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내 시각에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면 될까'로 바꾸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2인 1조로 당직 근무를 하던 어느 저녁. 장병철 주사와 나는 짜장면을 시켰다. 짜장면 두 그릇이 배달됐다. 면발 위에 오이채와 깨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나무젓가락으로 섞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짜장면 면발을 한입 입에 넣었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옆에 있던 장 주사가 짜장면을 젓다 말고 전화를 받았다.
“어딥니까? 아~ 하동 이상 없지요. 당직장 누굽니까?" 당직 장부에 보고 내용을 기록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전화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장 주사는 고개를 젖혀 수화기를 고정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네~, 진주!, 잠시만요.” 소파에 앉아 짜장면을 먹다가 나도 일어나 거들었다. 전화통이 10여 분간 불이 났다. 잠시 소강상태다. 짜장면 두 그릇이 있는 테이블에 둘은 다시 앉았다.
장 주사는 덩어리가 된 짜장면을 억지로 섞었다. "에이! 짜장면 다 불었네~" 짜장면을 한입 넣으려는 순간 또 전화벨이 울렸다. "아 씨발! 밥 좀 묵자"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을 면발에 꼽고 전화통이 있는 책상으로 갔다.
매일 반복되는 악순환
당직 근무의 주된 업무는 하부기관 '당직 보고'를 받아 상부기관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시, 군, 구의 총괄국 우체국은 면, 동단위의 보고를 취합해 감독관청인 지방청에, 지방청은 다시 중앙행정기관인 정보통신부에 보고해야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인 6시 30분부터 8시 사이에 보고 전화가 한꺼번에 몰렸다. 결국, 짜장면은 불어 터져 우동 면처럼 변했다. 수십 년 동안 해 왔던 이런 상황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후배들에게 불어 터진 짜장면을 먹게 하지 말자'라고.
데이터가 말해주는 진실
다음 날 자료조사에 들어갔다. 당직업무 담당 부서를 찾아가 석 달 치 당직 장부에 있는 당직 보고 집계 내용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100%가 '이상 없음'이라는 내용이었다. 40여 관서에서 매일 같이 똑같은 내용으로 전화 보고를 하고 있었다. 당직업무 담당자에게 '이상 있는 우체국만 보고하자' 건의했지만 규정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혁신의 작은 시도
오기가 생겼다. 전산실 안 주사를 찾아갔다. '전화를 받지 않고도 관내에서 보고 내용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집계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몇 차례의 저녁 식사와 술을 함께하며 설득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엑셀 매크로를 활용한 「당직 근무 자동 집계 시스템」이 탄생했다.
한 달간의 시험 운영은 대성공이었다. 전화 통화는 싹 사라졌다. 직원들은 편안하게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전화 요금도 절약되었다. 직원들은 나를 '꾀돌이'로 불렀다. 이후 당직 관련 업무를 종합한 「종합상황보고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전산실 안 주사와 나는 공동 제안서를 본부에 제출했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본부의 추천으로 '공무원 중앙 제안 심사' 대상에 선정되는 기회를 얻었다. 공무원 중앙제안은 전국 각 부처에서 추천한 제안을 심사하여 대상에서 장려상까지 표창을 주며, 동상까지 특별승진의 기회가 주어졌다.
행정안전부 심사 발표일이 정해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안 내용을 PPT로 만들어 대학교수 연구원 등 전문직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 앞에서 발표해야 했다. PPT 만드는 데는 자신이 있었지만, 심한 경상도 사투리와 발표불안장애가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없어졌다. 발표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발표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아나운서 출신인 '정보영 스피치 아카데미' 학원에 입과 했다. 한 달간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사투리를 표준말로 하려니 더 어색하고 발음이 꼬였다.
떨리는 발표 순간
드디어 발표 날. 대기석에 앉았다. 목이 타서 연실 물을 마셨다. 손에 땀이 났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떨지 말자'를 속으로 외쳤지만 그럴수록 더 떨렸다.
"다음 순서는 정인구 님이 발표하겠습니다."
발표석으로 가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표석에 섰다. 심사위원 여섯 명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발표하기 전 먼저 양해 말씀드리겠씁미다. 제가 갱상도 사투리가 심합니다. 고칠라꼬 학원에 한 달 댕깃는데 안 고쳐집니다. 갱상도 사투리를 써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이 웃었다. 발표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게 끝났다.
꿈같은 결과
'공무원 중앙 제안 동상(대통령)'. 문서를 본 순간, 하마터면 소리칠 뻔했다.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야호! 하나님 감사합니다!"
「종합상황보고시스템」은 지금도 전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때로는 퍼진 짜장면 한 그릇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소한 불편함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자, 불어 터진 짜장면은 더 이상 짜증의 대상이 아니었다. 작은 생각의 변화가 마침내 우리 모두를 편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