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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상사는 돈이 없다?

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by 정글

"중요한 것은 빈 지갑이 아니라 함께한 이들과의 시간이고, 마음이고, 추억이다"


상사, 계산 그리고 관계의 민낯

상사는 돈이 없다. 그 사실은 직장 생활에서 늘 부담이 되는 진실이었다. 식사나 술자리에 가면 계산은 누가 할지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한 잔 사겠다"라는 말에 따라가면 문제가 없지만, 대개는 먼저 가자고 한 사람이 계산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리가 끝나고 모두 자리를 뜰 때, 서로 계산대에 늦게 가기 위해 눈치게임을 했었다. ‘구두끈 매는 척’하라는 조언은 그래서 생겨났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더치페이 문화는 합리적이지만, 왠지 정이 없어 씁쓸할 때도 있다. 반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면 서로 계산하겠다며 계산대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10만 원 이하는 큰 부담이 없지만, 그 이상일 경우 괜히 내가 냈다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퇴근하면 집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는 늘 술집으로 향했다. 회사의 문화에 따라 내 생활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늘 술이 취해 민지적 거리다가 마지막에 남은 내가 결국 계산하곤 했다. ‘다음번엔 다른 사람들이 내겠지’라는 기대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직급이 낮은 내가 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땐 자신이 산다고 가자고 해놓고 계산 안 하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는 수없이 속으로 투덜거리며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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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중간급 상사들이 계산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부서장이 계산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분명 나보다 월급도 많이 받는데 말이다.


식사나 술자리는 늘 부서장이 좋아하는 곳으로 갔다. 그런 곳은 선술집이 아니라 꽤 돈이 나오는 장소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집에 가고 계산은 부하 직원이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단한 삶의 무게와 가족의 소중함

시간이 지나면서, 상사는 계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직 문화로 굳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부서를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식사나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습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내가 먼저 계산하면 누군가 다가와 “내가 하려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성격이 급하기도 했지만 술이 취하면 기분이 좋아 먼저 계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 맞벌이하는 네가 해라”는 기분 나쁜 말을 하는 동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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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장이 집에 갈 때는 재빨리 길가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부서장이 택시 안에 앉으며 1만 원짜리 지폐를 무릎 위에 얹어주며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했다. 내가 모셨던 상사는 계산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계산은 부하 직원들 몫이었다. 선배들이 그렇게 했기에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늘 의문이 들었다. 상사가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데 왜 부하 직원들이 계산해야 할까? 한 번쯤은 돈을 낼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아침 출근길,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계산서가 한두 장 잡혔다. ‘같이 먹었으면서 왜 나만 돈을 내는 거야.’ 한 군데도 아니고 두 군데나. 결국 성질이 급하고 기분파인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카드 돌려 막느라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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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이 다가오는 상사는 본부에 잘 보이고 싶어 했다. 여름이 되면 현업 우체국을 격려하기 위해 수박을 구입해서 보내주곤 했다. “정 팀장, 어차피 사는 거 몇 개 더 사서 본부 부서별로 보내라.” 상사 명의로 본부에 수박을 보냈다. 본부에서 상사에게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회사 돈으로 자신이 생색내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은 적도 있었다.


분기마다 현업 우체국에 업무지도 2인 1조로 출장을 다녔다. 모두 부서장과 짝이 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출장 신청서를 작성하는 담당자에게 밥을 사주며 부탁하기도 했다. 분명 부서장과 짝이 아니었는데, 결재된 신청서에는 나와 출장조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담당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결재 과정에서 간택(?) 되었다고. ‘젠장, 일주일간 죽었구나.’


상사는 일주일간의 출장 계획을 청장께 보고하러 갔다 오면

“정 계장, 청장님 결심 났다. 차 빼라!”는 소리가 청둥 소리처럼 들렸다. 청장 결재가 났지만, 나에겐 따로 결재받을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내였다. 직장과 육아를 겸 하는 아내에게 일주일간 집을 비운다는 건 청장 결재보다 힘들었다.


출장은 계획대로 가기도 했지만, 상사가 가고 싶으면 갑자기 떠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난감했다. 지방으로 출장 갈 때면 상사의 속옷, 세면도구 등을 준비해야 했다. 낮에는 운전하고, 밤에는 출장지 직원들과 술을 마셨다. 일주일간 시달리다가 토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상사를 집 앞에 모셔다 준 뒤에야 집에 왔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아이는 나 혼자 낳았냐!” 설거지하던 아내는 그릇을 내동댕이치며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맞벌이하며 밤낮이 바뀐 아이 때문에 아내는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이불을 들추며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뒤풀이했다. 그럴수록 아내는 이불을 덮고 내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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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놀다 왔나? 나도 죽겠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아내 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쓰레기도 비우고 방도 닦고 설거지도 하며 아내 눈치를 살폈다. 푹 자고 싶어도 피곤하다는 말도 못 하고 숨 막히는 일요일을 보내야 했다.


아내와 나는 막내라 양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맞벌이로 탁아방을 전전하며 아이 둘을 키우느라 아내의 눈물은 강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며느리가 손주를 가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활짝 웃던 아내의 얼굴이 가을 햇살에 빛나는 해바라기 같았다.


“여보, 딸이 좋은데 아들이래”라고 말하는 아내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한 번씩 투정 섞인 목소리로 ‘눈이 잘 안 보인다, 허리가 아프다, 몸이 쑤신다, 아랫배가 아프다’라는 말에 마음이 아프다. 그동안 아내 속을 무던히 썩였을 테니, 속은 아마 숫 검댕이가 되었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과거를 잊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지금, 행복하게 살자. 아내와 고운 할머니, 할아버지로 늙어가고 싶다. 평생 아내에게 고마워하며.


불편한 경험이 준 따뜻한 깨달음

내가 부서장이 됐다. 고생하는 직원 몇 명과 함께 휴가를 냈다. 바람도 쐬어주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최 과장, 오늘 하루 모든 경비는 내가 낸다.” 우리는 남해로 갔다. 파도가 옥빛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폐 깊숙이 들이마셨다. 케이블카 바닥 유리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넘실거리며 춤추는 것 같았다. 케이블카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다 내음이 좋았다. 남해 독일 마을에서 차와 맥주를 마시고 횟집으로 이동했다.


“국장님, 지금까지 먹어본 회 중에서 이렇게 맛있는 회는 처음이에요!” 바다 노을을 등지고 환하게 웃는 직원의 얼굴이 내 마음을 노을처럼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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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상사가 돈이 없던(?) 그 시간들이 우리를 괴롭혔지만,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돈보다 소중한 것을 배웠다. 밥 한 끼, 술 한 잔의 의미가 계산이라는 눈치 싸움이 아니라, 함께하는 동료들과 웃고, 떠들며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함이라는 것을.


어쩌면 모든 직장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런 상사, 혹은 선배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가 겪었던 경험들이, 후배들에게는 더 나은 조직 문화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내일 8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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