에서 계속 근무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원 샷 했다. 머리가 핑 돌았다.

“성철아! 이 새끼 오늘 발령받은 우리 10회 후배다!”


그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후배라서 처음부터 함부로 대했던 거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후배가 공무원이 되어 발령받아 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 너무 좋아서 그랬다고 했다.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다. 그 뒤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목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지? 하숙집은 아니었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나가보니 박 주임과 그의 부인이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어제 내가 정신을 잃어 그가 업고 집으로 왔다고 했다. 분명 세 명이 함께 마셨던 기억만 어렴풋이 날뿐, 그 뒤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박 주임의 아내는 재첩 국을 내 앞으로 밀며 말했다. “속 쓰릴 텐데 식사하세요.” 임용 첫날,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외박을 했다.

36년 전 패기 넘치던 공무원의 임용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36년 후, 국장이 된 지금. 오늘 신규 공무원 세 명의 임용식이 있었다. 36년 전 촌닭처럼 긴장했던 내 모습이 보여 빙그레 웃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로 그들을 대했다. 임용식을 마친 뒤 신규자들과 차를 마셨다.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이름을 크게 외쳐주었다. “이소라, 이소라, 이소라, 힘!”

한 달 후 ‘국장과의 대화 워크숍’을 만들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힘든 일이 많았죠? 오늘은 여러분의 애로사항을 듣고, 하루를 쉬게 해 주고 싶어 이 자리를 마련했어요.” 워크숍 취지를 이야기했다. 모두 신규 동기라 금방 친해졌다. 마창대교가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서 식사하며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창원우편집중국과 지역 문화 탐방도 했다. 밝게 웃는 후배들을 보니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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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발령받아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는데, 아까 국장님이 ‘우리를 위로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하루 쉬게 해 주고 싶다’는 말에 울컥했어요.”


한 여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린 자녀 셋을 두고 객지에 홀로 와 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앞의 고기 접시를 그녀 쪽으로 밀어주었다.

“많이 드세요.~”


내일 10화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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