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인생은 복싱 경기와 같다. 아무리 완벽하게 가드를 올리고 있어도, 예상치 못한 펀치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아는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었지만, 완벽했던 내 노력이 한순간의 사고로 무너지고 희생제물이 되었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누군가를 탓하려 한다. 특히 여러 사람이 얽힌 복잡한 문제일수록, 모든 책임을 한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 가장 쉽고 편리한 해결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회사에서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총대를 멜 사람을 찾는다. 압수수색한 현금의 관봉권 띠지가 사라져 책임소재를 가리다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고대에도 있었다. 재앙을 막기 위해 흠 없는 제물로 어린아이를 바치기도 했다. 조직의 평판이나 이익을 위해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짊어지는 희생양이 되는 일이 많다.
지리산 정상을 오르는 최단거리 등산 코스가 산청 중산리에 있다. 그곳에 회사 수련원이 만든다는 계획이 본청에서 공문으로 내려왔다. '산청 지리산 수련원'을 짓는 데 공사 보조 감독자로 임명되었다. 나는 '전국에서 최고로 멋진 수련원'을 만들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혔다. 전국의 유명 수련원을 찾아다니며 숙소 방 형태, 비품, 세미나실, 침대 등 비품을 꼼꼼하게 챙겼다. 관계자 인터뷰도 했다.
2년간의 노력
수련원 개소 보조 감독으로 근무한 지 2년. 회사에서 한 시간 거리 공사현장에 200번도 넘게 다녔다. 당시 이 지역에는 인터넷 회선조차 없었다. 회선을 끌어오기 위해 본청과 산청 유선방송 인맥을 총동원해 전봇대 8개를 설치했다. 덕분에 산청 중산리 지역에 처음으로 인터넷이 들어오게 됐다. 객실마다 당시 조달청 공급 물품 중 성능 가장 좋은 삼성 TV를 설치했다. 수련원 인근에 유흥시설이 없어 방문 직원들을 위해 영화, 드라마 비디오 수백 개를 비치했다. 로비 안쪽에는 PC 3대를 설치한 인터넷 플라자를 만들어 관광객들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개소식 사흘 전, 본청 최 과장이 현장을 둘러본 후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정 과장, 전국에서 최고 명품 수련원이 될 것 같다."라며 칭찬했다. 김 감사관이 인근 지역 감사하다 들렀다. "정 과장은 뭘 매껴도 잘해"라고 말하며 귀띔했다. "개소식 행사 끝나면 인사발령이 있는 데 감사실로 발령받을 거야. 혼자만 알고 있어."라고.
이번 개소식이 내 성공의 발판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미 이삿짐 일부를 묶어둔 상태였다. 자존감은 수련원 뒤로 보이는 천왕봉보다 높았다. 수련원 개소식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앞으로 닥칠 일을 까맣게 모른 채.
악몽 같은 순간
2002년 11월 5일. 무지갯빛 천이 건물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고, '산청 지리산 수련원' 간판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간판 위쪽, 축하 폭죽 상자(1m 30cm × 50cm 철제 통)에서 하얀 노끈 10개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하얀 노끈을 당기면 철제 통 안의 폭죽이 터지고, 오색 비닐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개소 축하 현수막이 위에서 아래로 펼쳐지도록 설계돼 있다고 설치하는 업체에서 말했다.
새벽부터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청 중산리 산 중턱에 안개가 자욱했다. 오전 6시경 갑자기 수련원이 정전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 시간 만에 복구되었다.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개소식의 하이라이트는 '축하 폭죽 상자'를 터트리는 일이었다. 8개 청의 청장과 본부장 등 100여 명의 내빈이 참석했다. 수련원 개소식 행사를 주관하는 본청 최 과장의 사회로 개소식이 진행되었다. 하얀 장갑을 낀 VIP 15명이 줄을 잡고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두 고개 들어 간판 위를 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따라 일제히 줄을 당겼다. 웬일인지 폭죽이 터지지 않았다. 최 과장은 다시 방송을 했다.
"다시 한번 힘차게 당겨주시기 바랍니다!"
구령에 따라 다시 당겼다. 순간, 폭죽이 터지지 않고 '축하 폭죽 상자'가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널브러진 현수막 위로 오색 비닐 조각들과 파편이 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청장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나와 최 과장을 동시에 쏘아봤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동안의 모든 수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이 따른다. 개소식 행사는 본청 주관이었고, 축하 폭죽 상자 주문도 본청에서 했다. 나는 공사 완료 여부만 확인하고 보고한 게 다였다. 폭죽이 터질지 안 터질지 미리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은 내게로 돌아왔다. 본청 발령도 취소되었다.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당해 직급 최단기간 승진에, 하는 일마다 잘 되던 시절이었다.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장밋빛 미래만 그려왔다.
자치방에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발령 날 것 대비해 묶어둔 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눈앞이 흐려졌다. 찬바람이 세차게 창문을 흔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인생의 모든 순간은 다 공평하고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노력한 만큼 반드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실패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발령이 취소된 덕분에 수련원 관리를 맡으며 전국에서 관광차 오는 직원들과 교류하며 인맥이 넓어졌다. 행사 사전 답사를 위해 오는 직원들을 안내하느라 지리산 천왕봉을 64번이나 오르며 새로운 인맥을 쌓았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성장과 배움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30여 년을 넘게 직장 생활하며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치 않는 특별승진도 했다. 밤잠을 설치며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했고,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원망할 때도 있었다. 반면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행운도 얻었다.
완벽했던 계획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후, 나는 더 이상 결과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과정에서의 성장과 배움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실패를 쉽게 판단하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직 잘되지 않지만, 기쁘고 즐거운 일에 방방 뛰지 않고,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땅에 희생제물이 된 모든 분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내일 15화에서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