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고무공은 떨어져도 다시 튀지만, 유리공은 한 번 깨지면 다시 붙을 수 없다.
사람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야 한다. 일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가정은 한 번 깨지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가족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의 시간도, 자녀의 성장도, 배우자의 마음도 ‘나중에’로 미룰 수 없다.
가족은 뒷전, 일이 우선!
가족에게 아빠로서 나는 빵점이었다. 승진을 위해 가족은 내팽개치다시피 했고, 아침 일찍 출근해 새벽에 술에 취해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이들의 재롱잔치, 입학, 졸업, 심지어 군 입대와 면회 한 번 가지 못했다. 아내의 생일은 물론 기념일도. 모두'회사일과 상부기관 손님 접대'를 핑계로 다음으로 밀렸다. 수많은 '다음'을 약속했지만, 그 '다음'은 결코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에 올인한다고 성과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공무원 6급에서 5급으로 14년 만에 승진했다. 승진 대상자가 된 지 4년 연속 떨어지고 5년 만에 승진했다. 승진 소식을 제일 먼저 아내에게 전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 목소리가 덤덤했고, 기쁜 기색이라곤 없었다. 아내의 공허한 목소리는 그 성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들이 성인이 된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가 네게 관심을 갖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들은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어릴 때 기억나는 건 아빠가 술에 취해서 내 방에 와서 항상 하던 '미안하다'는 말뿐이었어요. 그 모습만 기억나요."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죄인처럼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오래된 가족 앨범을 펼쳤다. 사진 속 가족은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회복의 시작, 가정으로 돌아온 아버지
늘 술로 하루를 마무리했었다. 술은 내게 가정파괴범이나 마찬가지였다. 견디다 못한 아내와 별거하고 이혼 직전까지 갔었다.
술을 끊고 가족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족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 8시부터 한 시간. 서산에 사는 아들과 손자, 며느리와 온라인 줌(ZOOM)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어색하던 대화가 조금씩 친숙해졌다.
늘 게임만 하던 둘째 아들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내와 자기 계발 수업도 듣고, 영화를 보며 주말을 보냈다. 1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평점 1.7점으로 유급이었던 작은 아들은 대학 2학년 2학기에 전액 장학금을 받아왔다. 아들 표정이 밝아졌다. 나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아내도 나를 인간(?)으로 취급해 주었다. 어느 날, 아내 휴대폰에 내 이름이 ‘하나뿐인 내 사랑’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결혼 후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진정한 성공의 기준
사람은 일만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일은 잠시 내려놓아도 다시 튀어 오르는 고무공이지만, 가정은 한 번 깨지면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유리 공이다.
살아보니 직함과 성과는 퇴직과 함께 사라졌다. 마지막 남는 것은 가족뿐이었다. 세상이 등을 돌려도 내 편이 되어주는 건 언제나 가족이다. 내가 오늘 가족에게 소홀히 했다고 오늘 당장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반드시'라는 말이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으로 가꾸면 반드시 축복을 받고, 가정을 소홀히 하면 반드시 후회와 벌을 받게 된다.
죽기 전 가장 후회한 일 중 하나가 '일만 너무 열심히 한 것'이라고 한다. 20년 전으로 돌이킬 수만 있다면, 주저 없이 나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성공은 가족의 행복이다.”